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6. 17:35

(방문일 : 2006년 8월 24일)


 인천 야구장? 도원 야구장? 숭의 야구장?

 제 각각 명칭인 것 같지만, 이는 하나의 야구장을 뜻하는 똑같은 이름(이하 숭의)들이다. 과거 인천의 짠물 야구를 상징했던 곳이자, 문학 야구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인천을 연고로 했던 프로 5개팀이 모두 거쳐갔던 인천 야구의 메카.

 근래들어 추억의 꼴찌로 사랑받지만 당시에는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청보 핀토스', 무너졌던 인천 야구팬들의 자존심을 세워줬던 '태평양 돌핀스', 사상 처음으로 우승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지만 인천을 등져버린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인천에 새 기운을 불어넣은 'SK 와이번스'까지. 이 팀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갔던 그 야구장.

 인천 야구장으로 불리웠던 지난 8, 90년대 TV속에 비쳐지던 이 곳에 대한 인상은 정말 열악하다는 느낌만이 가득했다. 지금이야 지난 1996년 현대 유니콘스가 팀을 인수하면서 외야에 인조잔디를 깔고 내야에는 최고급 검은 모래를 뿌리면서 야구장 환경이 180도 달라졌지만, 그 이전에는 외야에 심어진 잔디가 잡초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드문드문 자라있었고, 흙도 고르지 못해 불규칙 바운드가 나오거나 선수들이 돌을 골라내는 장면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곳 야구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외야의 높은 철조망 펜스도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었다. 지금이야 아는 내용이지만 야구 규칙을 잘몰랐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이것 때문에 내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철조망을 맞고 나오는 공을 외야수가 바로 잡으면 아웃인지 아닌지 여부.

 바로 그 장소가 조만간(10월경 예정) 이름만을 남긴 채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현재 이 일대에서 진행중인 '숭의운동장 도시개발사업(인천도시개발공사)'에 따라 대표적인 노후화 시설인 이곳이 철거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된 것.  이미 바로 옆 숭의 종합 운동장은 지난 6월 철거가 이뤄지고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동대문 야구장 철거에 이어 또 다시 찾아온 슬픔이다.




         1부. 인천 숭의 야구장은?

* 개장 : 1964년(1978, 1982, 1983, 1999년 개보수)
* 면적 : 대지(43,643 ㎡), 구장(17,829 ㎡)
* 좌석 : 12,000석
* 크기 : 좌우 91m, 중앙 110m
* 잔디 : 내야 - 흙,  외야 - 인조 잔디
* 기타 : 전광판, 조명탑
* 관리 : 인천광역시체육회(클릭)
 
 인천 숭의 야구장은 1964년 전국 체육 대회를 위해 지어지면서 그 역사를 시작한다. 이후 전국 대회 출전권을 따내기 위한 '인천고'와 '동산고'의 치열한 맞수 대결 장소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천 야구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이 시기에 시설 보수 공사를 통해 야구장 환경이 대폭 개선되었는데, 여기에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보조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것도 한 이유였다.
 
 이렇게 영원히 야구 경기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이 곳도 1999년 시즌이 끝나고 최대 위기를 맞이한다. 연고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입성하기 위해 인천을 떠나기로 했기 때문. 하지만 새로 창단한 SK 와이번스가 인천을 연고로 하면서, 야구장의 역할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수명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1년 시즌이 끝나고 SK 와이번스가 홈 구장을 문학 야구장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문학 야구장을 놔두고 굳이 열악한 환경의 숭의 야구장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2년 6월 9일 정규 시즌 고별전을 통해 프로야구 정식 경기와 작별을 했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옛 주인인 현대 유니콘스.

 이렇게 되자 숭의 야구장의 철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노후화된 시설과 함께 낙후된 주변 환경을 감안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2004년 3월 14일 시범 경기를 통해 당시 떠나는 숭의 야구장를 아쉬워 하는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2004년부터 매해 신문의 단골 기사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숭의 야구장은 반대로 더욱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역 아마팀들의 경기와 전국 대회(미추홀기)는 물론이고, 사회인과 연예인 야구가 꾸준히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3월에는 지난해 동대문 야구장 철거 여파로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경기 상당수가 이 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앞선 고별전을 통해 작별한 줄 알았던 프로야구와의 인연도, 지난 2006년부터 SK 와이번스가 2군 홈구장으로 사용해오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당장 숭의 야구장을 철거하고 난 뒤, 대체 할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 그래서 당초 계획보다 그 수명이 길어졌다. 안타까운것은 그렇게 시간을 벌어준 동안 마땅한 대체 야구장 마련 없이 숭의 야구장이 철거된다는 것. 다행히 새로운 야구장 착공이 시작된 것은 기쁜 소식이지만, 지난 8월말에서야 공사가 시작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야구장이 완공되기까지 이 곳을 앞마당으로 사용했던 선수들이 떠돌아 다녀야 할 것을 생각하면, 떠나는 숭의 야구장의 발걸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다. 


         2부. 인천 숭의 야구장은 어디?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 6번지

 행정구역상으로 참 묘한 지점에 야구장이 위치해 있다. 그것은 중구와 남구의 경계가 지나는 곳에 들어서 있기 때문. 이로 인해 겉으로는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야구장과 종합 운동장이 전자는 중구 도원동, 후자는 남구 숭의동에 속해 있다.(그런데 한 기사를 보면 도원동에서 숭의동으로 행정구역이 변경 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클릭)

 바로 이 때문에 이 곳 야구장의 이름이 여러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학 야구장이 생기고 난 이후, 인천 야구장이라는 이름을 쓰기 애매해진 상황에서 행정 구역에 맞게 '도원 야구장'이 맞다는 측과, 숭의 운동장과 같은 시설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숭의 야구장'으로 해야한다는 측의 의견이 그것.(하지만 여기에서는 최근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숭의 야구장으로 한다.)
 
 이렇게 주소상으로는 복잡한 비밀이 있지만, 찾아가기는 정말 쉬운 야구장이다. 우리 나라에 존재하는 야구장 가운데 '가장 찾아가기 쉬운 야구장'을 꼽는다면, 주저없이 이 곳이라고 말 할 자신이 있을 만큼 코 앞에 야구장이 있다.

 그 비밀은 지하철에 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도원역'에 내리면 끝이다. 물론 다른 야구장 중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곳이 있지만, 숭의 야구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곳은 주변을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다. 도원역을 빠져나오면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이 야구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호등을 건너 곧장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길어봤자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끝.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


         3부. 인천 숭의 야구장 구경하기?

  ▶ 야구장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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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장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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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엔 보기드문 귀여운(?) 전광판




         4부. 인천 숭의 야구장에서 만들어진 주요 기록들


* 1983년 9월 26일 -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 이전 경기 완투 이후 이틀만에 선발 등판하여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5-0 완봉승 기록. 이는 프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즌 30번째 승리. 참고로 장명부는 시즌 30승 가운데 12승을 인천에서 기록

* 1984년 6월 27일 - 올스타전 3차전 개최(서군 4 : 2 동군, 최종 2승 1패로 동군 우세. MVP는 롯데 자이언츠 김용희)

* 1985년 4월 16일 - 삼미 슈퍼스타즈, OB 베어스에게 (8회초) 2사후 최다 실점(10점) 및 1이닝 최다 2루타 허용
* 1985년 4월 27일 -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 1경기 최다 실점(12실점, 6이닝 36타자 16안타 44구)
* 1985년 4월 30일 - 최계훈(삼미 슈퍼스타즈), 완봉 역투로 팀의 18연패를 끊음. 팀은 다음날 청보 핀토스로 매각
* 1985년 8월 25일 ~ 1987년 6월 18일 - 삼성 라이온즈, 청보 핀토스를 상대로 인천에서 특정 구장 연승 기록(14연승)
* 1985년 - 장명부(삼미→청보 핀토스), 시즌 25패 가운데 14패를 인천에서 기록

* 1986년 4월 27일 - 장명부(청보 핀토스), 1경기 최다 피안타(16개, 36타자 12실점)
* 1986년 7월 15일 - 청보 핀토스 최계훈과 조병천, 프로 최초로 합작해서 매회 탈삼진 기록(최계훈 3개, 조병천 11개)
* 1986년 7월 27일 - 청보 핀토스와 해태 타이거즈. 한국 프로야구 최초 15이닝 0-0 무승부 경기. 더욱이 양 팀 선발투수 모두 15이닝 완투 기록. 김신부(청보 핀토스)는 15이닝 54타자 8피안타 10탈삼진, 차동철(해태 타이거즈)은 15이닝 51타자 10피안타 6탈삼진(이는 2008년 9월 3일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잠실 경기에서 '연장 18회 1-0'이 나오기까지 유일 무이한 기록이었음.)

* 1987년 4월 23일 ~ 1987년 5월 30일 - 청보 핀토스, 홈 경기 14연패
* 1987년 8월 25일 - 임호균(청보 핀토스), 해태 타이거즈 상대로 경기 최소 투구(73개) 완봉승(27타자 2피안타 2사사구, 5-0 승)
* 1987년 8월 31일 - 정구선(롯데 자이언츠), 프로 통산 3호 사이클링 히트 기록

* 1988년 5월 5일 - 김동기(태평양 돌핀스), 1이닝 최다 몸에 맞는 공(2개, 삼성 라이온즈)
* 1988년 5월 28일 -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10연속 타자 안타 및 11 연속 타자 득점(7회초, 총 15안타 11득점)
 
* 1989년 10월 8일 - 태평양 돌핀스, 인천 연고 팀으로는 최초로 포스트 시즌(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후 1차전에서  박정현의 완봉투와 연장 14회말 나온 김동기(이상 태평양 돌핀스)의 끝내기 3점홈런으로 승리

* 1990년 5월 14일 - 프로야구 사상 두번째 끝내기 폭투 경기(투수 송진우:빙그레 이글스 - 타자 김경문:태평양 돌핀스)
* 1990년 9월 3일, 19일 - 최창호(태평양 돌핀스), 각각 선발타자 전원 탈삼진 기록 (LG 트윈스, 빙그레 이글스)

* 1992년 8월 19일 - 장원진(OB 베어스), 최초의 양쪽 타석 안타 및 2루타 기록

* 1993년 6월 20일 - 김홍집(태평양 돌핀스), LG 트윈스 상대로 13이닝 동안 탈삼진 16개 기록

* 1994년 10월 22일 - 태평양 돌핀스, 인천 연고 팀 사상 첫 한국 시리즈 경기. 최종 결과는 LG 트윈스에게 0승 4패로 패

* 1996년 10월 20일 - 정명원(현대 유니콘스), 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포스트 시즌 유일무이한 노히트 노런 기록(9이닝 3사사구)

* 1997년 9월 20일 - 송진우(한화 이글스)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통산 100승 달성. 이로부터 9년 뒤인 2006년, 송진우는 대망의 200승을 기록. 현재 한국 프로야구 최다승(209승) 투수

* 1998년 5월 18일 - 이대진(해태 타이거즈), 소위 '쿨바에서 쿨바까지'로 불리는 10 연속 타자 탈삼진 기록. 또한 매회 탈삼진(통산 11호), 선발 타자 전원 탈삼진(통산 12호) 1경기 최다 탈삼진 역대 공동 3위의 위업도 함께 달성
* 1998년 10월 30일 - 현대 유니콘스, 인천 연고 팀 사상 첫 한국 시리즈 우승(LG 트윈스 상대로 4승 2패)

* 2000년 10월 11일 - 현대 유니콘스 정규시즌 사상 첫 90승 돌파. 131경기만의 기록(90승 2무 39패 0.698)이었으며, 최종적으로는 1승을 추가해 91승 2무 40패(0.695)로 시즌을 마감. 현재까지도 정규 시즌 최다승 기록

* 2001년 9월 22일 - 에르난데스(SK  와이번스),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외국인 최초(통산 9호) '200이닝-200탈삼진' 달성

* 2002년 6월 9일 - SK 와이번스, 정규 시즌 고별전 개최. 상대는 현대 유니콘스

* 2004년 3월 14일 - SK 와이번스, 시범경기를 통해 1군 최종 고별전 개최

* 2008년 9월 2일 - SK 와이번스, 기아 타이거즈 상대로 2군 최종전 (9-5 승)
* 2008년 9월 5일 - 마지막 경기. 제6회 남구청장기 초·중고 야구대회를 끝으로 공식 임무 마감.
* 2008년 10월 ??일 - 철거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다준 '인천/도원/숭의 야구장'

안녕~ 잘가...



 

Posted by 공짜
2008. 8. 16. 19:03


(방문일 : 2007년 4월/7월)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 인천, 경기, 강원을 연고로 했던 삼미 슈퍼스타즈의 공식 홈 구장은 인천 야구장(현 인천광역시 도원동 숭의야구장)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첫 홈경기 장소도 이곳? 아니다. 그들의 역사적인 홈 개막전은 강원도 춘천(온의동 춘천 종합운동장 옆)에서 열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그 장소는 공터가 되어있다. 지난 2000년초 동대문야구장처럼 철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다른 부지에 대체 야구장이 들어서게 되었고, 그 곳이 바로 아래에 소개될 춘천시 송암동 의암야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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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춘천 의암야구장은?

* 탄생 : 2002년 5월 착공 ~ 2004년 11월 완공, 그라운드 보완 공사 후 2005년 9월 28일 준공(총 사업비 171억원)
* 크기 : 좌우 98m, 중앙 120m
* 면적 : 13,356㎡,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 잔디 : 내/외야 - 천연잔디
* 좌석 : 8,160석(고정:6,590 외야:1,570)
* 기타 : 조명탑(강원도 유일, 고화질 TV시청이 가능한 2500룩스), 최신 전광판, 음향 시설, 펜스 보호대, 중간 좌석 천정 덮개.
* 주차 : 총 174면(장애인 10면)
* 관리 : 춘천시 시설관리공단 


 밖에서 볼 때는 리틀 문학야구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내부의 1, 3루 관중석은 목동, 군산야구장과 흡사한 모습을 지닌 구장이다. 특히 본부석 내부의 구장 통로나 관중석 배치등을 보면 군산 야구장과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외야에는 국내에서 보기드문 흙 바닥형 관중석이 있다. 이 또한 군산 야구장과 같은점이다.(군산 야구장도 몇년전까지 외야에는 언덕형 흙 바닥 관중석이었다)

 전체적으로 구장 내부 시설은 깔끔하다. 이는 완공된지 얼마 안 된 탓도 있지만 그만큼 활용도가 낮았다는 반증이다. 관중석 의자나 바닥은 때가 타지 않은 새 모습 그대로다.


          2부. 춘천 의암야구장은 어디?

 : 강원도 춘천시 송암동 258외 5필지

 강원도라 언뜻 멀게 느껴지지만 실제 가본다면 아주 가까운 곳에 좋은 야구장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춘천 외곽에 위치한 의암야구장은 서울에서 춘천으로 향할때 시내권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왼쪽으로 돌아 의암호가 보이는 곳으로 따라가면 만날 수 있다.

 야구장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에서 춘천을 도착한 후 야구장으로 이동하는 순서로 이뤄진다. 먼저 강원도 춘천을 오기위해서는 두 가지 대중교통 수단이 있다. 버스와 기차.

 1안) 기차(청량리→남춘천)
 먼저 기차는 그 유명한 ‘춘천가는 기차’ 그 노선이다. 낭만스런 야구 여행을 원한다면 이만한 선택이 없을 것이다.(2008년 8월 15일 현재 춘천역~남춘천역 복선화 공사로 인해 경춘선은 남춘천역까지만 운행되고 있음. 고로 남춘천역에서 내려야함.) 춘천으로 통하는 기차는 서울에서 출발하는 단일 노선이다. 그런데 서울, 용산, 영등포 등등 많은 역들 가운데 춘천행 기차는 'only 청량리‘역이다. 이 점 절대 착오가 있어서는 안 된다. 아침 6시 15분 첫 차부터 밤 10시 20분 막차까지 매 시간 춘천으로 가는 열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전편 무궁화다.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이며, 평균 10개 정도의 역을 거쳐간다.

 2안) 버스(해당지역→춘천)
 기차를 이용하기 힘들거나 소요 시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선 서울에서 출발해야만 하는 기차와는 달리 다른 도시에서 춘천으로 연결되는 노선이 있기 때문이다.(해당 노선 확인은 ‘춘천시외버스터미널과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또는 ‘춘천시 교통정보를 확인해 본다.)

 3안) 버스(서울→춘천)
 만약 해당 노선이 없거나 시간이 맞지 않다면, 해당 지역에서 서울('강남'이나 '동서울')을 거쳐 춘천으로 가는 방법이 가장 좋다. 강남 센트럴시티의 경우 소요시간이 2시간으로 나와 있지만, 실제 이용해 본 결과 1시간 30분이 소요되어 예상보다 빨리 도착이 가능하다.

 이렇게 해서 춘천에 도착을 했다면 기차의 경우 남춘천역, 버스의 경우 시외버스터미널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3곳 모두 위치가 비슷비슷한데 버스가 아주 조금 더 야구장과 가깝다.

 * 춘천→야구장 : 택시? 도보?
 하지만 야구장이 위치한곳이 변두리다보니 이곳으로 연결되는 교통편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용해보지는 않았지만 버스노선이 1시간에 1대꼴로 다닌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도 없이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 특히 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많은 택시들이 버스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어서 쉽게 택시 이용이 가능하다.(택시비는 10분정도 거리에 3,500~4,000원 정도.)

 만약 돈도 없고 시간도 남는다면 야구장까지 걸어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1시간정도가 소요된다.

 ★ 집으로 가기 ★
 손쉽게 야구장으로 왔다면 가는길도 쉬워야 할텐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우선 야구장에서 춘천 시내권으로 이동이 어렵다. 가뜩이나 시내버스 편도 찾기 힘든판에, 변두리다 보니 택시 잡기도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터미널이나 역이 있는 시내권으로 와야한다. 걸어서라도...(1시간 소요).

 도무지 기다려도 이용할만한 교통편을 찾을 수 없다면, 최후의 보루 콜 택시를 이용해야 한다.(업체 검색은 '다음' 또는 '네이버'에서 확인 후 번호 서너개 정도는 미리 메모해가는 센스) 요금은 경기장이 위치한 곳이 변두리다 보니까 실제 금액에 1,000원을 추가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해당 경기가 야간 경기로 열렸다면 더욱 더 애를 태운다. 오후 6시에 시작된 경기라고 가정했을때 평균 3시간 소요라고 본다면 저녁 9시에 야구장을 나서야 하는데, 춘천의 교통편은 뭐가 아쉬운지 이 곳에서 하루 묵을것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교통편 막차시간을 보면 알 수 있다.

 * 기차 : 남춘천 → 청량리 (저녁 9시 45분)
 * 버스 : 춘천 → 강남 센트럴 (저녁 9시)
 * 버스 : 춘천 → 상봉 (저녁 9시 30분)
 * 버스 : 춘천 → 동서울 (직행 - 저녁 9시 30분 // 완행 - 저녁 10시)

 이 마지막끈을 놓친다면 무조건 춘천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한다. 결국, 다음날 스케줄로 인해 무조건 이동을 해야한다면 야구를 보는 동안 시간 체크는 필수다. 물론 자가용이있는 야구팬이라면 이런 걱정이 필요없다.


          3부. 춘천 의암야구장 구경하기

 1) 야구장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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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외야 담장과 백스크린 그리고 전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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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내야 관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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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독특한 외야 관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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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선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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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부. 춘천 의암야구장 주변 둘러보기

● 스포츠 테마파크?
 야구장이 위치한 송암동 주변에는 각종 스포츠 시설이 곳곳에 위치해 있다. 우선 야구장 건너편에 소프트볼 경기장이 있고 바로 그 옆에 실내와 실외 시설을 모두 갖춘 의암 빙상장이 있다. 그리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사이클 경기장과 춘천 승마장이 있다. 이외에도 야구장 주변에는 하키와 사격 경기장이 있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춘천CC도 주변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 야구장 옆에는 종합 경기장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그야말로 스포츠 테마 파크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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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도 관광지와 의암호
 뭐니뭐니 해도 춘천하면 관광지를 빼놓을수 없다. 호반의 도시 춘천. 야구장 앞쪽으로는 북한강의 의암호가 펼쳐져있고 그 위쪽으로 그 유명한 중도 관광지가 있다. 그리고 야구장 아래쪽 서울 방향쪽으로 가다보면 강촌과 남이섬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가볼만한 곳이 산재해 있는 춘천이다. 자세한 내용은 '춘천관광넷'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함기용 선생 기념비
 2001년 4월 17일. 이날 미국 보스턴에서 전해진 반가운 소식이 우리 국민들을 기쁘게 했다. 이봉주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2시간 9분 43초). 무려 51년만의 한국 선수 우승 소식이었다. 바로 이 51년 전 우승 선수가 함기용 선생이었다. 6.25 직전이었던 1950년 4월 19일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2시간 32분 39초로 가장 결승 테이프를 끊은것이다. 1947년 서윤복 선생 우승 이후 3년만이었으며, 당시 그의 나이 약관 20세. 참고로 이 대회에서 1~3위는 모두 한국 선수가 휩쓸었는데, 송길윤 선수가 2위, 최윤칠 선수가 3위의 쾌거를 차지했다.

 그리고 이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한 비가 의암 야구장 입구 오른쪽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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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부. 춘천 의암야구장의 미래는?

 현재 여느 프로야구단이 사용중인 구장에 비해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전혀 뒤질것이 없는 의암야구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암야구장의 신세는 처량하기만 하다. 야구장으로서 활용도가 극히 낮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장 이후 이곳은 당초 기대(프로야구 경기 유치 등)와는 다르게 흘러가며, 세금만 축내는 애물단지와 같은 장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끔 초중고 대학부 아마추어 경기가 열릴 뿐이었고, 그 때만 이곳이 야구장임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다 지난해(2007년) 개장 이후 처음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잇따른 경기유치 때문이다. 기존 도내 아마추어 경기나 전국 규모 일부 지역예선이 아닌 전국 규모의 단일 아마추어 대회를 유치한 것이다. 여기에 프로야구 2군 경기까지 성사시킨 것은 더욱 이곳을 주목받게 만들었다. 총 12경기 가운데 7경기가 이곳에서 열렸고, 그 중 1경기는 야간 경기였다.

 이와 함께 프로야구 유망주를 위한 제 1회 퓨처스 올스타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개장이후 가장 바쁜(?) 한해를 보내면서, 의암야구장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하지만 올해(2008년)는 주춤한 모습이다. 전국 규모의 아마추어 대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하긴 했지만, 지난해 주목받은 계기가 되었던 2군 경기가 단 1경기도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로 제 2회 퓨처스 올스타전 유치를 성공시키며 다시 한번 이곳이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지만, 사실상 사회인 야구 대관을 통해 야구장으로서 생명을 유지해나가고 있는 점은 좋은 시설에 비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다.

 어떤 팀이라도 잠시나마 이곳에 정착한다면 좋겠지만, 이동에 대한 부담과 늘어날 유지 비용 때문인지 쉽지가 않은것 같다. 과연 언제쯤 춘천 의암야구장은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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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짜
2008. 3. 12. 02:58

 타이거즈와 이글스의 맞대결이 펼쳐진 지난해 8월 21일 광주 무등야구장. 1-4로 뒤진 타이거즈는 8회말 1점을 따라 붙으며 이글스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상황은 무사 2-3루 역전찬스까지 이어졌다. 타석에는 거포 최희섭. 자연스럽게 이글스 외야수들은 뒤로 물러서며 깊숙한 수비 위치를 선택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변화구를 툭 갖다댄 최희섭의 타구는 중견수 앞쪽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포물선을 그렸다. 당연히 김수연(이글스 중견수)은 안타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전력질주를 한 뒤 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일은 벌어졌다. 자연스럽게 미끌어질것을 예상했는지 몸을 날렸지만 무등 야구장 인조잔디의 강한 마찰력에 몸이 그대로 쳐박히면서, 그 반동으로 딱딱한 바닥에 얼굴을 정면으로 부딪혔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김수연은 한동안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를 않아 걱정을 자아냈으나, 잠시 뒤 스스로 일어나면서 지켜보고 있던 모든이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부축을 받으며 덕아웃으로 향하던 김수연은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천연 잔디나 고급 인조 잔디에서 선수들은 다이빙 이후 몸이 미끄러지도록 운동장에 몸을 맡긴다. 이는 스스로 몸을 보호하기 위한 교과서적인 플레이다. 일부러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면 오히려 몸에 무리가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2004년부터 설치된 광주 무등야구장 인조 잔디는 선수들이 맡기는 몸을 철저히 거부해왔다. 특히 해가 갈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소위 카페트 잔디.

 이를 가장 잘 아는 타이거즈 선수들은 이를 눈치채고 언제부터인가 몸을 날리는 것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근성있는 플레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 나온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무등 야구장이 익숙하지 않은 방문팀 선수들은 자신들의 홈구장과 같겠지라는 당연한 생각으로 몸을 날렸다가 김수연 선수처럼 큰 화를 입곤했다.

 2006년 5월 7일 콜리어(당시 이글스 2루수)는 3회말 장성호의 안타성 직선 타구를 몸을 날리며 잡아내는 명장면급 호수비를 펼쳤다. 놀라운 장면이었다. 여기에는 수준급 수비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과연 어떻게 무등 야구장 인조 잔디위에서 과감하게 몸을 날릴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콜리어는 곧바로 부상으로 교체되고 말았다. 그 여파는 생각보다 커서 이후 1군 제외와 재활을 거쳐 다시 경기에 나서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5월 30일 경기 출장)이 필요했다.

 2007년 6월 19일에는 팀의 키스톤 콤비가 모두 부상의 피해를 입는 장면도 나왔다. 이날 유격수로 나온 김민재(이글스)는 4회말 자신의 머리위로 넘어가는 이현곤의 안타성 타구를 껑충뛰어 잡아냈으나 착지하는 과정에서 손목에 부상을 입었고, 5회말 2루수 한상훈(이글스)은 이재주의 안타성 타구를 잡기위해 몸을 날리는 과정에서 역시 손목에 타박상을 입고 말았다. 그 결과 김민재는 다음날 경기에 결장했고, 한상훈은 경기 중반이후 투입되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한화 이글스 선수들이 부상의 피해자였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인데, 이제 올 시즌부터 이글스를 비롯해 모든 선수들은 이런 걱정을 조금은 덜어도 좋을 것 같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등 야구장의 인조 잔디가 새로운 형식의 인조 잔디로 교체가 되어 선수들은 물론이고 팬들에게 선 보일 준비를 모두 마쳤기 때문이다. 10여억원의 공사비를 들여 지난 1월 중순부터 3월초까지 이어진 작업의 결과다.

 새로운 잔디는 시범 경기 기간인 13일(목)부터 21일(금)까지 8 경기를 통해 미리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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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시즌을 앞두고 인조 잔디 교체 공사가 끝난 광주 무등야구장 모습




          ● 새로운 잔디를 만나기전에 악명 높았던 무등 야구장의 '카페트 인조잔디' 되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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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눌려 붙을만큼 눌려서 탄력을        ◎ 선수들의 부상 방지를 위해             ◎ 비가 조금만 와도 고이는건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잔디 상태          경기 전 물을 꼭 뿌려야한다                물방개 시절이나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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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환경에서 선수들은 연이어 쓰러졌다.(왼쪽 : 이용규, 오른쪽 : 홍세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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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팬들이 들고 일어섰다. 2006년(왼쪽)과 2007년(오른쪽) 무등 야구장에 걸린 팬들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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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은 못하지만 선수들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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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등 야구장의 새로운 인조 잔디 구경 하기(부제 : 변화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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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초 인조 잔디 관련 자제가 야구장 앞에서 공사를 앞두고 쌓여 있는 모습. 인조 잔디 교체가 현실화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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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트'는 이제 안녕...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