2007. 10. 5. 15:12
2006년 11월 24일 스포홀릭 기사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이 대회 3연패에 도전하기 위해 23일 저녁 현지로 출국했다.

 이번 야구 대표팀의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다. 금메달을 따야만 하는 이유는 1998년 방콕 대회이후 3연패의 위업을 달성해야 함과 동시에 젊은 선수들의 병역 혜택도 걸려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목에 걸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11월 23일 저녁, 카타르 도하로 떠난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 모습    (사진 출처 = 연합 뉴스)

◆ 대표팀의 빚 - 대만 팀에게 연이어 진 빚을 11월 마지막날 갚겠다.

 “삼성 라이온즈, 대만 대표 라뉴 베어스에 2-3 역전패” (11월 11일 코나미컵)
 “한국 대표팀, 연장 12회 접전 끝에 대만에 7-9패” (11월 12일 대륙간컵)

 지난 11월 중순 한국 야구는 연 이은 국제 대회 졸전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코나미컵 우승이 가능하다고 장담했던 삼성 라이온즈는 우승은 커녕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대륙간컵에 참가한 대표팀은 8개 참가팀 가운데 7위에 그치며 WBC 4강 명성에 흠집을 낸 것이다.

 특히 두 대회에서 대만에게 전패를 당한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난 WBC에서 일본을 연파하며 강팀의 반열에 오른 한국으로서는 더 이상 대만을 라이벌로 여기지 않았던 덕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프로 2진급과 대학 선발로 구성된 대륙간컵 대표팀이 이번 아시안게임 대표가 15명이나 포함된 대만 대표팀을 맞아 연장 접전을 펼친것은 졌음에도 선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삼성 라이온즈의 패배는 한국 야구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다시 한 번 되돌아 봐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안 게임 대표팀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우승은 물론이고 앞선 두 대회에서 한국을 대표했던 두 팀의 졸전을 만회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최대 난적은 대만 대표팀이다.

 대륙간컵을 현지에서 지켜보고 돌아왔던 김재박 감독도 우승을 위한 경계대상으로 일본보다 대만을 지목한 것처럼 ‘아시아 최강’ 일본은 사회인 야구와 대학에 소속된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파견해 큰 위협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만은 8명의 해외파(미국:5명, 일본:3명)가 포함된 강팀으로 구성되었다. 더군다나 한국처럼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이번 대회에 임하는 각오까지 같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의 상황은 더욱 절박하다. 이번에도 대만의 벽에 가로막힌다면 대만보다 앞서 있다고 자부했던 야구 실력을 다시 되돌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야구계 전반의 위기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이번 아시안 게임 대표팀이 앞선 두 대회의 빚을  갚고 이겨야 하는 이유다.
     
 그리고 그 무대는 11월의 마지막날 양 팀의 첫 경기로 펼쳐지게 된다.
     
       
◆ 김재박 감독의 빚 - 3년 전 삿포로의 치욕을 되갚겠다.

 2003년 11월 5일 일본 삿포로 돔. 한국은 아테네 올림픽 티켓을 놓고 대만과 예선 1차전을 펼쳤다. 경기는 한국이 9회초까지 4-2로 앞서며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호투하던 임창용이 9회말 들어 연속 볼넷을 내주고, 구원으로 나온 조웅천도 적시타 2개를 헌납하며 승부는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그리고 10회말 대만에게 끝내기 안타를 허용하며, 경기는 통한의 역전패로 마무리 되었다. 반드시 이겨야 했던 이 경기 패배로 전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던 한국의 올림픽 진출 꿈은 좌절되고 말았다. 이때 사령탑이 현 대표팀 김재박 감독이었다. 그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삿포로의 수모 또는 치욕’은 바로 이 경기를 두고 하는 말이다.

 현대 유니콘스를 4회나 우승 시켰고, 현역 감독 가운데 가장 비싼 몸값을 기록할 정도로  명장 대접을 받는 남부러울 것 없는 김 감독이지만 대표팀 이야기 앞에서는 항상 작아졌다.  바로 아직도 씻지 못한 ‘삿포로의 악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불명예를 씻고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이번 대표팀 구성에서부터 그 흔적의 노력을 보였다. 우선 지금까지 프로팀 감독 위주로 구성되었던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전문 코치진으로 바꾸었고, 그 면면은 자신의 야구 스타일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측근들로 배치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많은 논란을 남겼던 선수 선발에 있어서도 병역 미필자나 유명 선수 보다는 자신이 잘 파악하고 있고, 그의 야구 스타일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선수들이 중용되었다. 결국,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팀 구성에 있어서 고려대상은 우승밖에 없었고, 그 목적에 따라 우승을 위한 팀 구성을 했다. 거기에 누구의 눈치나 비난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3년전 빚을 들고 23일 도하로 떠난 김재박 감독은 이제 그 빚을 갚고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할 것이다. 이번에도 목표인 우승에 실패한다면 자존심 회복은 물거품이 되고, 또 다른 멍에를 뒤집어 쓸 것이다. 그리고 지난 선수 선발과 관련된 비난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며, 그의 책임 소재가 스토브 리그를 뜨겁게 달굴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 빚을 갚게 될 첫 상대는 3년전 수모를 가져다준 대만 팀이다. 지난 삿포로 대회 첫 상대도 대만이었다. ‘악몽의 재현’ 이냐 ‘악몽의 마침표’냐의 판가름은 실질적인 결승전이나 다름없는 첫 경기 결과로 판가름 날 것이다.
   
      
◆ 주장 박재홍의 빚 - WBC 불참에 따른 마음의 짐을 이번에 털겠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리틀 쿠바'라 불리며 대표적인 ‘국제용 선수’로 알려져 있는 박재홍(33. SK 와이번스). 그 명성에 걸맞게 그는 지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이번 도하 아시안게임까지 7번 결성된 드림팀 명단에 모두 부름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그도 그럴것이 별명과 같은 실력을 항상 대표팀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김재박 감독의 부름에 흔쾌히 수락하고,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된 대표팀에서 이병규, 손민한과 함께 몇 안되는 30대로서 팀을 이끌게 되었다.

 사실 그는 이번 대표팀에서 최고령자다. 지난번 대표팀 선발 과정에서 그 보다 어린 선수들도 부상을 이유로 국가 대표를 고사하기도 했다. 그 역시 내년을 위해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그는 대표팀의 부름에 군말없이 응했다. 아니 응해야 했다. 왜냐하면 지난 3월 WBC때 ‘마음의 빚’을 졌기 때문이다. 최종 엔트리에 선발이 되고도 막판에 부상을 이유로 WBC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불참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매끄럽지 못한 일 처리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당시 박재홍과 관련된 일들의 전개 과정이다.

- 2005년 12월 8일 WBC 예비 엔트리 60명에 포함
- 2005년 12월 20일 WBC 최종 엔트리 30명에 포함
- 2006년 1월 4일 SK 와이번스와 FA 계약(최대 30억)
- 2006년 1월 6일 왼쪽 손가락 부상(전치 4주)으로 국가대표 반납 의사 표현
- 2006년 1월 9일 대체 선수로 송지만(FA 신분, 현대 유니콘스) 선발

 그가 불참을 결정한 이유였던 부상은 알고 봤더니 오래전(2005년 8월) 경기에서 입은 부상이 원인이었다. 그리고 2차례 엔트리 발표 이전에 충분히 불참을 통보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그가 당시 FA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FA 계약을 체결하고 이틀 뒤 부상 사실을 대표팀에 알리면서 불참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당시 WBC 대표팀 감독이었던 김인식 감독의 분노를 샀던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소속팀 감독이면서 WBC 배터리 코치로 참여한 조범현(전 SK 와이번스) 감독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팬들도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이런 과거 때문일까? 그는 이번 아시안 게임 대표팀 선발부터 적극적인 자세로 참여했다. 김재박 감독도 풍부한 경험을 가진 그의 합류 소식을 반가워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6번의 드림팀 참가이후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이번 대회에서 후배들을 이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에게도 열심히 뛰어야 할 동기부여가 생긴 것이다. 팀의 주장으로서 솔선  수범하며 후배들의 병역 혜택을 위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면, 지난 WBC때 빚은 자연스럽게 갚게 될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용 수정 및 추가>

★ 대만 엔트리 변경 - 왼손 투수 우스요우(위 표에는 우오우요로 오기)에서 아마추어 투수 리전창으로 교체. 이로서 양팀의 최종 병역미필 선수는 '한국:14명 vs 대만:10명(해외파8명+아마 2명)'

★ 카타르 도하의 알라얀 구장 수용규모는 290석

Posted by 공짜
2007. 10. 5. 15:07
2006년 10월 5일 스포홀릭 기사


 지난해 창단 첫 꼴찌의 아픔을 딛고 기아 타이거즈가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이렇게 전년도 꼴찌팀이 다음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예는 타이거즈가 6번째에 해당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타이거즈는 걱정이 많다. 우선 마지막 경기까지 두산 베어스와 치열한 순위싸움을 펼치느라 선수들의 피로가 극에 달했다. 벌써 팀의 에이스였던 그레이싱어는 팔꿈치 부상으로 등판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또한 맞대결을 펼칠 한화 이글스는 올 시즌 현대 유니콘스와 함께 타이거즈가 열세를 보인 팀 가운데 하나다. 더군다나 1차전은 응원의 힘에 눌리기 쉬운 원정 경기로 치러진다. 그리고 상대는 올 시즌 투고타저속에 유일한 세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타선을 자랑한다. 여러모로 불리한 입장이다.

 그러나 타이거즈에게는 이것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올해 유난히 저조했던 ‘낮 경기’ 성적이다. ‘5할 본능’이니 ‘5할 신공’이니 하는 말로 시즌 내내 승패 관리를 잘해왔던 타이거즈도 ‘낮 경기’앞에서는 무기력했다. 3할대에 그친 7승 11패의 성적으로 ‘낮 경기’ 성적만 놓고는 LG 트윈스와 꼴찌 다툼을 벌였다. 반면, 맞대결을 펼칠 이글스는 12승 8패의 성적으로 전체 2위에 오르며 ‘낮 경기’에 강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과거에도 ‘낮 경기’에 약했나?

 원래 타이거즈는 ‘낮 경기’에 강한 팀이었다. 지난해의 경우 최하위로 쳐진 팀 사정을 감안해 예외로 치고, 2001년 이후 ‘낮 경기’에서는 항상 5할 이상의 승률을 거뒀다. 특히 2003년의 경우엔 21승 9패로 다른 팀에 비해 압도적인 성적을 거둔 사례도 있었다. 또한 올해와 비슷한 성적을 보인 2004년과 비교해도 분명, 올해 타이거즈의 ‘낮 경기’성적은 저조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저조한 팀 성적의 원인은?

 지난해처럼 팀 성적이 추락한 것도 아닌데, ‘낮 경기’에서 부진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올 시즌 개막전이 펼쳐진 4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사로 뿌연 날씨속에 타이거즈는 경기 중반까지 승리를 눈앞에 뒀다. 하지만 경기 막판 통한의 역전 3점 홈런과 홈 쇄도 아웃이 겹치며 역전패하고 말았다. 그 때의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 만날 이글스였다. 뜻하지 않게 기가 꺾인 타이거즈는 다음날 ‘낮 경기’도 패하며, 이후 한 달간의 ‘낮 경기’에서만 6연패 수렁에 빠졌다. 결국 부진은 첫 경기가 꼬이면서부터 시작되었고, 시즌 마지막 ‘낮 경기’도 역전패로 끝났다. 한편, 이글스와는 6번이나 ‘낮 경기’를 펼치며, 1승 5패로 완패했다.

 이러한 부진 뒤에는 올 시즌 팀의 투타 핵심인 그레이싱어, 윤석민, 이용규 등이 유독 ‘낮 경기’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낮 경기’ 최고의 히든카드는?

 포스트 시즌은 정규시즌과 다르다. 매 경기가 결승전일 만큼 모두 중요한 경기다. 그것은 관중들의 응원 함성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선수들의 심리적인 압박도 크다. 이렇다 보니 기대가 컸던 선수보다는 예상치 못한 선수의 깜짝 활약이 매번 펼쳐진다. 이런 선수들을 ‘큰 경기에 강한 사나이’나 ‘미칠 줄 아는 선수’로 부른다.

 현재 타이거즈에서 이에 근접한 선수는 손지환이 가장 유력하다. 그는 지난 2년간 주전이었지만, 올해 주목을 받지 못했다. 외야수 변신에 실패하며, 자기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큰 경기에서 그의 오기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타이거즈 선수 중에서 ‘낮 경기’에 유독 강하기 때문이다. 비록 적은 경기수지만 ‘낮 경기’에서는 타율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시즌 기록을 훨씬 뛰어넘었다. 특히 정규 시즌 4개 홈런은 모두 낮 경기에서 나왔고, 이 중 1개의 홈런은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나왔다. 시즌 막판 출장이 이어지며 경기 감각을 살린것도 그의 활약을 예상케 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낮 경기’부진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


 타이거즈가 나서게 될 준플레이오프에서는 1차전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지난 1989년부터 시작된 준플레이오프 제도하에서 1차전 승리팀은 예외없이 ‘100%’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또한 1차전을 패하게 된다면 타이거즈의 시즌 마지막 경기는 10월 9일 준플레이오프 2차전(광주)이 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단일리그 제도하의 3전 2선승제(1999, 2000, 2005년 제외)로 치러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지난 1998년 이후 모든 시리즈가 2경기만에 끝났기 때문이다. 2년전 준플레이오프(광주)에서 타이거즈는 두산 베어스에게 2연패로 무너졌다. 그 날도 10월 9일이었다. 실패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1차전 승부가 중요한 이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공짜
2007. 10. 5. 15:02
2006년 9월 25일 스포홀릭 기사


 곰과 호랑이의 인연은 남다르다. 그것은 ‘단군 신화’에도 잘 나와 있다. 이러한 인연 때문일까? 프로야구에서도 그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바로 기아 타이거즈(해태 포함)와 두산 베어스(OB 포함)이야기다. ‘단군 신화’에서는 끝까지 참아내 인간으로 변신한 곰의 승리로 그려졌다. 그 때문인지 프로야구에서도 베어스가 타이거즈를 통해 웃은 기억이 많았다. 이로 인해 베어스는 ‘미러클’, ‘뚝심’이라는 찬사를 들었고, 타이거즈는 9번 우승 팀 답지 않게 고개를 숙였다.

 막바지에 이른 2006 정규 시즌에서도 이런 관계가 또다시 재현되어, 양 팀의 쫓고 쫓기는 순위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 곰과 호랑이의 얄궂은 인연으로 시작된 양 팀의 치열했던 역사를 되짚어 보자.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두산 베어스 엠블럼 (출처 = 구단 홈페이지)  ◎ 기아 타이거즈 엠블럼 (출처 = 구단 홈페이지)


■ 1995년 - 예상 밖의 싹쓸이 승부와 극명하게 갈린 양 팀의 운명

 양 팀의 치열했던 정규시즌 대결은 11년전인 지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유일한 5백만 관중을 돌파했던 그 당시 프로야구는 시즌 막판까지 순위다툼이 치열했다. 그리고 두 팀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순위 싸움을 하고 있었다. 베어스는 서울 라이벌 LG 트윈스에게 한때 6게임(8월 12일)이나 뒤져 힘들 것으로 여겨졌던 1위 싸움에 뛰어든 상태였고, 타이거즈는 준플레이오프를 성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특히 타이거즈는 4위 자리 확보보다 3위와의 승차 유지가 관건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3위와의 승차가 3게임 이내일 때만 준플레이오프가 성사된다는 ‘게임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길목에서 두 팀이 만났다. 한가위 연휴였던 9월 8일부터 10일까지 더블헤더 포함 운명의 4연전을 광주에서 가진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뜻밖에도 베어스의 4전 전승. 조계현·이대진·이강철·김정수 등 막강한 선발진과 ‘국보급 투수’ 선동열을 마무리로 보유한 타이거즈로서는 충격의 전패였다. 특히 첫날 무명의 신인 송재용에게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당할 만큼 무기력한 타선이 시리즈 전패를 불러왔다.

 4연전이 끝나고 난 뒤 두 팀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먼저 베어스는 6게임차를 극복하고 7월 22일 이후 50일 만에 1위에 등극했다. 이어 트윈스와의 치열한 선두 다툼 속에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후, 롯데 자이언츠를 물리치고 원년이후 무려 13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반면, 타이거즈는 4연전 전까지 5.5게임 차였던 3위 자이언츠와의 간격이 오히려 더욱 벌어지며, 결국 4.5게임 뒤진 채 4위를 하고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1986년 이후 가을 잔치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타이거즈로서는 하필이면 모기업(해태)의 창립 50년 되는 해에 실망스런 결과를 내고 말았다.


■ 1998년 - 마지막 경기에서 뒤바뀐 두 팀의 운명
 3년 뒤 두 팀은 다시 만났다. 이번 맞대결은 1995년과 달리 극적이며 직접적이었다. 왜냐하면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서로 다투는 4, 5위 팀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두 팀의 예정된 경기가 우천 순연되면서, 시즌 마지막 2경기를 통해 판가름 나는 소설같은 일정까지 주어져 더욱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치열한 겉보기와 달리 상황은 타이거즈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우선 경기는 타이거즈 홈인 광주에서 2경기 모두 예정되어 있었고, 베어스의 경우 경기 며칠 전 발생한 교통사고로 일부 선수가 병원신세를 질만큼 상황도 좋지 못했다. 또한 이강철, 이대진, 김상진, 임창용이 버틴 타이거즈 투수진은 충분한 휴식을 통해 베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경기를 앞둔 양 팀의 승차는 1게임이었는데, 이는 타이거즈가 1승이 아니라 1무승부만 거둬도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획득하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리함도 베어스에게는 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원래 교통사고가 발생한 날 치러지기로 예정(9월 29~30일)되어 있던 양 팀의 2연전이 비로 인해 연기가 되며 한숨을 돌렸고, 이 사고와 더불어 한 달 전 꼴찌에서 막판 연승을 통해 마지막 순위싸움까지 온 점이 선수단의 정신력을 더욱 뭉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더군다나 3년 전 원정 4연전을 휩쓴 기억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베어스의 정신력 때문이었을까? 한가위 연휴였던 10월 3, 4일에 펼쳐진 경기는 3년 전처럼 베어스가 예정된 2경기를 모두 이기고 순위를 뒤바꾸며, 극적으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특히 교통사고 당시 부상을 당했던 이경필이 등판을 자원하며 만들어낸 투혼의 승리는 베어스의 정신 자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로써 베어스는 시즌 막판 기적의 8연승으로 1995년 이후 3년 만에 가을 잔치에 초대받았고, 타이거즈는 지난 1984년 이후 처음으로 5할 이하의 승률과 4위권 아래로 팀 순위가 떨어지는 기록을 남겼다. 또한 타이거즈는 이때부터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2001년 - 양 팀 모두 윈 윈
  항상 치열한 접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1년의 경우 이미 3위가 확정된 베어스가 타이거즈에게 간접적인 도움을 준 해였다. 당시 정규 시즌은 라이온즈-유니콘스-베어스 3팀의 상위권 구도가 일찌감치 확정이 되었고, 나머지 5개팀들이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싸움을 펼친 양상이었다.

 종료 한 달 전만 해도 타이거즈가 가장 유리했다. 하지만 막판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온 이글스에게 유리한 고지가 넘어갔다. 그렇다고 타이거즈에게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남아있는 3경기를 모두 이기면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최종일에 맞붙게 될 이글스와의 2연전을 앞두고 펼쳐진 베어스와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했다.

 양 팀은 추석이었던 10월 1일 경기를 가졌다. 과거 추석 연휴 때 아픈 기억 때문인지 이날 타이거즈는 확실한 모습을 보였다. 홈런 3개 포함 19안타를 치고 19-5의 대승을 거둔 것이다. 베어스는 대패를 당했지만 이미 순위를 확정지어 총력전을 펼칠 이유가 없었고, 자신의 파트너가 될 4위팀이 치열한 순위싸움을 하고 올라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다. 타이거즈도 계속해서 4위 탈환의 꿈을 가져갈 수 있는 승리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양 팀 모두 윈윈이었다. 비록 타이거즈가 다음날 이글스와의 첫 경기에서 패하며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가장 부담이 적었던 맞대결로 기억된다.


■ 2002년 - 강팀으로 부상한 타이거즈의 복수
 베어스만 항상 웃음 지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2년 시즌이 그랬다. 시즌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삼성 라이온즈와 선두 다툼을 벌이던 타이거즈는 기아에 인수되고 난 뒤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타이거즈는 시즌 막판까지 1위 다툼을 하고 있었고, 베어스는 이번에도 포스트진출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 팀은 9월 24일 맞대결을 펼쳤다. 이번에도 장소는 광주였다. 양 팀 모두 아직 순위를 확정지은 상태가 아니라 쉽게 물러서기 힘든 접전이 예상되었다. 또한 양 팀 선발투수도 다승 1위를 다투던 레스(베어스)와 키퍼(타이거즈)의 맞대결이라 더욱 관심을 모았다.

 결과는 신구의 조화를 이루며 강팀으로 성장한 타이거즈의 4-3승리였다. 이로써 타이거즈는 1위 싸움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고, 베어스는 자력으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이 무산되었다. 양 팀이 맞붙은 다음날 경기도 타이거즈가 승리를 하며 베어스는 더욱 어려운 처지가 되었고, 결국 5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1998년 타이거즈 전 승리로 시작되었던 포스트시즌 진출이 타이거즈에 의해 4년 만에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 2005년 - 또 다시 기적을 일으킨 베어스와 그 파트너 타이거즈
 2005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많은 전문가들은 타이거즈를 삼성과 함께 우승후보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베어스는 4강 진출도 힘든 하위권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타이거즈는 투타의 불균형속에 하위권을 전전했고, 베어스는 끈끈한 조직력으로 상위권에 포진했다. 결국, 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타이거즈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꼴찌가 확정되었고, 베어스는 막판 상승세를 타며 2위를 달리던 SK 와이번스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즌 최종일이었던 9월 28일 양 팀이 잠실에서 만났다. 이날 경기의 모든 관심은 베어스였다. 왜냐하면 이날 결과에 따라 2위를 달리고 있는 와이번스와 3위 자리를 맞바꿀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는 예상대로 목표가 없는 타이거즈가 중반이후 실점을 허용하며 베어스의 승리로 흘러갔다. 이때 문학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던 와이번스의 소식이 들려오자 잠실의 홈팬들은 경기장을 가로지르며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LG 트윈스가 와이번스를 이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2005 정규 시즌 최종일이었던 9월 28일 잠실에서 펼쳐진 두산 베어스와 기아 타이거즈 경기 종료 장면. 베어스의 극적인 2위가 확정되자 마운드로 뛰어나오는 선수들과 환호하는 팬들.                      ( 사진 = 공짜 )

 기적과 같은 최종일 역전극으로 베어스는 플레이오프에 직행을 하게 되었고, 와이번스는 준플레이오프로 떨어졌다. 이때 기가 꺾인 와이번스는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이글스에게 지며 탈락을 하고 만다. 비록 라이온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지만 베어스는 2001년 이후 4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감격을 누렸다.


■ 2006년 - 운명의 ‘준준(準準)플레이오프’ 5연전
 시즌 내내 5할 승률을 유지하며 중위권을 지킨 타이거즈와 오르락내리락하며 변화가 심했던 베어스가 이번에도 가을 잔치로 가는 최종 티켓을 다투게 되었다.

 이번에는 예년과 달리 승부가 일찍 이뤄졌다. 1차 승부는 ‘잠실 대첩’이라고 명명되어 9월 16, 17일 잠실에서 3연전이 펼쳐졌다. 그리고 9월 21, 22일에는 장소를 바꿔 광주에서 리턴 매치 2연전이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타이거즈가 4승 1패의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특히 잠실에서의 3연전을 타이거즈가 싹쓸이 한 것은 너무나도 컸다. 시리즈가 끝나고 순위는 바뀌어 있었고, 승차까지 벌어졌다. 특히 남아있는 경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승차가 벌어진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 지난 9월 21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펼쳐진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 경기 장면. 이 날 경기는 베어스의 3-0 승리로 끝이났다. 이는 '운명의 5연전' 중 베어스의 유일한 승리였다.                          ( 사진 = 공짜 )

 정황상 유리한 고지는 일단 타이거즈가 선점했다. 반면, 베어스는 벼랑 끝에 몰렸다. 2006 시즌 양 팀의 맞대결은 더 이상 없다. 양 팀 모두 스스로 승수를 쌓아가면서 상대팀의 결과도 챙겨봐야 하는 입장이다. 시즌 종료를 일주일 앞둔 9월 24일까지 양 팀의 승차는 1.5게임차다. 타이거즈는 6경기, 베어스는 7경기가 남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현재까지 타이거즈가 유리한건 분명하지만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왜냐하면 앞서 살펴본 과거가 타이거즈에게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베어스에게는 항상 믿기지 않는 기적이 따라다녔다. 과연 올해는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 될 지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