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5. 15:02
2006년 9월 25일 스포홀릭 기사


 곰과 호랑이의 인연은 남다르다. 그것은 ‘단군 신화’에도 잘 나와 있다. 이러한 인연 때문일까? 프로야구에서도 그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바로 기아 타이거즈(해태 포함)와 두산 베어스(OB 포함)이야기다. ‘단군 신화’에서는 끝까지 참아내 인간으로 변신한 곰의 승리로 그려졌다. 그 때문인지 프로야구에서도 베어스가 타이거즈를 통해 웃은 기억이 많았다. 이로 인해 베어스는 ‘미러클’, ‘뚝심’이라는 찬사를 들었고, 타이거즈는 9번 우승 팀 답지 않게 고개를 숙였다.

 막바지에 이른 2006 정규 시즌에서도 이런 관계가 또다시 재현되어, 양 팀의 쫓고 쫓기는 순위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닌, 곰과 호랑이의 얄궂은 인연으로 시작된 양 팀의 치열했던 역사를 되짚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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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 베어스 엠블럼 (출처 = 구단 홈페이지)  ◎ 기아 타이거즈 엠블럼 (출처 = 구단 홈페이지)


■ 1995년 - 예상 밖의 싹쓸이 승부와 극명하게 갈린 양 팀의 운명

 양 팀의 치열했던 정규시즌 대결은 11년전인 지난 19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유일한 5백만 관중을 돌파했던 그 당시 프로야구는 시즌 막판까지 순위다툼이 치열했다. 그리고 두 팀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순위 싸움을 하고 있었다. 베어스는 서울 라이벌 LG 트윈스에게 한때 6게임(8월 12일)이나 뒤져 힘들 것으로 여겨졌던 1위 싸움에 뛰어든 상태였고, 타이거즈는 준플레이오프를 성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특히 타이거즈는 4위 자리 확보보다 3위와의 승차 유지가 관건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3위와의 승차가 3게임 이내일 때만 준플레이오프가 성사된다는 ‘게임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길목에서 두 팀이 만났다. 한가위 연휴였던 9월 8일부터 10일까지 더블헤더 포함 운명의 4연전을 광주에서 가진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뜻밖에도 베어스의 4전 전승. 조계현·이대진·이강철·김정수 등 막강한 선발진과 ‘국보급 투수’ 선동열을 마무리로 보유한 타이거즈로서는 충격의 전패였다. 특히 첫날 무명의 신인 송재용에게 8회까지 노히트노런을 당할 만큼 무기력한 타선이 시리즈 전패를 불러왔다.

 4연전이 끝나고 난 뒤 두 팀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다. 먼저 베어스는 6게임차를 극복하고 7월 22일 이후 50일 만에 1위에 등극했다. 이어 트윈스와의 치열한 선두 다툼 속에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후, 롯데 자이언츠를 물리치고 원년이후 무려 13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반면, 타이거즈는 4연전 전까지 5.5게임 차였던 3위 자이언츠와의 간격이 오히려 더욱 벌어지며, 결국 4.5게임 뒤진 채 4위를 하고도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1986년 이후 가을 잔치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타이거즈로서는 하필이면 모기업(해태)의 창립 50년 되는 해에 실망스런 결과를 내고 말았다.


■ 1998년 - 마지막 경기에서 뒤바뀐 두 팀의 운명
 3년 뒤 두 팀은 다시 만났다. 이번 맞대결은 1995년과 달리 극적이며 직접적이었다. 왜냐하면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서로 다투는 4, 5위 팀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두 팀의 예정된 경기가 우천 순연되면서, 시즌 마지막 2경기를 통해 판가름 나는 소설같은 일정까지 주어져 더욱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치열한 겉보기와 달리 상황은 타이거즈가 절대적으로 유리했다. 우선 경기는 타이거즈 홈인 광주에서 2경기 모두 예정되어 있었고, 베어스의 경우 경기 며칠 전 발생한 교통사고로 일부 선수가 병원신세를 질만큼 상황도 좋지 못했다. 또한 이강철, 이대진, 김상진, 임창용이 버틴 타이거즈 투수진은 충분한 휴식을 통해 베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경기를 앞둔 양 팀의 승차는 1게임이었는데, 이는 타이거즈가 1승이 아니라 1무승부만 거둬도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획득하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불리함도 베어스에게는 큰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원래 교통사고가 발생한 날 치러지기로 예정(9월 29~30일)되어 있던 양 팀의 2연전이 비로 인해 연기가 되며 한숨을 돌렸고, 이 사고와 더불어 한 달 전 꼴찌에서 막판 연승을 통해 마지막 순위싸움까지 온 점이 선수단의 정신력을 더욱 뭉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더군다나 3년 전 원정 4연전을 휩쓴 기억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베어스의 정신력 때문이었을까? 한가위 연휴였던 10월 3, 4일에 펼쳐진 경기는 3년 전처럼 베어스가 예정된 2경기를 모두 이기고 순위를 뒤바꾸며, 극적으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특히 교통사고 당시 부상을 당했던 이경필이 등판을 자원하며 만들어낸 투혼의 승리는 베어스의 정신 자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었다. 이로써 베어스는 시즌 막판 기적의 8연승으로 1995년 이후 3년 만에 가을 잔치에 초대받았고, 타이거즈는 지난 1984년 이후 처음으로 5할 이하의 승률과 4위권 아래로 팀 순위가 떨어지는 기록을 남겼다. 또한 타이거즈는 이때부터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우승과는 거리가 먼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 2001년 - 양 팀 모두 윈 윈
  항상 치열한 접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1년의 경우 이미 3위가 확정된 베어스가 타이거즈에게 간접적인 도움을 준 해였다. 당시 정규 시즌은 라이온즈-유니콘스-베어스 3팀의 상위권 구도가 일찌감치 확정이 되었고, 나머지 5개팀들이 시즌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싸움을 펼친 양상이었다.

 종료 한 달 전만 해도 타이거즈가 가장 유리했다. 하지만 막판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온 이글스에게 유리한 고지가 넘어갔다. 그렇다고 타이거즈에게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남아있는 3경기를 모두 이기면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최종일에 맞붙게 될 이글스와의 2연전을 앞두고 펼쳐진 베어스와의 경기는 무조건 이겨야 했다.

 양 팀은 추석이었던 10월 1일 경기를 가졌다. 과거 추석 연휴 때 아픈 기억 때문인지 이날 타이거즈는 확실한 모습을 보였다. 홈런 3개 포함 19안타를 치고 19-5의 대승을 거둔 것이다. 베어스는 대패를 당했지만 이미 순위를 확정지어 총력전을 펼칠 이유가 없었고, 자신의 파트너가 될 4위팀이 치열한 순위싸움을 하고 올라오길 바라는 마음에서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다. 타이거즈도 계속해서 4위 탈환의 꿈을 가져갈 수 있는 승리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양 팀 모두 윈윈이었다. 비록 타이거즈가 다음날 이글스와의 첫 경기에서 패하며 포스트 시즌 진출이 좌절되었지만 가장 부담이 적었던 맞대결로 기억된다.


■ 2002년 - 강팀으로 부상한 타이거즈의 복수
 베어스만 항상 웃음 지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02년 시즌이 그랬다. 시즌 초반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삼성 라이온즈와 선두 다툼을 벌이던 타이거즈는 기아에 인수되고 난 뒤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그리고 타이거즈는 시즌 막판까지 1위 다툼을 하고 있었고, 베어스는 이번에도 포스트진출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양 팀은 9월 24일 맞대결을 펼쳤다. 이번에도 장소는 광주였다. 양 팀 모두 아직 순위를 확정지은 상태가 아니라 쉽게 물러서기 힘든 접전이 예상되었다. 또한 양 팀 선발투수도 다승 1위를 다투던 레스(베어스)와 키퍼(타이거즈)의 맞대결이라 더욱 관심을 모았다.

 결과는 신구의 조화를 이루며 강팀으로 성장한 타이거즈의 4-3승리였다. 이로써 타이거즈는 1위 싸움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고, 베어스는 자력으로 준플레이오프 진출이 무산되었다. 양 팀이 맞붙은 다음날 경기도 타이거즈가 승리를 하며 베어스는 더욱 어려운 처지가 되었고, 결국 5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1998년 타이거즈 전 승리로 시작되었던 포스트시즌 진출이 타이거즈에 의해 4년 만에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 2005년 - 또 다시 기적을 일으킨 베어스와 그 파트너 타이거즈
 2005 시즌이 시작되기 전 많은 전문가들은 타이거즈를 삼성과 함께 우승후보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반면, 베어스는 4강 진출도 힘든 하위권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타이거즈는 투타의 불균형속에 하위권을 전전했고, 베어스는 끈끈한 조직력으로 상위권에 포진했다. 결국, 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타이거즈는 창단 이후 처음으로 꼴찌가 확정되었고, 베어스는 막판 상승세를 타며 2위를 달리던 SK 와이번스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즌 최종일이었던 9월 28일 양 팀이 잠실에서 만났다. 이날 경기의 모든 관심은 베어스였다. 왜냐하면 이날 결과에 따라 2위를 달리고 있는 와이번스와 3위 자리를 맞바꿀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는 예상대로 목표가 없는 타이거즈가 중반이후 실점을 허용하며 베어스의 승리로 흘러갔다. 이때 문학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던 와이번스의 소식이 들려오자 잠실의 홈팬들은 경기장을 가로지르며 환호를 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LG 트윈스가 와이번스를 이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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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 정규 시즌 최종일이었던 9월 28일 잠실에서 펼쳐진 두산 베어스와 기아 타이거즈 경기 종료 장면. 베어스의 극적인 2위가 확정되자 마운드로 뛰어나오는 선수들과 환호하는 팬들.                      ( 사진 = 공짜 )

 기적과 같은 최종일 역전극으로 베어스는 플레이오프에 직행을 하게 되었고, 와이번스는 준플레이오프로 떨어졌다. 이때 기가 꺾인 와이번스는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이글스에게 지며 탈락을 하고 만다. 비록 라이온즈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그쳤지만 베어스는 2001년 이후 4년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감격을 누렸다.


■ 2006년 - 운명의 ‘준준(準準)플레이오프’ 5연전
 시즌 내내 5할 승률을 유지하며 중위권을 지킨 타이거즈와 오르락내리락하며 변화가 심했던 베어스가 이번에도 가을 잔치로 가는 최종 티켓을 다투게 되었다.

 이번에는 예년과 달리 승부가 일찍 이뤄졌다. 1차 승부는 ‘잠실 대첩’이라고 명명되어 9월 16, 17일 잠실에서 3연전이 펼쳐졌다. 그리고 9월 21, 22일에는 장소를 바꿔 광주에서 리턴 매치 2연전이 있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타이거즈가 4승 1패의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특히 잠실에서의 3연전을 타이거즈가 싹쓸이 한 것은 너무나도 컸다. 시리즈가 끝나고 순위는 바뀌어 있었고, 승차까지 벌어졌다. 특히 남아있는 경기가 부족한 상황에서 승차가 벌어진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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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21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펼쳐진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 경기 장면. 이 날 경기는 베어스의 3-0 승리로 끝이났다. 이는 '운명의 5연전' 중 베어스의 유일한 승리였다.                          ( 사진 = 공짜 )

 정황상 유리한 고지는 일단 타이거즈가 선점했다. 반면, 베어스는 벼랑 끝에 몰렸다. 2006 시즌 양 팀의 맞대결은 더 이상 없다. 양 팀 모두 스스로 승수를 쌓아가면서 상대팀의 결과도 챙겨봐야 하는 입장이다. 시즌 종료를 일주일 앞둔 9월 24일까지 양 팀의 승차는 1.5게임차다. 타이거즈는 6경기, 베어스는 7경기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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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까지 타이거즈가 유리한건 분명하지만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다. 왜냐하면 앞서 살펴본 과거가 타이거즈에게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베어스에게는 항상 믿기지 않는 기적이 따라다녔다. 과연 올해는 어떻게 이야기가 마무리 될 지 그 결과가 궁금해진다.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