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3. 18. 02:19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선수를 직접 볼 수 있다니....
 
 몇 년이나 살았다고 건방지게 이런 소리를 하나 싶을꺼다. 하지만 그럴만하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를 중계하는 TV에서 그것도 평범을 뛰어넘어 확실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던 선수를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과연 생각이나 했나 싶다. 이런 선수를 보다니...

 더군다나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광주 무등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팀 유니폼을 입었다니 이건 더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팀에는 호세 리마 못지 않은 서재응과 최희섭이라는 걸출한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언젠가는 한국 무대에서 뛰었을 선수들이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다르다. 지난해 쓸쓸하게 돌아가긴 했지만 한 때 메이저리그 최고의 셋업맨이었던 '펠릭스 로드리게스'를 직접 본 것만 해도 대단했는데, 올해는 또 다른 거물급 선수를 (중도 퇴출만 없다면)한 시즌 내내 볼 수 있다니 벌써부터 눈이 즐거울 따름이다.

 이 선수, 메이저리그에서의 커리어 성적 웬만한 야구팬이라면 다 아는 내용이다. 간단하게 읋어보면 13년 동안 총 348경기(235 선발)에 출장 1567.1이닝을 던져 89승(9완투승 1완봉승) 102패 5세이브 4.45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특히 휴스턴 애스트로스 시절인 1999년에는 21승 10패를 기록하며 사이영상 투표 4위에 올랐고 올스타전에도 출장하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이후 한 동안 부상으로 부진에 빠졌다가 2004년 LA 다저스에서 13승 5패를 기록하며 재기에 성공했으나 이후 다시 침체에 빠지며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사라진 뒤, 올 시즌 기아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그 이름 호세 리마(Jose Lima). 사실상 그가 기억되고 있는 것은 한 때의 뛰어난 기록도 기록이지만 야구장 안팎에서 보여주는 각종 모습들 때문이다. 경기가 없는 날은 덕아웃이 시끄러울 정도로 팀의 치어리더(?)가 되고, 마운드에 올라섰을 때에는 그 감정을 오버액션으로 표현하며 팬들에게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선수다.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원조 노홍철'이라고 보면 된다.(내가 마케팅 담당자거나 광고 기획자 또는 무한도전 PD라면 호세 리마와 노홍철의 만남을 주선할텐데.... 야구의 인기가 거기에 어필할 만큼도 못 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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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그가 지난 15일 두산 베어스와의 시범경기에서 홈 관중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이미 대전에서 국내 데뷔전을 가져 2번째 경기였는데, 시범 경기 치고는 다소 많은 6이닝을 소화하며 1실점을 허용하는 준수한 투구를 선보였다. 하지만 경기 내용은 다소 불안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당초 우려가 되었던 피홈런은 허용하지 않았으나 1, 3회를 제외하고 계속 주자를 내보내며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관심사는 딴 데 있었다. 비록 시범경기라도 그가 어떤 쇼맨십을 보여줄 것인가 여부였다. 그리고 정규시즌에서 기대감을 가지게 만드는 맛보기 개념의 모습들을 지켜 볼 수 있었다. 가령 볼넷을 내주고 자신을 자책하는 '법규'를 외친다거나, 삼진을 잡고 들어갈 때 특유의 동작을 보인다든지, 이닝을 마무리하고 들어갈 때 하늘을 향해 두손을 들어 감사의 세레모니를 하는 것 들 말이다. 이에 관중들은 이러한 동작만으로도 환호성을 질러대며 마운드를 내려오는 그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를 쳐주었다.

 벌써부터 정규 시즌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하지만 기대하는 세레모니나 '리마 타임'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선수들을 옥죄는 성적을 내야한다. 그 점이 불안하다. 이미 나이가 들어 하향세로 접어들었다는 점, 강속구 투수가 아니라 컨트롤이라도 완벽해야 하는데 현재 모습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한국으로 오기전 미국 무대에서 보여줬던 엄청난 피홈런 기록들...

 이와 함께 우려가 되는 점은 거침없이 표현해 내는 그의 다혈질적인 성격이다. 물론 이날 경기에서처럼 위기를 극복하며 결과가 좋았다면 상관없지만 혹시라도 연타를 맞고 대량 실점으로 이어졌을때 나올 동작은 과도한 흥분상태로 비춰질 것이다. 이럴 경우, 조범현 감독과 토시오 투수코치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점은 우려가 된다. 원래 그런 선수니 어느 정도 감안이 되어야겠지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야구를 해왔던 관계라 쉽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행동들을 국내 선수들이 거부감 없이 잘 받아줘야 할 건지도 주목해 봐야 한다. 반응도 보여주고, 맞장구도 쳐주는 모습들이 있어야지 "쟤 뭐야~" 이런 반응이 나온다면 호세 리마 특유의 신바람 야구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동료들과의 원만한 관계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이렇게 극복해야 할 점은 많지만 팬들은 기대하고 있다. 호세 리마가 올 시즌 한국에서 '리마 타임'을 보여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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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마가 나가신다. 일종의 징크스로 알려져 있는 선을 밟지 않고 뛰어넘는 모습인데, 이날 경기만 놓고 봤을 때 맨 처음 마운드에 올라올 때만 이런 모습이었고 이후에는 선을 의식하지 않고 움직이는 리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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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마의 투구 모습을 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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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자가 없을 때 투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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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자가 있을 때 투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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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카로운(?) 리마의 견제 동작. 아직 분석이 덜 된 탓인지 리마의 견제 동작은 주자들에게 위협이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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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뒷통수에 송진 가루(로진백)를 잔뜩 묻힌 리마. 왜? 원래 저랬었나? 궁금해서 지난 2004년 내셔널리그 디비전시리즈 3차전 영상을 다시 봤는데 당시에는 모자 뒷쪽이 멀쩡했는데 언제부터 저런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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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마의 망중한? No~ 상대 분석중! 등판 전날이었던 14일 상대팀 선수들 모습을 여유로운 자세에서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 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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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회초 투구를 마치고 내려오는 리마가 관중들의 환호에 모자를 벗어 답례를 하고 있다. 이후 그만의 전매특허인 두 손을 하늘로 향한 감사의 세레모니가 이어졌다.


'리마 타임'을 즐길 준비가 되었는가? 그럼 그가 선발 등판한 날은 단단히 준비하고 야구장으로 Go~ Go~



                ★  공짜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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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거즈 외국인 선수들은 왕따?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절대 그럴수도 없고. 하지만 안스럽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렇게 된 건 저 덕아웃 때문이다. 이번 비시즌 기간동안 악명높은 무등 야구장 시설을 거액을 들여 수리를 했다고는 하지만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되는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덕아웃의 경우 구조는 그대로인 상태에서 기존 나무 의자에서 세련된(?) 의자로 바꾼 정도... 그런점에서 화려한 메이저리그의 덕아웃을 두루 체험한 호세 리마나 윌슨 발데스 두 선수에게 당장 무등 야구장 덕아웃에 적응을 바라는건 무리. 그렇다고 다리 벌리기에도 힘겨율 정도로 다닥다닥 앉아있는 곳에 강제로 앉혀 놓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래서 두 선수가 생각한 대안이 바로 저 자리인듯 싶다. 그나마 편안한 곳, 접이식 의자와 땅바닥. 이들에게 왜 로마법을 안 따르냐고 묻지말자.

 또 생각해보니 호세 리마가 저 자리에 있다보면 최근 무등야구장의 명인이신 '삼진 할머니'를 안 볼수 없을텐데 과연 리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 점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Posted by 공짜
2008. 3. 15. 02:35




 

Posted by 공짜
2007. 10. 30. 02:49

 10월 29일, 한국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2연패 뒤 4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한 SK 와이번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떠오르는 생각은 오로지 부럽다................. 그것 뿐~~


 벌써 10년

 그럴 수 밖에 없는건 우승 장면을 본지가 올해로 벌써 10년이기 때문.

 그 세월을 가늠해보자면 10년 전 1997년은 수능을 앞두고 있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오래되긴 오래되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는 지겨울 정도로 지켜보았던 우승 장면을 성인기에 접어들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꼭 시험때마다 TV 중계가 있어서 나의 발목을 잡았던 야구였는데... 그래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다 야구 때문일지도 모르는 일....
 
 하지만 그렇다고 야구를 원망하는건 절대 있을수 없다. 야구가 있기 때문에 내가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구가 없었다면....


 남들은 다 하는 우승

 아무튼 성인이 되어 군대도 다녀오고 예비군 6년도 졸업하고, 지금의 냄새나는 아저씨가 다 되어가는 동안 다른 팀들은 하나 둘 우승 팀 대열에 합류했다.

 1998년 현대 유니콘스를 시작으로 1999년에는 항상 해태 타이거즈에 발목을 잡혀서 번번히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던 한화 이글스도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2년에는 해태 타이거즈의 원조 희생양이었던 삼성 라이온즈도 그토록 원하던 한국 시리즈 첫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누렸다. 이어서 SK 와이번스 마저도 이번 우승으로 창단 첫 우승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10년동안 한화 1번, 두산 1번, SK 1번 그리고 삼성은 2연패 포함 3번, 마지막으로 현대도 2연패 포함 무려 4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10년 동안 우승의 감격을 차지하지 못한 팀은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 그리고 해태-기아 타이거즈였다.

 그나마 LG 트윈스(1998, 2002년)와 롯데 자이언츠(1999년)의 경우는 비록 패배의 아픔을 맛보긴 했지만, 한국 시리즈 무대를 경험하기라도 했다. 하지만 타이거즈는 프로 8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그 10년 동안 단 한번도 한국 시리즈 무대에 입성조차 하지 못했다. 과거엔 식은죽 먹기였던 한국 시리즈 무대를....


 새옹지마

 정말 어릴적에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우승을 많이해서 배부른 걱정을 할 정도 였었는데, 실제로 1997년까지 16년동안 9번의 우승이면 절반 이상을 해냈다는 거다. 이 세상에 어디 그런 불공정(?)한 결과가 있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의 처지가 되버렸는데, 이런것을 보고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는건가? 모기업의 부도와 IMF로 인해 암흑의 세기말과 세기초를 보내고, 그 사이 팀은 모기업 변경을 통해 새로운 주인을 만났고, 최근에는 3년 동안 꼴찌 2번. 과거의 잣대로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

 지금까지 9번 우승 위업을 다른 팀들이 접근 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횟수라는 것에서 위안을 삼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공동 2위(4번)인 현대와 삼성이 내년부터 5년 연속 우승을 한다고 해도, 2012년에 가서야 가까스로 같은 반열에 올라선다.

 차근차근
 
 내년에도 당장 우승에 도전을 하기에는 쉽지 않은게 현실. 올해도 최하위를 했기 때문에 당장 팀을 추스리는게 1차적인 과제다. 더군다나 감독도 바뀐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 2006년에 그랬듯 최하위를 한 다음해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소박한 목표부터 시작으로 차근차근 팀을 재건해 나가야 한다.

 그렇다보면 언젠가는 다른팀들의 우승 장면을 보면서 부러워하는게 아니라, 직접 환호성을 질러가면서 미쳐보는 날이 올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처음 맛 보는 우승의 그 감격을....



 그런 의미에서......

 imbc '20년 뉴스 다시보기'를 통해 되살려 보는, 타이거즈 우승의 그 날들



 imbc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1987년부터 현재까지의 9시 뉴스데스크 영상을 다시볼 수 있는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생생한 그 당시의 뉴스 장면을 통해 타이거즈 영광의 순간들을 다시 느껴보면서, 언젠가는 과거의 그 날처럼 우승의 뉴스가 다시 방송되기를 기대해 보자.(단, 이 서비스는 1987년 자료부터 제공되고 있기에, 1983년과 1986년의 뉴스 장면은 없다.)


★ 1987년 10월 25일 [對 삼성 라이온즈, 4승 무패]
* 우승 소식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7261_3223.html
* 한국시리즈 결산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7262_3223.html
* 앵커 멘트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7/1797263_3223.html
- 손석희 교수의 풋풋한 모습과 함께 지금 들어도 든든할만큼 배가 부른 선수들의 이름과 모습을 볼 수 있다. 코끼리 감독의 유난히 포인트를 준 렬한. 걸걸한 목소리의 김소식 위원 음성도 정말 오랜만...

★ 1988년 10월 26일 [對 빙그레 이글스, 4승 2패]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8/1815381_3828.html
-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라운드에서 관중들과 함께하는 우승 축하식. 그땐 그랬지...

★ 1989년 11월 1일 [對 빙그레 이글스, 4승 1패]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89/1828030_3829.html
- 파리 특파원을 지내다 전격 뉴스 진행자가 된 엄기영의 젊은 모습과 함께 이때도 여전했던 관중들과 함께한 우승 축하 순간. 그래도 불상사 없이 순수하게 축하하고 기뻐했던 그 당시. 지금이면 사고났다~

★ 1991년 10월 13일 [對 빙그레 이글스, 4승 무패]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1/1853187_3831.html
- 베이징 특파원을 지내다 주말 앵커가 된 이상열 씨의 모습과 함께 그 유명한 장채근 위에 사뿐하게 뛰어오르는 선동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그 때. 코끼리 감독은 이 때도 소감 순간 '열'에 포인트를...

★ 1993년 10월 26일 [對 삼성 라이온즈, 4승 1무 2패]
앵커 멘트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3/1761147_3833.html
-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 모습이 많이 달라졌는데, 뉴스 방식도 그 중의 하나. 군사 정부시절만 해도 스포츠 소식은 비중이 있었다. 그 변화된 모습을 여기서 확인 할 수 있다. 스포츠 뉴스는 스포츠 뉴스시간에만. 정식 뉴스시간에는 단순 멘트. 낭독은 "지리산에서 백지연이었습니다"의 그 주인공이...

★ 1996년 10월 23일 [對 현대 유니콘스, 4승 2패]
자세한것은?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11175_3836.html
경기장 무질서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6/2011174_3836.html
- 뉴스만 봐도 뭔가 달라지고 있다. 그래픽, 사운드 이런게 아니라, 과거에는 좋은게 좋은거 아니겠느냐면서 쉬쉬하고 넘어갔던것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그 노력이 지금의 야구장 환경으로 이어진게 아닐까?

★ 1997년 10월 25일 [對 LG 트윈스, 4승 1패]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0410_3837.html
- 자세한 내용은 이번에도 스포츠 뉴스 시간에. 나이를 잊은 듯한 권재홍 앵커의 모습과 함께 故 김상진의 모습도. 이때도 MVP는 이종범의 차지. 전혀 어색할 게 없었던 수상.


그리고....................................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이후 타이거즈는 정말 처절하게 야구했다.(이왕 시작한거 이후 내용도 조금 더....)


 1997년 우승 샴페인이 채 마르기도 전에 전해진 모그룹의 부도 소식. 그랬다. 바로 해태 타이거즈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 그 시작이었다.

★ 1997년 11월 1일 해태그룹 부도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7/1770540_3837.html


 사회 전반적으로 여기 저기에서 심지어 꼬마들도 "IMF때문에..', 'IMF때문에..'라는 말들을 내뱉었다. 해태 타이거즈도 마찬가지. 쌍방울 레이더스도 그랬다. 이종범마저도 일본으로 떠나보낸 코끼리 감독은 이 말까지 더했다.

"아.....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그렇게 어려워서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범 경기 대신에 열린 1998년 슈퍼 토너먼트 경기 우승 상금 3천만원(기억에~)을 따내기 위해서 사활을 걸었던 해태 타이거즈였다. 결국, 잠실에서 OB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아마 MVP가 이경복이었을거다. 전문가들을 비롯해 팬들은 역시 타이거즈는 죽지 않았다고 평가했고, 단기전에 강한 모습을 또 다시 드러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때 투수진 특히 이대진이 무리하지 않았었나..

 아무튼 그렇게 아직도 불사조 다운 존재감을 드러낸 해태 타이거즈. 그래서 였을까? 해태제과 해태음료 등등 그룹의 모든 계열사들이 매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룹으로서는 절대 버릴 수 없었던 것이 해태 타이거즈였다. 그 만큼 그룹으로서도 마지막 자존심이었던거다.

★ 1998년 6월 1일 해태그룹, 해태상사와 해태 타이거즈만 남기고 그룹 해체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8/2003580_3838.html


  1999년. 세상은 아직도 IMF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나는 이 때  봄을 앞두고 아직은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논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2001년 봄까지 세상과는 완전 단절. 그래서 몰랐다. 정말 몰랐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흐름을 몰랐다.

 타이거즈의 흐름 역시 몰랐다. 캔 그리피 주니어 또는 배리본즈를 닮았다고 들었던 샌더스의 스윙은 한두번 봤나? 브릭스는 이름만... 양준혁의 빨간 유니폼도 나에게는 전설속 민화이니 말 다했지.... 그러던중 한 젊은 호랑이의 죽음은 그 몰랐던 흐름의 결정판이었다. 제대를 하고 나서야  알았으니...

★ 1999년 6월 10일 김상진의 사망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9/1781958_3839.html


★ 1999년 창단 첫 꼴찌의 위기??? 양준혁과 홍현우 인터뷰. 그러나 실제 꼴찌는 쌍방울(승률 2할대)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9/1786766_3839.html
 그랬다.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았다. 계속해서 시련이 닥쳐왔다.


★ 2000년 1월, 새천년에 임하는 해태 타이거즈의 모습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0/1857232_3840.html
 새천년을 맞아 투혼을 불사르는 타이거즈 선수들의 모습. 그러나 어려운 살림속에서 찬바람은 여전...


★ 2000년 입단한 새끼 호랑이들 양현석, 홍세완 그리고 한화의 꽃범호까지...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0/1860055_3840.html
 그나마 위안을 주었던 것은 바로 이것. 새끼 호랑이들. 그 당시 인상적인 센터 라인(김상훈-홍세완-양현석)을 보강했다고 전문가들이 평가했던. 그래서 미래가 밝다고 했던 해태 타이거즈. (그런 양현석이 최근에 방출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2000년 김응룡 감독 해태 타이거즈와 결별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0/1869887_3840.html
 이미 1년 전 동쪽으로 떠날려고 했으나, 구단의 간곡한 부탁으로 "1년 더..."를 외쳤던 코끼리 감독님이 2000년 시즌을 마치고 빨간 유니폼을 벗었다. 어려운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CF(와우폰 이었나? 무슨 전화관련 업체였는데...)에도 출연했던 코끼리 감독.


★ 홍현우 LG로 FA계약 맺고 떠나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0/1871522_3840.html
 떠난 자는 또 있었다. "많은 관중들 앞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고 떠났던 그... 하지만....


 썰물이 있으면 밀물이 있는 법. 떠난자의 빈자리를 누군가가 채웠다.

 나에게는 최고의 별인 그분. 1995년 9회말 대타로 나와 권명철(OB)을 상대로 3루 땅볼을 치고 아웃 되면서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마감했던... 그 분이 코치 생활을 거쳐 코끼리 감독에 이어 새로운 사령탑이 되었다.
 ★ 2000년 11월 김성한 제 3대 해태 타이거즈 감독 취임 :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0/1870023_3840.html
* 인터뷰 :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2000/1870411_3840.html


 이후 2001년 7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홈 경기-아이러니 하게도 상대팀 사령탑은 코끼리 감독님-를 마지막으로 해태 타이거즈는 옷을 갈아 입는다.



 그리고 현재의 기아 타이거즈...............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