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4. 23. 01:52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들에게 숟가락은 너무 너무 중요한 도구다. 최근에는 다양한  먹거리의 등장으로 예전보다 쌀 소비가 줄긴했지만, 여전히 숟가락을 멀리하게 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우리 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물건이다.

 이렇게 밥을 먹는데 꼭 필요한 숟가락. 그런데 이 숟가락이 먹는 용도 말고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22일 기아 타이거즈와 우리 히어로즈의 시즌 첫 맞대결이 열린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숟가락의 또 다른 용도가 확인되었다.

 양 팀이 2-2로 맞선 7회말 기아 타이거즈의 공격. 타석에는 선두 김종국이 들어섰고, 2볼까지 이뤄진 상황. 그런데 갑자기 심판과 포수가 뒤를 돌아보더니 경기가 중단되었다. 이 때 경기장 뒤편에서 진행을 돕는 소년이 뭔가를 들고 마운드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가 오기 때문에 공의 미끄럼을 방지하기 위한 ‘로진백’을 들고 나가는 것으로 보였지만, 정답은 따로 있었다.

 소년이 들고 나온 것은 다름 아닌 숟가락. 아니 웬 야구장, 그것도 한창 경기 중에 숟가락을?(혹시 개미 퍼먹어??) 그 이유는 투수 신발에 잔뜩 묻어있는 흙을 긁어내기 위해서였다.

 당시 상황을 KBS N 스포츠 권성욱 캐스터(이하 권)의 현장 중계 멘트로 확인해보자.
 권 : 나무 막대기로는 도저히 안 될 거 같으니까 숟가락으로 의지하는군요...
 권 : 참, 숟가락이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는군요.
 권 : (진짜 웃기다는 듯 계속해서)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하~~~~~

 이렇게 야구 경기 도중 숟가락이 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소년에게 받아든 숟가락으로 마운드에서 흙을 긁어내던 송신영(우리 히어로즈 투수)의 모습은 캐스터를 비롯해 그 장면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재미있는 건 ‘숟가락’은 두 번째 도구라는 사실. 첫 번째 도구는 앞선 6회말 정명원 투수 코치가 심판을 통해 전해준 부러진 나무 방망이 조각이었다. 이것을 통해 임시적으로 해결을 하려했으나 워낙 많은 흙이 묻어나는 바람에 여의치 않아, 더 확실한 제거를 위해 숟가락까지 투입되었던 것이다.

 우스꽝스러웠던 이 두 장면. 씁쓸한 한국 야구 현장의 모습이었다. 이미 메이저리그 경기를 많이 본 야구팬들에게 이럴 땐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바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마운드 뒤쪽에 흙을 긁어내기 위해 놓아둔 바로 그 도구. 예전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선발 경기 보면서 익숙한 장면일 것이다.

 분명 이 장면은 3루 쪽 방문 팀 덕아웃에서 이순철 우리 히어로즈 수석코치가 모두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지난해 방송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앞에 언급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이러한 도구가 필요함을 수차례 제기 한 바 있다. 흙을 털어낼 수 있는 도구를 마운드 뒤쪽에 갖다 놓기만 해달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이후 한화 이글스 홈인 대전 야구장만이 비치를 하고, 다른 곳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자신이 지적했던 내용이 아직도 그대로인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 숟가락! 재발견 현장(사진 출처 : 네이버 라이브센터를 통한 KBS N 스포츠 중계방송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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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판 오퐈~ 저기 좀 보세요" 7회말 선두 김종국 타석에서 2볼 이후 갑자기 경기가 중단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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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손에 그거~ 있다." 경기가 중단되고 갑자기 뛰어 나오는 도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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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거 받으세요..." 그렇게 마운드로 뛰어간 도움 소년은 투수 송신영에게 뭔가를 공손히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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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숟가락으로 흙을 퍼내다." 송신영이 건네받은 것은 다름아닌 숟가락. 신발에 잔뜩 묻은 흙을 긁어내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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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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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중에 야구 박물관 생기면 이 숟가락도 함께.." 역사에 길이 남을 숟가락이다




        ◆ 한편............. 앞선 6회말에 등장했던 방망이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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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타자가 친 방망이 조각을 줍고 있는 장면이 아닙니다." 6회말 2사 1-2루 상황에서 등장한 부러진 야구 망망이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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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휴 시원해..." 저 방망이 조각 역시 흙을 긁어내기 위한 도구였던 것. 다양한 재활용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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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거나 또는 수입하기가 힘들다면, 꽃꽃이 할 때 사용하는 침봉이라도 갖다 놓던가~!!!!(그렇다고 진짜 침봉을 갖다 놓는다면..;;;)


Posted by 공짜
2008. 3. 31. 02:46



 한국 야구를 정말 정말 사랑하는 우리의 SBS 스포츠가 30일 중계방송(기아 타이거즈 VS 삼성 라이온즈)에서 기아 타이거즈 팬들에게 정말 큰 웃음 선물을 안겨주었다.


 거두절미하고 바로 어떤 내용인지 확인 들어간다.

 3회초 기아 타이거즈 공격을 앞둔 상황. 광고를 다 내보내고도 시간이 좀 더 생긴 SBS 스포츠 중계진은 잠시 카메라를 관중석으로 돌린다.(7회말이 끝나고 눈에 띄는 관중들을 선정, 방망이를 선물하는 ‘오늘의 10번타자’ 주인공을 찾기 위한 포석) 그리고 화면에는 1루쪽에서 응원을 펼치고 있는 ‘타사모’라는 기아 타이거즈 팬들 모습이 보였다.

★ 여기서 잠깐! '타사모'란?
 : ‘텐 타이거즈’와 함께 기아 타이거즈의 대표적인 팬 모임으로서, ‘타사모’라는 뜻은 말 그대로 ‘타이거즈를 사랑하는 모임’의 줄임말이다. 기억하자 '타이거즈를 사랑하는 모임...'


 이렇게 '타사모'의 모습이 나오자 중계를 담당한 최춘식 캐스터와 김상훈 해설위원이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최춘식 캐스터. 자연스럽게 “타사모라는 그런 플랭카드가 보이고 있네요”라고 화면 설명을 한다. 그러자 김상훈 해설위원은 뭔가 재미있다는 듯 갑자기 웃기 시작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다른 재미있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나 싶었는데, 이게 웬걸. 아마도 대부분의 시청자가 예상했던 이야기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타자들만 좋아하는 건가요?”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대꾸를 하고 만다.

 그러자 최춘식 캐스터의 이어지는 한마디가 가관이다. 진짜 ‘타사모’란 모임을 몰랐던 건지 오히려 “타자를 사랑하는 모임입니까?”라며 한 술 더 뜬다.(얼씨구나~)

 여전히 김상훈 위원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최춘식 캐스터의 질문에 "예, 그런거 같은데요"라며 약 15초만에 '타이거즈를 사랑하는 모임''타자를 사랑하는 모임'으로 둔갑시키면서 그들의 대화는 막을 내린다.

 '타사모' 지못미....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대화가 있기 전, 두 사람은 HD 중계차 앞에서 인상적인 오프닝 멘트를 통해 올 시즌 '환골탈태(?)'하는 SBS 스포츠의 다짐을 밝힌 뒤였다. "보다 선명한 화면과 확실한 중계를 다짐한다"는 내용이 그것으로, 안타깝게도 그 약속이 깨지는데는 불과 5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경기 중에 실밥까지 선명하게 보인다고 연이어 칭찬하던 HD 선명한 화질은 대형 걸개그림 속의 호랑이 캐릭터는 안 보였으며, 그 앞의 타이거즈 유니폼 상의를 입은 팬들은 발견하지 못했던 것인가? 또한 확실한 중계를 다짐했으면서도 순식간에 엉뚱한 단체로 만들어버린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일종의 해프닝치고는 야구팬들에게 쓴 웃음을 주었던 장면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그 동안 SBS 스포츠가 얼마나 우리나라 프로야구에 무관심 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 동안 시청률때문에 일본 프로야구 중계에 올인 하다시피 해, 국내 프로야구 중계를 등한시 하다 보니 현장 감각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는 하루 2경기 중계로 많은 야구팬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던 SBS 스포츠 채널.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화질은 점점 스모그 상태로 변해가더니 일본 프로야구 중계를 시작하면서 한국 야구와 등을 돌리기 시작한 SBS 스포츠 채널. 넘어오지 못할 강을 넘은 건 지난 2006년 송진우 선수의 200승 경기 생중계 불발. 이유는 시청률.
 
 이러한 시청률에 대한 집착은 지난해 최희섭 선수의 한국 무대 복귀 경기에서도 그대로 보여주었다. 때마침 복귀 경기 중계 담당 방송사가 SBS 스포츠였는데, 마침 시간대가 일본 야구 중계와 겹쳐 있었다. 국내 야구는 무조건 녹화로 봐야 하는 상황. 하지만 최희섭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복귀 경기라는 이슈와 함께 시청률에 대한 희망이 보이면서, SBS 스포츠 채널은 과감하게 SBS 드라마 채널에 임시 편성 생중계 결단을 내린다.

 그러나 웃어야 함에도 오히려 치밀어 오르는 분노. 그것은 당시 상황과도 맞물려 있었다. 이미 MBC-ESPN이 2007년 일본 프로야구 중계에 뛰어들면서 일본 야구는 MBC-ESPN, 한국 야구는 MBC-MOVIES로 교통 정리를 했던 것과 달리, SBS 스포츠는 야구팬들의 뜨거운 요청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야구는 'Only 스포츠 채널'에서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는데, 그 원칙(?)을 스스로 깨며 뭔가 대단한 아량을 배푸는 듯 하며 생중계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국내 프로야구를 무시하고 일본 프로야구에 올인하면서, 자연스럽게 국내 중계는 소홀했고 그 모습들이 현장 감각이 떨어지는 어이없는 잔 실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올 시즌 이제 겨우 2경기 째 중계인데, SBS 스포츠와 야구팬들 사이에 힘겨운 한 시즌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몸과 정신이 지쳐온다.





● 다음은 큰 웃음을 선사했던 최춘식 캐스터와 김상훈 해설위원의 대화 전문

* 최춘식 캐스터 : 타사모라는 그런 플랭카드가 보이고 있네요.
* 김상훈 해설위원 : (허허허허 웃으며) 타자들만 좋아하는 건가요?
* 최춘식 캐스터 : 타자를 사랑하는 모임입니까?
* 김상훈 해설위원 : (다시 한 번 더 웃으며) 예, 그런거 같은데요.

 김상훈 위원은 다시 생각해봐도 웃긴 듯, 흐뭇한 톤으로 다음 이야기를 진행해나감.



(참고) 이 내용은 온라인 독점 중계사인 네이버 중계를 통해서 다시 볼 수 있다. 3월 30일 기아 타이거즈-삼성 라이온즈 경기. 관련 부분은 ‘50:26 ~ 50:42’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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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짜
2007. 11. 13. 01:03


          [ 낙서 1 ] - 혹시나 했더니...

 지난 6일 오후 발표된 이윤학과 강동우의 트레이드 발표 소식. 뉴스 헤드라인 제목을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결국은.....(그렇게 됐구나)"이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먼저 1년전인 2006년 9월 22일 2군 경기가 열리고 있는 마산 야구장으로 가보자. 이날은 2군 리그 전체 마지막날이자 타이거즈 2군의 시즌 마지막 경기. 그리고 타이거즈의 선발 투수는 좌완 오철민. 다시 1년 뒤로 넘어와 2007년 9월 21일 2군 경기가 열리고 있는 함평 야구장으로 가보자. 이날은 타이거즈 2군의 시즌 마지막 경기. 그리고 타이거즈 선발 투수는 좌완 이윤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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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22일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호랑이와 거인의 시즌 마지막 경기 모습. 공을 던지고 있는 오철민의 현역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사진 속 맞 상대 타자는 최경환.
자 그럼 여기에서 공통점은 무엇일까? 좌완 투수? 땡! 선발 투수? 땡! 시즌 마지막 경기? 땡! 정답은 두 경기에 나선 선발투수 모두 결과적으로 이날 경기가 소속팀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경기였다는 것.
 
 물론 우연이겠지만 이런 과정과 결과 때문인지 트레이드 소식 발표를 보자마자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지난 9월 2군 마지막 경기를 보러갈 때 경기 관전 포인트 중의 하나도 바로 그것이었다. "오늘 경기의 선발 투수는 누구일까?" 아무래도 1년 전 기억이 남아있으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심을 가졌고, 그 선발 주인공이 이윤학인것을 보고 "혹시~?","혹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올 시즌 2군에서 32경기 가운데 29경기를 중간으로 등판했으며, 지난 2002년의 짧았던 경험 이후 1군 등판은 전무한 상태이며, 그 결과 입단 이후 7년 동안 연봉도 계속해서 기본 급여인 2,000만원으로 제자리 걸음을 해 온것만 본다면, 오철민의 전철을 밟을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선발 등판은 그런것과는 무관하게 확장 로스터 기간이라 2군에 남아있는 선수들도 없는 상태에서 팀이 연전을 치르는 상황이었고, 이럴 경우 앞서 2번이나 소위 땜질 등판을 했던 바로 그런 과정이었다. 당연히 이상한 의미를 부여할 만한, 선발 등판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10월 19일 1군 최종전을 앞두고는 지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1군 승격과 함께 등판 기회도 가질 수 있었지만, 불펜에서 몸을 푸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런 정황으로 방출의 칼바람에서 그는 비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트레이드. 유니폼을 갈아 입는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결국, 결과적으로 2년 연속 2군 경기 마지막 선발 투수들은 친정팀과 결별을 하게 되었다. (앞으로 2군 리그가 계속되는 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해서 마지막 경기는 반드시 있을텐데, 이것이 이상한 논리로 인한 저주가 되지 않기를...)


          [ 낙서 2 ] - 이윤학 트레이드는 팀 내에서 좁아진 입지?

 타이거즈 역사에서 왼손 투수는 정말 귀했다. 아니 귀한 것 보다는 워낙 뛰어난 오른손 투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왼손 투수가 필요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윤-선동렬-조계현-이강철-이대진-최상덕-리오스-김진우 그리고 올 시즌 새로 떠오른 윤석민까지. 김정수, 신동수, 강태원 정도가 타이거즈 좌완 투수의 계보를 잇는 정도.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선발 투수 예고제가 실시되고, 투수 분업화가 현대 야구의 모델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좌완 투수의 필요성은 더할 나위없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우타자보다는 실력이 뛰어난 좌타자가 연이어 탄생한 것도 좌투수의 필요성을 뒷받침해 주었다.

 그러나 타이거즈에는 좌투수가 없었다. 우선 질은 접어두고라도 수적으로 굉장히 부족했다. 1990년대 말 강태원이 노쇠한 상태에서 오철민이 유일한 대안이었는데 그는 당시 선발 요원이었다. 그래서 2000년대 들어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신인 선발과 다른 팀 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거포 유망주 김상현을 주고 받아온 방동민, 팀에서 방출되고 오갈데가 없던 이경원, FA로 영입한 노장 조규제가 그 들이다.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영입들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왼손 투수를 모아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01년 2차 4순위로 해태 타이거즈와 인연을 맺은 이윤학의 존재는 애지중지 그 자체. 그리고 2002년 시즌 말 1군 무대 데뷔로 타이거즈 역사상 16번째 좌투수 목록에 이름을 올리면서 그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부상과 재활로 이탈했기 때문이다. 2004년 시즌을 앞두고 임준혁과 함께 다시 한 번 더 큰 기대를 모았지만 그것도 잠깐의 일. 그 뒤로 선수생활은 계속해서 2군에 머물러야 했다.

 중요한것은 이렇게 2군에만 머무는 동안 주변 환경이 그대로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팀은 계속해서 좋은 좌투수 영입에 공을 들였고, 2005년 전병두 영입을 시작으로 새로운 선수들이 연이어 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2007년 이들은 모두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기존의 전병두를 시작으로 부상에서 돌아온 문현정, 기대주인 진민호, 신인 양현종과 데뷔 2년만에 처음 1군 데뷔를 한 박정규까지.

 무려 5명의 좌투수가 선을 보인것은 수적으로 뿐만 아니라 질적 향상까지 동반한 것으로서, 앞으로 기대감을 갖게 충분한 결실이었다. 참고로 팀 역사상 최다 좌투수가 올라온 2004년의 5명(오철민, 문현정, 방동민, 이경원, 조규제)과 비교해 봐도 2007년 5명의 무게감이 훨씬 높은게 객관적인 평가다.

 그리고 이렇게 달라진 환경은 이윤학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었다. 더군다나 이 5명을 빼고도 팀에서 기대중인 또 다른 좌투수(박정태, 이인철)가 있다는 것도 그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었다. 또한 과거보다 저하된 구속과 상대를 압도할 만한 매력적인 구위가 없는 것까지 종합적으로 더 이상 팀에서 기대하는 유망주가 아니라는 판단에 따라 이번 트레이드가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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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윤학의 연습 피칭 장면. 공교롭게도 장소는 새로운 소속팀의 이천 야구장.(지난 8월 모습)


          [ 낙서 3 ] - 역대 베어스로 트레이드 된 선배 투수들 어땠나?

 타이거즈 역사에 길이 남을 '해결사' 한대화, 외국인 투수 최초 정규 시즌 최우수선수(MVP) 다니엘 리오스. 지난 26년 간 타이거즈와 베어스가 양 팀간 11차례 거래를 통해 이뤄낸 최대 수확이었다. 지금까지 양 팀 간의 트레이드를 통해 연관된 선수는 이번 트레이드를 포함해 모두 25명. 모두들 한대화와 리오스처럼 성공적인 모습을 꿈꾸었을테지만, 매번 성공만 있었던것은 아니다.

 특히 타이거즈에서 베어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던 투수들은 유난히 실패의 역사가 많았다.  이번 이윤학의 트레이드 이전까지 타이거즈에서 베어스로 유니폼을 갈아입은 선수는 모두 15명. 그 가운데 투수는 절반이 넘는 8명.

 하지만 이 중 유니폼을 갈아입고, 성공적인 모습을 보여준 선수는 이광우, 키퍼, 리오스 단 3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키퍼와 리오스는 트레이드에 익숙한 외국인 선수들. 엄평재를 시작으로 황기선, 이재만, 손혁, 박진철 등은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한 활약을 보이며 쓸쓸히 유니폼을 벗어야만 했다. 특히 이재만과 박진철은 베어스 이적으로 큰 기대를 모았으나 이재만은 단 1경기 출장에 그쳤고, 박진철은 아예 1군 무대를 밟지도 못한 채 쓸쓸히 은퇴를 하고 말았다.

 이런 실패의 역사 때문인지, 이윤학도 2008 시즌이 끝난 뒤 어떤 성적표를 받게될지, 벌써부터 그 결과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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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서 4 ] - 두산 베어스, 좌완 마운드 풍년 재건하나?

 지난 2005년 시즌 개막 당시 베어스 마운드는 이혜천을 필두로 전병두, 금민철(신인), 조현근(신인) 등 4명의 실전급 좌완 투수를 보유하고 있어 다른 팀들의 부러움을 샀었다.

 하지만 그 사이 전병두, 조현근이 차례로 트레이드 되면서, 2년이 지난 올 시즌 베어스 마운드는 좌완 투수 부족이라는 상황으로 역전되고 말았다. 수적으로는 2년전과 같았지만 실질적으로 뛸 선수는 금민철 1명이 유일했기 때문. 이혜천은 병역 해결로 인해 포스트시즌에서야 출장을 했고, 원용묵은 1, 2군을 오르락 내리락 했으며, 박명환의 보상선수로 영입된 신재웅은 부상으로 1군 무대조차 밟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내년에는 사정이 달라질 것 같다. 우선 이혜천이 병역을 완전히 해결함에 따라 시즌 처음부터 함께 할 수 있게 되었고, 성남고 출신의 특급 좌완 진야곱이 1차 지명으로 입단함에 따라 만만치 않은 좌완 투수 진용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좌완 투수 욕심을 멈추지 않고 트레이드를 통해 이윤학마저 영입하면서, 현재까지 6명까지 좌완 투수를 확보하며 내년 베어스 마운드에서 근심거리 하나를 없애는 결과를 보였다.


          [ 낙서 5 ] - 강동우 영입은 경쟁 유도용?

 '글쎄... 아직 섣불리 뭐라고 하기에는...'

 큰 출혈을 통한 영입이 아니기 때문에 평가 절하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성공적이라 하기에도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조범현 감독과 스태프의 의도가 나오기전까지는 어떻게 판단을 하기가 참 애매모호하다. 현장 분위기를 모르는 상황에서 왈가왈부하기가 그래서 조심스럽다.

 확실한건 주전 경쟁에 뛰어들 수 있는 강동우의 영입으로 타이거즈 외야 경쟁이 한층 더 치열해 졌다는 사실이다. 기존 이용규, 김원섭과 함께 재기를 노리는 이종범, 심재학 그리고 젊은피들인 이호신과 나지완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외야 주전 경쟁은 더욱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재 일본 훈련지에게 함께 훈련중인 최경환과 여기에 올해처럼 상황에 따라 장성호가 좌익수로 나서게 된다면, 그 경쟁은 말 그대로 무한경쟁으로 돌입할 수 밖에 없다. 바로 이런점을 노리고 영입한 것이라면, 최하위에 그쳤던 팀 분위기 변모에 도움을 주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번 시즌이 끝나고 방출 된 조경환, 김경진의 빈 자리와 류재원, 최훈락의 군 입대로 부족하게 될 외야수 자원을 미리 확보했다는 차원에서는 적절한 영입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좌타자(이용규, 김원섭, 심재학, 이호신, 최경환 등)가 많은 외야 라인에 또 다시 좌타자가 영입된 점과 홈 구장이 홈런보다는 2, 3루타를 노리는게 유리하긴해도 장타자보다는 기존 라인과 색깔이 비슷한 중거리형 타자가 영입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붙박이 주전 멤버가 유력한 좌타자들인 최희섭과 장성호가 이미 타순에 포진한 가운데 좌타자의 한 명 추가는 그래서 더욱 아쉽다. 무리는 아니지만 최대 6명의 좌타자가 선발 출전 선수 명단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한편, 강동우 개인적으로는 이번 트레이드가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2006년에는 주전으로 뛰었지만, 올해는 세대교체 바람에 밀려 민병헌, 김현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2군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불리한 처지에서 타이거즈로 유니폼을 갈아입고 성공을 했던 김원섭, 심재학의 전철을 밟고 싶어할 것이다.


          [ 낙서 6 ] - 단국대 야구부, 기아 타이거즈의 新 대동맥?

 (들어가기에 앞서 : 우리 사회에서 학연이나 지연과 같은 인맥에 의존한 연결 고리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병폐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어나갈 이야기는 자칫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으로 비춰질수도 있을것 같다. 때문에 연줄 관계가 아닌 단순한 선수 구성은 이렇다는 식으로 이해하기를 바란다.)


 기아 타이거즈에 동문회를 개최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룹이 결성되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단국대학교 야구부 출신 선수들 모임이다. 우연치 않게 단국대 출신의 강동우 선수가 영입되면서 내년 타이거즈 선수단에서는 신인 나지완까지 포함해 모두 5명의 동문이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된 것이다. 참고로 나머지 3명은 김원섭, 이동현, 송산이다.

 이는 2000년 이후 계속해서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는 고려대학교 동문과 함께 가장 많은 수다. 이번 겨울에 군 입대가 유력시 되는 최훈락과 류재원까지 있었다면, 모두 7명으로 고려대 아성을 무너뜨리고 가장 많은 동문을 확보한 그룹으로 올라설 뻔 했다.

 사실 최근에 와서 이렇게 주목받지만, 지금까지 타이거즈 역사에서 단국대 출신의 존재는 미미했다. 아니 영입된 선수가 몇 명 되지 않다보니, 팀 역사에서 뚜렷한 성적을 남긴 선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고려대(선동열), 연세대(김봉연, 이순철, 김정수, 조계현, 이호성), 한양대(김일권, 이상윤), 영남대(김종모), 건국대(이종범) 등 유수의 대학 출신 선수들이 타이거즈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특히 이중에서도 동국대 출신 선수들의 활약은 가히 놀라웠다. 4년연속 우승을 달성했던 1989년이 대표적인데 김성한, 한대화, 박철우, 백인호, 이건열, 김평호, 이강철, 윤재호까지 무려 8명의 주전급 선수를 배출해 내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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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런 대학들과 달리 단국대 출신은 1985년이 되어서야 첫 입단 선수를 배출했고, 그 뒤로 또 다시 명맥이 끊겼다가 1992년부터 3년동안 4명의 선수들이 영입되었다. 이 때 4명 중 한 명이 '96~'97 2년 연속 골든글러브(지명타자)를 수상한 박재용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1996년 11월 LG에서 맞트레이드를 통해 영입된 최훈재가 있었다. 그는 사실상 지금까지도 가장 큰 족적을 남긴 단국대 출신 선수였다. 트윈스 시절에는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대타로 만족해야 했지만, 팀을 옮기자 주전은 물론이고 중심타선에 배치되며 1997년 한국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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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최훈재는 팀 사정상 2년만 뛰고 베어스로 재트레이드가 되었고, 마지막 남아있던 박재용마저도 1999년 시즌 개막 이후 쌍방울로 트레이드 되면서 천연기념물 같은 단국대 출신 선수들은 단 1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2003년 5월. 이동수가 베어스로 팀을 옮기는 1:1 트레이드가 이뤄졌다. 맞상대는 김원섭. 박재용 이후 무려 4년만의 단국대 출신 선수였다. 이렇게 한 번 맺어진 인연은 특별한 연관성은 없지만 이후 매년 계속 되었다. 2004년 이동현을 신인 지명을 통해 영입하더니, 2005년에는 오승환과 함께 팀의 2관왕을 이끌었던 국가대표출신 송산과 최훈락이 동시에 유니폼을 입는다. 그리고 2006년에는 비록 신고 선수였지만, 류재원도 영입한다. 이렇게 인연이 끝나는 듯 했지만, 2008년 신인 선수로 올해 대학야구 최고 타자상이 유력시 되는 나지완을 선발했고, 이번 트레이드를 통해 동문 목록에 강동우까지 추가하기에 이르렀다.
 
 흥미있는 것은 큰 족적을 남긴 선수는 없었지만, 사실 타이거즈와 단국대의 인연이 상당히 깊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단국대 야구부가 배출해 낸 최초의 프로 야구 선수가 바로 해태 타이거즈와 인연을 맺었다는 것.

 때는 선동열, 이순철이 입단하던 1985년. 해태 타이거즈는 6명을 선발한 1차 지명자 가운데 한 명을 우완 투수 신태순으로 결정했고, 그는 단국대가 배출한 최초의 프로야구 선수였다. 비록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은퇴하긴 했지만, 단국대 출신 최초의 프로 야구 선수로 뛰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었다. 자신은 비록 실패한 프로 생활이었지만, 이후 이용철, 최훈재, 김태형, 강성우, 김홍집, 서용빈, 이병규, 김재걸 그리고 오승환으로 이어지는 성공 신화의 기초를 만든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