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6. 18:34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눈으로 '공짜'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디지털 카메라(이하 디카). 그 디카를 잃어버린지 어느덧 2주가 흘렀다. 사실상 분실 당일 체념을 하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던것도 사실. 실제로 약 5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 때 잃어버린 PDA폰을 약 5개월 만에 되찾은 기적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흘러가는 분위기는 이러한 기적이 일어날 조짐은 없고, 영원히 떠나보내는 것만이 현명한 자세로 보여진다.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지만, 분실 순간을 되짚어 보면 누구나 그렇듯 짙은 후회만이 남는다. “좀 더 ~했어야 했는데...”. 고개를 한번만이라도 돌려서 머문 자리를 되돌아 봤다면, 이렇게 뜻하지 않았던 불행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지른 물. 이제 디카는 내 손에 없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길수도 있는 4년 동안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많은 사진을 생산해 냈던 그 녀석. 그래서인지 분실을 했음에도 분하고 억울한 마음은 없다. 물론 분실을 인지한 순간 잠시 쓰나미가 밀려왔지만, 어느덧 “그래, 떠나고 싶었던 거구나”라며 마음은 오히려 담담해졌다. 당초 향하던 무등산을 계획대로 오른것이 그 증거.

 이제는 누군가의 손에서 움직이고 있을 그 디카. 이 녀석을 처음 만난 건 2005년 새해 첫 주였다. 예기치 않게 생겨난 돈이 디카를 지르게 된 동기. 하지만 카메라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에 주변 도움에 100% 의존해야했고, 그렇게 소개받게 된 것이 후지필름의 ‘F-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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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말 출시된 후지필름의 'F-810'   (출처 : 한국 후지필름 홈페이지)

  출시된 지 오래된 만큼 이제는 소개하기에도 부끄러운 기종이다. 특히나 현재의 최신 기종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그 흔한 '손떨림 방지', '고감도 지원', '파노라마 촬영'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은 첫 만남에서는 더 했다. 위 사진에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얇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날렵한 몸체를 지닌 것도 아닌 단순하게 가로로 긴 직사각형의 투박한 디자인 때문. 이로 인해 살까말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막상 제품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주 보고 자꾸 사용을 하다 보니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이 든 것이다.

 이 때문인지 근래들어 ‘F-810'보다 더 나은 성능을 가진 최신 디카들과 DSLR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그런 제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최근까지도 오로지 이 녀석만 바라보고 셔텨가 눌러지지 않을 때까지 영원히 사용하리라 굳게 맘을 먹었다.
 
 하지만 너무 욕심을 부렸던것일까? 주인의 과욕과 관리 소홀로 'F-810'과의 인연은 40년이 아닌 4년에 그치고 말았다.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충전선, 크래들, USB선과 같은 유품들을 남긴 채 말이다.







 

Posted by 공짜
2008. 11. 9. 17:07


부제 : 평균자책점 1위 기념, 광주댐 찾아가기

(방문일 : 2008년 10월 1일)


 김광현(와이번스)과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치열한 싸움 끝에 생애 첫 개인 타이틀을 획득한 윤석민(타이거즈). 요즘에는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 때문에 ‘석민 어린이’로 많이 불리고 있지만, 공식적으로 그의 별명은 ‘광주댐’.

 촌스럽고 억지로 만들어낸 느낌이 강하지만 ‘광주댐’이라는 별명은 지난 2005년 7월 팬 공모에 의해, 더군다나 선수 본인이 직접 뽑아 정해진 자랑스런 별칭이다. (관련 내용 보기) 불펜 투수로 활약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이 별명은 당시 팀의 승리를 지켜달라는 의미로 해석되었지만, 선발로 자리 잡은 지금은 에이스로써 팀의 마운드를 든든히 지켜달라는 의미로 변화되었다.

  광주댐??

 이렇게 맺어진 ‘윤석민’과 ‘광주댐’의 인연. 사실상 이것은 둘의 인연만은 아니었다. ‘광주댐’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 곳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

 실제 이 별명을 응모했던 분이 ‘광주댐’의 존재를 알고 했는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서울댐, 부산댐, 대구댐, 인천댐 등과 같이 ‘해당 지명+댐’의 합성어 정도로 인식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가상의 댐이 탄생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지역에 살면서 ‘광주호’는 들어봤어도 ‘광주댐’은 금시초문이었고, 실제 있다하더라도 과연 그 댐의 규모가 ‘소양강댐’이나 ‘충주댐’, ‘주암댐’과 같이 평상시 친숙한 댐들과 함께 어울리며 불릴만한 규모의 시설이냐의 여부에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광주댐’, 진짜 댐 맞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광주댐’은 분명 '댐'이었다. 그것도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800여개의 댐에 당당히 포함되는 틀림없는 댐이었다. 다만 그 형태와 목적이 쉽게 떠올리는 댐들과 거리가 멀 뿐.

 물을 막고 있다고 해서 모두 댐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 기준이 있었다. 우리나라 댐 사업의 중심 법률인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는 댐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고 있었다. ‘댐이라 함은 (중략) 높이 15미터 이상의 공작물을 말하며...’. 결국 높이 15m가 넘게 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댐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참고 : 사단법인 한국대댐회)

 그렇다면 '광주댐'의 높이는? 15m가 넘는다. 그것도 기준을 훌쩍 넘는 25m. 당당하게 ‘광주댐’이라 불러도 되는 이유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고 높이는 ‘소양강댐’으로 123m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함평 전남야구장 옆의 ‘대동호’를 막고 있는 시설물도 댐이라는 것. 16m의 높이가 이를 증명해줬고, 더 나아가 기록에는 1940년대의 대표적인 댐으로 나와 있었다.

 ‘광주댐’은 어디에?

 광주 동쪽에 있는 ‘광주댐’은 정확하게는 담양군에 위치해 있다. 광주 중심부에서 무등산을 바라봤을 때는 서쪽 끝자락에 ‘광주댐’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 곳에는 광주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긴 ‘광주호’가 있고, 주변에는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관광 명소가 산재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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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호 생태공원에서 바라다 본 '광주호'

 찾아가는 법을 통해 이곳의 위치를 확인해보자면 크게 3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광주에서 순천으로 내려가는 국도로 진입한 후 잠시 뒤에 볼 수 있는 고서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식영정, 소쇄원, 가사문학관 방향으로 가는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보면 언덕길 부근에서 ‘광주댐’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이 이 노선을 이용하면 된다.

 다음으로 광주에서 무등산을 넘어가는 방법도 있다. 광주 동구쪽에서 무등산에 있는 충민사, 충장사, 충효사를 거쳐 광주호로 연결되는 길이 있는데, 이 노선을 이용해도 된다.

 마지막으로 화순, 고흥과 같은 일부 남부 지방에서는 화순에서 담양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가는 도중 ‘광주댐’을 만날 수 있다.


  ‘광주댐’은 어떤 곳?

 지금은 모르겠으나 예전 초중등 사회 과목에서 ‘국토종합개발계획’은 단골 시험문제였다. 그래서 달달달 외워야했다. 만약 그 기억이 떠오른다면, ‘광주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72년 정부는 10년간 제 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을 펼친다. 핵심 골자는 전국을 4대강 유역 중심으로 개발한다는 내용. 이 지역에 대입하면 ‘영산강유역종합개발계획’이 그것이며, 대표적 실행 방안으로 댐 건설이 포함되어 있었다. ‘광주댐’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였다.

 이렇게 1974년 3월에 삽을 뜨기 시작해, 1976년 9월 그 모습(높이 25m, 길이 505m)을 드러냈고, 총 공사비는 7억 9천만원(기념비에는 25억 2천 6백만원이라고 되어 있음). 전남 담양군 고서면과 남면에 걸쳐 지어졌으며, 이를 통해 물을 가두면서 광주호가 생겨났다. 참고로 같은 기간 담양호, 나주호, 장성호도 앞에서 살펴본 정부 정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광주댐은 농업용 수리 시설과 홍수 조절의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주변 유명 문화재와 연계되어 관광명소로도 재탄생했다. 참고로 광주호 주변에는 식영정, 독수정, 취가정, 환벽당 등 유명 정자들과 조선 중기 대표적인 정원으로 이름난 소쇄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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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댐’ 찾아가기

 자가용을 이용한다고 했을때 앞서 소개한 위치를 따라 간다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자가용이 없다고 해서 ‘광주댐’을 못가는 것은 아니다. 대중교통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다. 그 비밀은 버스.

 우선 알아둬야 할 것은 댐의 위치가 담양이라 담양터미널을 이용하면 편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무조건 광주에서 가야한다. 물론 담양터미널에서도 갈 수 있지만 편수가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마찬가지로 소쇄원이나 광주호 주변도 광주에서 가는것이 편하다.

 그 시작점은 광주 광천터미널. 전국 주요 터미널과 연결되어 있는 이곳으로 온 후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출발하는 225번(담양운수) 버스를 이용하면 끝. 대략 1시간당 1대가 운행한다. 시내버스처럼 각 정류소마다 정차를 하기 때문에 굳이 터미널까지 올 필요가 없다면 해당 노선이 지나가는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승차를 해도 된다. (참고 : 225번 버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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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외에도 광주에서 무등산을 넘어 충민사와 충장사, 충효사 그리고 광주호까지 운행하는 187번(대창운수)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 노선은 ‘광주댐’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아서 1시간에 1대가 다니는 버스로 갈아타든지 1시간가량 걸어가야 한다. 대신 광주호에 내려서 앞서 언급한 주변 유명 관광지를 둘러본 후 광주댐으로 향한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참고 : 187번 버스 정보)
 
  이것이 ‘광주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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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댐'이 농부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가져다 주는 역할을 하듯, 우리의 '광주댐'도 최고 투수로 더욱 거듭나 야구팬들에게 기쁨을 안겨다주는 선수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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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보는 윤석민과 김광현의 숨 막혔던 경쟁 ]

 기아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열렸던 10월 4일 광주 무등야구장.

 두 팀에게는 이날이 ‘08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였지만, 이미 최종 순위가 확정된 상태라 전날까지만 해도 그들만의 맥 빠진 경기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등야구장에는 6,736명의 관중들이 입장했다. 순위싸움에서 멀어지기 직전인 8월 31일(7,108명) 이후 최다 관중이었다. 왜 이렇게 등을 돌렸던 야구팬들이 다시 야구장을 찾게 된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한 선수의 활약 여부가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타이거즈의 에이스로 자리잡은 윤석민. 전날 같은 장소에서 김광현(와이번스)이 보여준 호투로 자신이 굳건히 지키고 있던 평균자책점 1위 자리를 빼앗긴 것. 바로 그 1위를 다시 되찾기 위해 어깨 부상으로 개점휴업하고 있었음에도 시즌 마지막경기에 등판했고, 순위싸움에서 뒤쳐지며 멀어졌던 관중들도 힘을 보태기 위해 야구장을 찾은 것이다.

 이 두 선수가 이렇게 치열한 순위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윤석민에게는 프로 데뷔(2005년) 이후 첫 타이틀 획득의 기회였고, 김광현은 최고 투수들만 이룰 수 있다는 투수 3관왕을 위해 이 부문 1위를 절대로 놓칠 수가 없었기 때문.

 하지만 이들의 싸움이 첨부터 치열했던 것은 아니다. 그것도 올림픽 이후 시작된 후반기 첫 경기를 마치고 난 이후까지만 해도 3관왕은 오히려 윤석민이 더 가까웠고, 특히 평균자책점 부문에 있어서는 거의 이변이 없는 한 윤석민 차지나 다름없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9월 들어 이상한 조짐이 발생했다. 김광현의 호투가 연이어 계속된 것. 9월 3일과 9일 연속 2경기에서 각각 승리투수가 된 것 뿐만 아니라, 합계 15.1이닝 무실점. 다승에서는 단독 1위가 되었고, 순위권 밖(3.09)에 있었던 평균자책점은 어느새 3위(2.74)로 올라섰다. 여기에 그 다음 경기였던 14일에는 비록 승수를 추가하지 못했지만 7.1이닝 1자책점과 무려 11개의 탈삼진을 추가하며, 평균 자책점을 2.66으로 끌어내렸고 탈삼진에서는 2위로 올라서며 어느새 투수 3관왕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반면, 승승장구하던 윤석민의 행보는 김광현과 전혀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후반기 첫 경기 7이닝 무실점 승리투수로 상큼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2경기에서 1패와 9.1이닝 4자책점. 2.34였던 평균자책점이 2.46으로 올라갔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9월 13일 경기 이후 오른쪽 어깨 피로누적으로 선수명단에서 제외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팀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어려워진 가운데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보면, 사실상 올 시즌 마감이었다. 평균자책점 부문도 김광현의 무결점 투구가 마지막까지 이어지지 않는 한 위협받기는 거의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설마는 사실이 되고 말았다. 김광현의 어깨가 식지 않았던 것. 9월 21일과 27일 경기에서 2승을 추가하며 사실상 다승왕을 확정지었고, 탈삼진은 1위와 불과 한 개차로 다가섰다. 중요한 것은 13이닝 1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을 2.50으로 더욱 낮춘 것. 한 달 사이에 정확히 0.59를 낮춘 것이다.

 이어 10월 3일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일이 펼쳐졌다. 선발로는 마지막 경기를 경쟁자의 팀과 그 홈구장에서 하게 된 것. 그리고 그 결과는 모두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7이닝 무자책점. 논란의 2실점이 있었지만, 이는 무자책점이었다. 평균자책점 2.39. 불과 한 달 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순위가 뒤바뀐 것이다. 여기에 탈삼진도 무려 12개를 추가, 1위로 올라서며 김광현은 그토록 갈망했던 3개 부문 모두 1위로 올라섰다. 이 모습은 모두 윤석민이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남아있는 경기는 1경기. 윤석민이 재탈환을 위해서는 3.1이닝 무자책점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는 최소 경우의 수. 이미 김광현이 상황을 봐서 시즌 마지막 경기 등판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윤석민은 그 이상을 던져야 했다. 부상으로 인해 약 한 달간 실전 감각이 없는 선수에게 상황은 여러모로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맞이한 10월 4일 경기. 하지만 이는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부상으로 한 달을 쉰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씩씩하게 공을 던진것. 그리고 마침내 4회초 선두 타자 유재웅을 투수땅볼로 잡아내며 3.1이닝 무자책점으로 1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그의 투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7이닝 무자책점을 기록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평균자책점 2.33. 김광현이 재탈환을 하기 위해서는, 무려 4.1이닝 무자책점을 기록해야할 만큼 던진 것이다.

 결국, 둘의 경쟁은 이것으로 막을 내렸다. 김광현이 다음날 마지막 경기에 나올 수도 있었지만 4.1이닝은 혹사에 가까운 무리한 등판계획이었고, 더구나 팀은 한국시리즈라는 큰 경기를 앞둔 상황이었기 치열한 승부는 여기서 마감되었다. 최종적으로 윤석민은 프로 첫 타이틀인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고, 김광현은 다승과 탈삼진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올 시즌 프로야구 정규시즌 MVP에 올랐다.
                                                 
           ◎ 윤석민이 '08시즌 마지막 투구를 마치고 내려가는 모습. 이 아웃을 잡아내면서, 평자점을 2.33으로 끌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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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너스) 오늘 석민이가 등판하는 날이란 말이예요~!!


 윤석민이 등판했던 10월 4일, 이날 경기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엿볼 수 있는 장면 하나.

 대체적으로 경기 전 무등야구장 풍경은 선수들이 경기를 앞두고 몸을 푸는 동안 한쪽에서는 경기 진행 요원들이 내야 그라운드를 정비하는 작업이 이뤄진다. 선도 긋고 흙 주위에 물도 뿌리고 잔디를 부드럽게 정리를 해주는 작업들 말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경기 30분전에는 이러한 작업들이 모두 완료가 되고 경기 시작만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날 무등야구장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이미 그어졌던 선을 지우고, 다시 그렸던 것. 경기 시작을 불과 20여분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특히나 흥미로운 건 양 팀 선수단이나 심판진의 요구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경기장을 관리하는 한 직원의 문제제기를 통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사실. 운동장을 관리하는 시 직원들을 다시 불러내 서둘러 선을 다시 긋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조용히 일을 마무리한 것이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으로 예전 같았으면 그냥 유야무야 넘어갔을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날 모든 대사가 홈플레이트 주변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보니 운동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 직원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이날 윤석민의 등판이 팀 주변에서도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경기임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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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기 시작 20여분전 갑자기 어디론가 연락을 한다.     2) 시설관리소 직원과 함께 상황 파악
                    3) 문제 확인후 선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작업 돌입        4) 재 점검. "괜찮아?" "문제없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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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뿐만이 아니다. 걸레로 홈플레이트를 정성스럽게 닦아내는 모습까지. 지난 '06 준플레이오프때도 보지 못했던 장면이었다.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