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5. 18:14



 하하하하하하하하~~~

 이젠 웃음밖에 안 나온다. 이런 것을 바로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야 하나? 포스코, LG전자, 현대중공업이 하한가를 맞고, 현대차와 한전이 장중에 하한가를 찍고, 삼성전자도 하한가 일보직전까지 가는 여태껏 상상할 수도 없었던 모습에 나올 수 있는 반응은 그저 웃음 뿐.

 며칠 전 "그래, 갈 때까지 가보자"고 했던 우리나라 주식 시장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막장의 길로 접어들었다. 여기에는 우리뿐만 아니라 문제의 중심지인 미국을 비롯해, 유럽과 남미 그리고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까지 전 세계가 모두 동참한 모습이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할 정도라 평할 정도로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이 위기는 하지만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점이 큰 문제다.

 우리들이 평상시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릴 때 마음속으로 예상했던 착지점보다 더 밑으로 떨어질 경우 식은땀이 날 만큼의 공포와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지금이 그 때다. 예상보다 깊은 추락에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도 마찬가지고 정부도 그렇다.



 ● 2008년 10월 24일, '1,000'을 깨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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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자리에서 네 자리로 넘어가는 위치 때문인지, 오래전부터 상징적인 숫자였던 '코스피 1,000'이 10월 24일 무너졌다. 지난 2005년 6월 이후 무려 3년 4개월 만의 일이다. 하지만 그 때와 상황은 정반대다. 2005년의 경우는 대세 상승장에서 고지를 넘어가는 단계였다면, 이번에는 폭락장에서 선을 지키지 못한 채 속절없이 무너진 경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 하루 만에 무려 110포인트가 빠져버리며 1000을 내줬다는 점이 더 큰 충격이다.


 ● 추락의 한 달, 대체 얼마만큼 빠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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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1 - 938 = 563

 우리 고유의 명절인 추석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인 9월 16일 아침 9시. 우리 주식 시장은 추석 이후 첫 거래일에 충격적인 갭 하락을 맞이한다. 사실상 폭락의 암시였다. 그리고 이어진 '갭 상승-갭 하락-갭 상승'. 도무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시장 참여자들의 혼을 뺀 주식 시장은 이후 9월 25일 1500선 회복을 통한 반등을 보이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9월 26일부터 그 다음주까지 5거래일 연속 하락 행진. 이후 잠시 갭 상승을 동반한 상승이 있었으나, 이것은 시장을 빠져나가라는 마지막 매도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10월 16일 126포인트 하락. 우리 주식 시장 역사상 최대의 하락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과도한 하락은 여기까지일 것"이라는 분위기였으나, 한 번 시작된 하락 레이스에 브레이크는 없었다. 1년 전 고점 대비 50%선인 1,050을 단숨에 도달한 코스피 지수는 마침내 10월 24일 말도 안 되는 110포인트 하락을 통해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000선을 내주고 말았다. 정확히 한 달 만에 1/3인 563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이 기간 전체 21거래일 가운데 외국인은 불과 2일 순매수 우위였고, 기관은 11거래일 그리고 개인들은 무려 15거래일 순매수 우위였다. 이 거대한 폭락에 개인들의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최고점에서 최저점까지' 추락의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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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공포, 공황은 바로 이런 것

 1년 전 10월말 우리나라 주식 시장은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었고, 1년이 지난 현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극도의 공포감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 버렸다. 정부나 모든 전문가들도 아니라고 하고 스스로도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보지만, 위와 같은 지속적인 하락 추세는 IMF 구제 금융 신청 전 위기가 극에 달하던 몇 개월 동안의 모습을 자꾸만 떠오르게 하고 있다. 경험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섭다.
 

 ● MB가 장담하던 3,000은 어디에?


 대통령 선거를 코앞에 뒀던 지난해 12월 14일. 당시 이명박 후보는 한 증권사 방문 자리에서 증시에 대해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 우리 주가는 저평가되어 있다"면서 "올해 3,000, 임기 내 5,000"을 전망한 것이다. 3,000을 가기위해 올해는 이제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관련 기사)


 ● 추락은 어디까지?

 24일 폭락에 충격을 받은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25일 아침 저 멀리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날아온 소식에 또 한 번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갈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간밤에 미국 다우지수가 3.59%인 312.30포인트 폭락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전 세계가 폭락한 마당에 위기의 중심이었던 미국이 염치없게 오를 수는 없었던 것.

 예전에는 미국이 오르면 다른 국가들이 따라 오르고, 미국이 떨어지면 같이 떨어지는 양상이었으나 이제는 미국이 제 앞가림하기 힘든 상황에서 미국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고, 이에 따라 다른 나라도 떨어지고 미국 역시 덩달아 떨어지는 모습이다. 이렇다 보니 서로가 눈치를 보면서 폭락이 폭락을 부르는 양상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지난 고점 대비해서 50% 이상 하락했다. 우리의 고점은 지난해 11월 1일 2,085.45였는데, 올해 10월 24일 종가는 절반(1042.725)이 훨씬 넘는 938.75가 됐다. 일본 니케이 지수도 마찬가지다. 최고점은 지난해 2월 26일 18,000.39였으며, 24일 종가는 7649.08이었다. 절반인 9150.195를 이미 넘어섰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지난해 10월 11일)를 최고점(17,488.97)으로 잡아도 절반인 8744.485를 넘어선지 오래다.

 이런 기준으로 봤을 때, 미국의 다우지수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아직 덜 빠졌다는 이야기다. 다우의 최고점은 지난해 10월 11일 14,198.09였다. 25일(한국시간) 종가는 8378.95. 최고가 대비 절반은 7099.045인데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1279.905가 더 하락해야한다. 그러니까 25일과 같은 3%대 하락이 3번 연속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지난 10월 10일 7.882.50에서 저점을 기록했지만 이는 안착이 아닌 장중 터치일 뿐이었다. 형평성으로 따져본다면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안착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이 그 만큼 더 빠지게 된다면 우리 지수 역시 추가적인 하락이 불가피 하다는 점이다. 물론 빠질 만큼 빠졌다는 생각에 우리만 독자적으로 나가기를 희망하겠지만, 이미 전 세계가 동조화 되어 있는 마당에 그럴 확률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더 이상의 하락을 멈추고 옆으로 횡보하는 것은 지금까지 고통 받은 투자자들의 피를 말리는 일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강한 V자 반등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 모습보다는 지금과 같은 하락 패턴의 고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그 때까지 인내는 불가피해 보인다.




 




    나....
 
    그대 싫었지만 선거 결과 담담히 받아들였고,

    '어린쥐'와 '강부자', '고소영' 있었지만 TV로 취임식 보면서 인정해줬고,

    '7-4-7'과 '주가 3,000, 5,000' 호언장담에 주식 투자해 줬을 뿐이고,

    하지만 지금 그 돈 절반 날아갔고.....

    더 이상 넣을 돈도 없고..................


    주식하면 엄마가 다리 몽댕이를 뿌러뜨린다고 했고

    엄마 보고 싶을 뿐이고... 엄마~~~~~~~~~~~



    성질이 뻗쳐서 정말 XX








 하지만 모든 책임을 누구한테 돌릴 수도 없는 일. 모든 게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탓이소로이다. 따끔한 한마디 부탁해요.


                                                                          예...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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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펌 영상' 한 편 감상하자. (출처 : http://eniac90.egloos.com/)


                 케이크를 내리찍는 아저씨 표정에서 뒤집어짐... 아~~ 탐욕과 번뇌야 사라져라~~~~~~~ ㅠㅠㅠㅠㅠ




Posted by 공짜
2008. 10. 19. 00:46




 상무(전남)와 성균관대(경기)의 전국체전 야구 일반부 준준결승전이 열린 14일 여수 진남야구장.

 성균관대가 대학 강호지만, 대부분이 프로 출신으로 구성된 상무의 우세를 점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예상이었다. 실제로 두 팀은 지난해 이 대회 결승에서 만나 상무가 성균관대를 가볍게 꺾고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년만의 재대결. 상무가 손쉬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상은 경기 초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성균관대가 예상을 뒤엎고 2회초에 대거 5득점을 한 것. 한 두 점도 아니고, 대거 5점 헌납은 상무에게 치욕적인 일. 관중석에서도 '너네가 프로선수들 맞냐?'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비난이 계기가 된 것일까? 상무는 한 점, 한 점씩 꾸역꾸역 성균관대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9회말. 여전히 동점을 만들기에는 1점이 부족했던 1사후 상황. 타석에는 라이온즈 시절 안타수보다 도루수가 더 많았을 정도로 빠른 발이 주특기였던  ‘발명구’ 강명구가 들어섰다. 그리고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이어졌다.  성대 마무리 황재규를 상대로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극적인 동점 1점 홈런을 친 것. 초반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관중들도 어느새 전남을 대표한 상무 선수들을 향해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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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홈런을 허용한 황재규(이글스 입단 예정)는 지난해 동국대와의 준결승에서 9회초 김지수(히어로즈 입단 예정)에게 동점 홈런을 내주며 팀원들에게 추첨의 스릴을 안겨다 주었는데(관련 글 보기), 1년 만에 또 다시 그 장면을 재연하고 말았다.

 경기는 결국 5-5로 정규이닝을 마쳤고, 이제 남은 것은 연장전이 아닌 추첨. 전국체전에서만 볼 수 있다는 독특한(?) 승부 결정 방식으로, 이 세상 어느 야구 경기에서도 볼 수 없는 놓칠 수 없는 명장면(?)이 펼쳐졌다.

 양 팀 9명의 선수가 나선 추첨식은 초반 상무의 우세 분위기가 엿보였으나, 운은 성균관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결과는 7-2로 성균관대의 승. 천신만고 끝에 대회 4연패를 노리던 대어를 낚은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추첨승의 행운과 함께, 비록 추첨이지만 1년 전 결승패 설욕의 기쁨까지.

 결국, 강력한 우승 후보를 잡아낸 성균관대는 상승 분위기를 준결승(경남대)과 결승(건국대)전까지 이어가며 상대를 각각 물리치고, 제89회 전국체전 야구 일반부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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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첨 결과 확정 후 성균관대 이연수 감독과 선수들이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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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 진남야구장 ]


 ◆ 추첨의 시작

 전국체전 야구에서 최초의 추첨이 등장한 것은 제39회 대회가 열린 1958년이다. 대한체육회 역대체전정보(관련 페이지)를 살펴보면, 고등부 산하 ‘중등부 연식’ 부문 준결승에서 동인천중(경기)이 대신중(경남)과 3-3 무승부를 이룬 후, 추첨을 통해 승리했다는 내용이 사상 최초의 추첨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정식 종목이 아닌 연식 부문이고, 소년체전으로 분리가 이뤄진 중등부에서 나온 기록이라 현재 기준에 맞춰보면 사실상 최초 추첨은 1966년 제 47회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일반부의 해병대(경북)가 준결승에서 한전(부산)을 추첨으로 물리친 것.

 이후에도 주로 연식 경기에서만 볼 수 있었던 추첨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56회 대회부터 현재까지 거의 빠지지 않는 장면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근 70회부터 이번 89회 대회까지 추첨이 없었던 적은 73회 단 한번뿐이었다. 그 결과 이번 대회까지 고등부에서는 모두 44차례, 일반부에서는 47차례나 추첨으로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리게 되었다.


 ◆ 추첨의 전설들

 이번 대회 고등부 준준결승에서 용마고(경남)를 추첨으로 물리친 천안북일고(충남)는 이 승리로 인해 좀처럼 보기 드문 기록을 잇게 되었다. 그것은 추첨 7연승. 무려 7번의 추첨 상황을 만들기도 힘든데 거기다가 백전백승의 놀라운 신화를 쓴 것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11전 8승 3패. 추첨만 놓고 본다면 일반부를 통틀어서 어느 팀도 근접하기 힘든 놀라운 성적이다. 가히 ‘추첨의 신’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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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천안북일고가 추첨과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첫 추첨은 61회(1980년) 대회. 당시 예선에서 선린상고를 만나 팀 사상 첫 추첨을 경험하지만 결과는 패. 이후 64회까지 매번 참가 때마다 추첨과 마주쳐야 하는 특이한 경험이 이어지게 되는데, 63회 결승전에서 군상상고를 추첨으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외에는 모두 패배의 아픔. 4전 1승 3패.

 이렇게 암울한 1980년대를 보낸 천안북일고는 1990년대에 접어들자 추첨 앞에서 전혀 새로운(?) 팀이 되어 있었다. 그 시작은 72회(1991년) 대회. 강릉고에 추첨승을 거둔 것이다. 7연승의 시작이었다. 이후 74, 81회 각 대회에서 무려 2번의 추첨승을 연거푸 거두는 설명하기 힘든 놀라운 모습이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 81회(2000년) 이후 오랜만에 추첨식 앞에 다시 선 천안북일고는 추첨의 강자답게 승리를 거둬 연승을 7로 늘렸다.

 이외에도 앞선 천안북일고와의 패배만 빼고는 5전 전승을 거둔 군산상고, 4승 무패의 광주일고, 3승 무패의 대구상고 등이 고등부 추첨에서 두각을 보인 팀들이었다. 일반부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경남대가 4전 전승의 눈에 띄는 기록을 보였고, 인하대(4승 2패)와 원광대(3승 2패) 정도가 추첨과 인연을 보인 팀들이었다.

 ◆ 상무, “추첨 싫다, 정말 싫어”

 앞 결과에서도 봤지만 이번 대회 일반부에서는 이변이 발생했다. 대회 4연패를 노리던 강력한 우승후보 상무가 탈락한 것이다. 상무의 고전이 1차적인 원인이었지만, 탈락의 직접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추첨’.

 그런데 상무가 추첨으로 짐을 싸야했던 적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상무라는 이름으로 참가(65~69회는 열람 오류로 미확인)를 시작한 70회(1989년)부터 이번까지 상무는 모두 13번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3번 우승했고 10번 중도 탈락했는데, 무려 절반에 가까운 4번이 ‘추첨패’로 인한 결과였다. 특히 80회(1999년) 이후는 ‘모 아니면 도’식이다. 6번 참가해서 3번 우승했고 3번 탈락했는데, 그 3번이 모두 ‘추첨패’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무처럼 전체적으로 일반부 팀들 중에서 추첨의 불운에 뒤돌아선 팀들이 많았던 가운데, 계명대의 5전 전패와 3승 5패의 영남대, 그리고 초대 추첨패 팀이자 지금은 해체된 1승 3패의 한전이 가장 큰 패배의 쓴맛을 맛본 팀으로 나타났다. 고등부에서는 1승 5패의 부산고가 단연 눈에 띄었다.

 ◆ 추첨의 행운은 한 순간

 추첨으로 접어들게 되면 객관적인 지표는 필요가 없어지고, 승부의 방향은 오로지 하늘의 뜻에 맞겨야 할 만큼 그날의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일까? 추첨승을 거둔 팀들의 행운은 대부분 다음 경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1회성에 그치고 말았다.

 전국체전에 나온 추첨을 모두 분석해 본 결과, 결승전 이전까지 추첨으로 승리를 거둔 팀들은 대부분 다음 경기에서 패하며 짐을 싸야했다. 구체적으로 고등부는 다음 경기에서 패한 경우가 19번이었던 반면, 승리를 거둔 경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7번에 불과했다. 일반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17번 패를 기록하는 동안 승리는 1/3 정도인 6번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결승전까지 진출했을 경우에는 고등부와 일반부가 다른 결과를 나타냈다. 일반부의 경우는 여전히 ‘1회성 법칙’이 적용되며, 준결승 이하에서 추첨승을 거두고 결승까지 올라왔어도 대부분은 무릎을 꿇었다. 결승에서 승리를 거둔 경우가 6번 밖에 되지 않았고, 오히려 패를 기록하며 준우승에 그친 경우가 무려 3배인 18번에 이르렀다. 특히 이 가운데 준결승에서 추첨승을 기록한 11번의 경우에서 우승까지 이어진 경우는 단 한번(64회 동아대) 뿐이었다.

 반면, 고등부의 경우는 일반부와 정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패배를 기록하며 준우승에 그친 것이 6번인데 비해,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 경우가 무려 2배인 12번에 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부와 정반대로 준결승에서 추첨승을 거둔 6번의 경우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경우는 단 한번 이었다.

 ◆ 기타 주목할 사항

 앞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추첨의 달인’ 천안북일고는 74, 81회 각 대회에서 무려 2번의 추첨에 맞서 모두 이겨버린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한 대회에서 2번의 추첨승을 거둔 경우는 이외에도 3번 있었다. 53회 고등부의 대구상고와 79회 고등부 군산상고와 일반부 현대전자가 추첨으로만 2승을 거둔 것이다. 이 가운데 74회 천안북일고와 함께 2승의 행운이 우승까지 연결된 경우는 79회 군산상고 밖에 없었다.

 이번 대회 일반부 우승을 차지한 성균관대는 두 대회 연속 추첨의 스릴과 함께, 모두 승리를 거두는 행운까지 차지했다. 이런 사례는 주로 일반부에서 많이 나왔다. 원광대(74, 75회)를 시작으로 동의대(82, 83회), 경남대(83, 84회) 그리고 인하대(84, 85회)가 쉽지 않은 행운을 거머쥔 팀들이다. 이 중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동의대(82회)와 원광대(84회) 뿐이었다. 고등부에서는 광주일고(77, 78회)만이 유일하게 기록했고, 77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추첨의 전설’ 천안북일고는 양쪽 부문을 통틀어 유일한 3개 대회(62~64회) 연속 추첨을 경험했다. 하지만 결과는 1승 2패로 저조.

 체전에서 추첨의 한계는 없다. 결승전에서도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최초의 결승전 추첨은 63회(1982년) 고등부에서였다. 천안북일고와 군산상고가 2-2 무승부를 이뤄 추첨으로 천안북일고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후 70회 일반부에서 경남대가 단국대를 같은 방식으로 물리쳤고, 75회 고등부에서 부천고가 대전고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다행인 것은 이외에 더 이상의 결승전 추첨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 추첨은 언제까지?

 “이제 연장전이네?”

 9회말 상무 박병호의 타구가 유격수 땅볼로 이닝이 마무리되자 한 관중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펼쳐진 광경은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경기가 이어져야 할 운동장에 느닷없이 책상이 들어오고, 양 팀 선수들은 그 책상을 중심으로 나란히 서 있었기 때문. 연장전 대신 추첨으로 승부를 가르는 체전만의 독특한(?) 경기 방식을 몰랐던 것이다.

 이내 추첨으로 승부가 가려지고 자리를 뜨는 관중들의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 이런게 다 있어?”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던 경기 뒤에 나온 허무한 승부 결정 방식에 대한 허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이렇게 추첨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일주일간의 짧은 대회기간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경기장을 제외하고는 야간 경기를 할 수 없는 열악한 경기장 사정과 선수층이 얇은 것도 추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타까운 사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방적인 추첨에 변화를 줘야할 때다. 최소한 몇 이닝 정도는 연장전을 해보고 추첨으로 넘어간다거나, 아니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 등장했던 승부치기와 같은 제도라도 도입해서 야구를 통해 승부가 결정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그들만의 대회'가 아닌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는 점에서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 대회부터 제도 개선을 통해 선수들도 아쉽지 않고, 관중들도 아쉬움속에 발길을 돌리지 않는 좋은 방법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