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5. 14:40
2006년 6월 9일 스포홀릭 기사


 손에 땀을 쥐게 만든 연장 16회 결승전 혈투를 끝으로 제61회 청룡기 고교야구대회가 7일 막을 내렸다. 대회전만 하더라도 김광현의 안산공고와 정영일의 진흥고가 우승후보로 꼽혔지만, 대회 우승은 이들 팀을 차례로 꺾은 경남고의 차지였다. 그러나 이러한 명승부와 이변은 이야기 거리가 되지 못했다. 학생 야구의 뜨거운 감자인 '혹사' 문제가 이번에도 불거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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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는 혹사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진흥고 정영일의 기록이다. 정영일은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 팀이 펼친 5경기 모두 완투에 가까운 투구를 펼쳤다. 혼자서 마운드를 책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혹사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결승전 222개의 투구수는 분명 정도를 지나친 투구였다. 이미 지난 4월 대통령배 대회에서도 이틀간에 걸쳐 242개를 던졌기에 그를 향한 안타까운 시선은 더했다. 이처럼 ‘진흥고의 정영일’이 아닌, ‘정영일의 진흥고’ 모습이 나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 감독은 더 이상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고교 야구에는 승리밖에 없다. 매 경기가 결승전이나 다름없다. 모든 고교 야구팀이 여기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특정 선수가 곧 그 팀의 전부가 되면, 경기가 거듭될수록 문제가 생기는데 진흥고가 바로 그 경우였다. 이로 인해 비난의 화살이 온통 진흥고 박철우 감독에게로 쏟아지고 있다. 과거의 혹사 사례에서처럼 항상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영일만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승 티켓을 놓고 벌인 덕수정보고와의 준결승 경기. 이날 박철우 감독은 조금이라도 투구에 대한 부담을 덜기위해 1학년 정형식(정영일 친동생)을 선발로 내세웠다. 하지만 1회초부터 점수를 허용하고 2사 1-3루 위기가 계속되자, 정영일이 예상보다 일찍 마운드에 올라왔다. 그리고 팀이 9-2로 여유있게 앞서자 결승전 대비를 위해 8회초 좌익수로 물러났지만, 또다시 무사 만루 위기에 몰리자 다시 마운드로 향했다. 앞선 충암고와의 8강전도 1회말 만루 위기에 몰려 일찍 마운드에 올랐던 그였다. 이처럼 그가 마운드를 지키지 않으면 팀이 위기를 맞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감독은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영일을 뒷받침할 수 있는 투수를 키우지 못하고, 타격 실력을 끌어올리지 못한 점은 지도자로서 비난을 들어도 마땅하다. 하지만 현 제도에서 승리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택한 그에게 비난이 집중되어서는 안 된다. 그 비난의 방향은 이제 감독과 선수단이 아닌 야구 대회를 개최하고 시행하는 쪽으로 옮겨져야 한다.

◇ 변하지 않는 대회 방식

 현재 고교야구 대회는 모두 단판 승부를 통한 토너먼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회전부터 사활을 걸고 펼쳐야 하는 경기 방식으로, 혹사 문제는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정 선수에게 비중이 크거나 약팀일수록 승리를 위해 첫 경기부터 무리수를 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4월부터 10월까지 9개 대회를 모두 소화해야하기 때문에, 모든 대회가 10일 정도의 빽빽한 경기 일정을 잡고 있는 것도 혹사를 부추기고 있다. 현재까지 대한야구협회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 일은 특정팀의 독식 참가 방지 이외에는 없다.

◇ 대회 주최측의 이기주의

 대회수가 많은 것도 문제다. 중앙과 지방의 유력한 신문사마다 경쟁적으로 고교 야구 대회를 개최하다 보니, 현재는 전국 4개, 지방 4개 등 전국체전을 포함해 모두 9개 대회로 불어난 상태다. 결국, 고교 야구 선수들은 ‘대회를 위해’ 참가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렇다 보니 혹사 문제뿐만 아니라, 학생의 본분인 수업마저 받지 못하는 문제까지 야기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회의 통폐합을 통한 조정 수준까지 왔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현재 모든 대회가 각 신문사의 자존심이 걸린 민감한 사안이라, 타협과 양보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각 대회마다 몇십년에 걸친 권위와 전통을 내세워 쉽게 손을 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결국은 신문사 스스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대승적인 선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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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지 야구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 것 밖에 없는 감독과 선수단. 이들에게 집중된 비난의 화살을 대한야구협회와 각 신문사가 나서서 막아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고 흐지부지 넘기면, 이번과 같은 논쟁은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이다. 변화의 모습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