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19. 00:46




 상무(전남)와 성균관대(경기)의 전국체전 야구 일반부 준준결승전이 열린 14일 여수 진남야구장.

 성균관대가 대학 강호지만, 대부분이 프로 출신으로 구성된 상무의 우세를 점치는 것이 자연스러운 예상이었다. 실제로 두 팀은 지난해 이 대회 결승에서 만나 상무가 성균관대를 가볍게 꺾고 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년만의 재대결. 상무가 손쉬운 승리를 거둘 것이라는 예상은 경기 초반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성균관대가 예상을 뒤엎고 2회초에 대거 5득점을 한 것. 한 두 점도 아니고, 대거 5점 헌납은 상무에게 치욕적인 일. 관중석에서도 '너네가 프로선수들 맞냐?'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비난이 계기가 된 것일까? 상무는 한 점, 한 점씩 꾸역꾸역 성균관대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9회말. 여전히 동점을 만들기에는 1점이 부족했던 1사후 상황. 타석에는 라이온즈 시절 안타수보다 도루수가 더 많았을 정도로 빠른 발이 주특기였던  ‘발명구’ 강명구가 들어섰다. 그리고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이어졌다.  성대 마무리 황재규를 상대로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극적인 동점 1점 홈런을 친 것. 초반 냉담한 반응을 보였던 관중들도 어느새 전남을 대표한 상무 선수들을 향해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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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홈런을 허용한 황재규(이글스 입단 예정)는 지난해 동국대와의 준결승에서 9회초 김지수(히어로즈 입단 예정)에게 동점 홈런을 내주며 팀원들에게 추첨의 스릴을 안겨다 주었는데(관련 글 보기), 1년 만에 또 다시 그 장면을 재연하고 말았다.

 경기는 결국 5-5로 정규이닝을 마쳤고, 이제 남은 것은 연장전이 아닌 추첨. 전국체전에서만 볼 수 있다는 독특한(?) 승부 결정 방식으로, 이 세상 어느 야구 경기에서도 볼 수 없는 놓칠 수 없는 명장면(?)이 펼쳐졌다.

 양 팀 9명의 선수가 나선 추첨식은 초반 상무의 우세 분위기가 엿보였으나, 운은 성균관대로 넘어갔다. 그리고 결과는 7-2로 성균관대의 승. 천신만고 끝에 대회 4연패를 노리던 대어를 낚은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추첨승의 행운과 함께, 비록 추첨이지만 1년 전 결승패 설욕의 기쁨까지.

 결국, 강력한 우승 후보를 잡아낸 성균관대는 상승 분위기를 준결승(경남대)과 결승(건국대)전까지 이어가며 상대를 각각 물리치고, 제89회 전국체전 야구 일반부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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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첨 결과 확정 후 성균관대 이연수 감독과 선수들이 승리의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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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 진남야구장 ]


 ◆ 추첨의 시작

 전국체전 야구에서 최초의 추첨이 등장한 것은 제39회 대회가 열린 1958년이다. 대한체육회 역대체전정보(관련 페이지)를 살펴보면, 고등부 산하 ‘중등부 연식’ 부문 준결승에서 동인천중(경기)이 대신중(경남)과 3-3 무승부를 이룬 후, 추첨을 통해 승리했다는 내용이 사상 최초의 추첨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는 현재 정식 종목이 아닌 연식 부문이고, 소년체전으로 분리가 이뤄진 중등부에서 나온 기록이라 현재 기준에 맞춰보면 사실상 최초 추첨은 1966년 제 47회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일반부의 해병대(경북)가 준결승에서 한전(부산)을 추첨으로 물리친 것.

 이후에도 주로 연식 경기에서만 볼 수 있었던 추첨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56회 대회부터 현재까지 거의 빠지지 않는 장면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최근 70회부터 이번 89회 대회까지 추첨이 없었던 적은 73회 단 한번뿐이었다. 그 결과 이번 대회까지 고등부에서는 모두 44차례, 일반부에서는 47차례나 추첨으로 양 팀의 희비가 엇갈리게 되었다.


 ◆ 추첨의 전설들

 이번 대회 고등부 준준결승에서 용마고(경남)를 추첨으로 물리친 천안북일고(충남)는 이 승리로 인해 좀처럼 보기 드문 기록을 잇게 되었다. 그것은 추첨 7연승. 무려 7번의 추첨 상황을 만들기도 힘든데 거기다가 백전백승의 놀라운 신화를 쓴 것이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11전 8승 3패. 추첨만 놓고 본다면 일반부를 통틀어서 어느 팀도 근접하기 힘든 놀라운 성적이다. 가히 ‘추첨의 신’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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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천안북일고가 추첨과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첫 추첨은 61회(1980년) 대회. 당시 예선에서 선린상고를 만나 팀 사상 첫 추첨을 경험하지만 결과는 패. 이후 64회까지 매번 참가 때마다 추첨과 마주쳐야 하는 특이한 경험이 이어지게 되는데, 63회 결승전에서 군상상고를 추첨으로 이기며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외에는 모두 패배의 아픔. 4전 1승 3패.

 이렇게 암울한 1980년대를 보낸 천안북일고는 1990년대에 접어들자 추첨 앞에서 전혀 새로운(?) 팀이 되어 있었다. 그 시작은 72회(1991년) 대회. 강릉고에 추첨승을 거둔 것이다. 7연승의 시작이었다. 이후 74, 81회 각 대회에서 무려 2번의 추첨승을 연거푸 거두는 설명하기 힘든 놀라운 모습이 이어졌다. 그리고 올해, 81회(2000년) 이후 오랜만에 추첨식 앞에 다시 선 천안북일고는 추첨의 강자답게 승리를 거둬 연승을 7로 늘렸다.

 이외에도 앞선 천안북일고와의 패배만 빼고는 5전 전승을 거둔 군산상고, 4승 무패의 광주일고, 3승 무패의 대구상고 등이 고등부 추첨에서 두각을 보인 팀들이었다. 일반부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경남대가 4전 전승의 눈에 띄는 기록을 보였고, 인하대(4승 2패)와 원광대(3승 2패) 정도가 추첨과 인연을 보인 팀들이었다.

 ◆ 상무, “추첨 싫다, 정말 싫어”

 앞 결과에서도 봤지만 이번 대회 일반부에서는 이변이 발생했다. 대회 4연패를 노리던 강력한 우승후보 상무가 탈락한 것이다. 상무의 고전이 1차적인 원인이었지만, 탈락의 직접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추첨’.

 그런데 상무가 추첨으로 짐을 싸야했던 적은 이번뿐만이 아니었다. 상무라는 이름으로 참가(65~69회는 열람 오류로 미확인)를 시작한 70회(1989년)부터 이번까지 상무는 모두 13번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가운데 3번 우승했고 10번 중도 탈락했는데, 무려 절반에 가까운 4번이 ‘추첨패’로 인한 결과였다. 특히 80회(1999년) 이후는 ‘모 아니면 도’식이다. 6번 참가해서 3번 우승했고 3번 탈락했는데, 그 3번이 모두 ‘추첨패’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상무처럼 전체적으로 일반부 팀들 중에서 추첨의 불운에 뒤돌아선 팀들이 많았던 가운데, 계명대의 5전 전패와 3승 5패의 영남대, 그리고 초대 추첨패 팀이자 지금은 해체된 1승 3패의 한전이 가장 큰 패배의 쓴맛을 맛본 팀으로 나타났다. 고등부에서는 1승 5패의 부산고가 단연 눈에 띄었다.

 ◆ 추첨의 행운은 한 순간

 추첨으로 접어들게 되면 객관적인 지표는 필요가 없어지고, 승부의 방향은 오로지 하늘의 뜻에 맞겨야 할 만큼 그날의 운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일까? 추첨승을 거둔 팀들의 행운은 대부분 다음 경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1회성에 그치고 말았다.

 전국체전에 나온 추첨을 모두 분석해 본 결과, 결승전 이전까지 추첨으로 승리를 거둔 팀들은 대부분 다음 경기에서 패하며 짐을 싸야했다. 구체적으로 고등부는 다음 경기에서 패한 경우가 19번이었던 반면, 승리를 거둔 경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7번에 불과했다. 일반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17번 패를 기록하는 동안 승리는 1/3 정도인 6번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결승전까지 진출했을 경우에는 고등부와 일반부가 다른 결과를 나타냈다. 일반부의 경우는 여전히 ‘1회성 법칙’이 적용되며, 준결승 이하에서 추첨승을 거두고 결승까지 올라왔어도 대부분은 무릎을 꿇었다. 결승에서 승리를 거둔 경우가 6번 밖에 되지 않았고, 오히려 패를 기록하며 준우승에 그친 경우가 무려 3배인 18번에 이르렀다. 특히 이 가운데 준결승에서 추첨승을 기록한 11번의 경우에서 우승까지 이어진 경우는 단 한번(64회 동아대) 뿐이었다.

 반면, 고등부의 경우는 일반부와 정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패배를 기록하며 준우승에 그친 것이 6번인데 비해, 승리를 거두며 우승을 차지한 경우가 무려 2배인 12번에 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부와 정반대로 준결승에서 추첨승을 거둔 6번의 경우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한 경우는 단 한번 이었다.

 ◆ 기타 주목할 사항

 앞에서도 언급이 되었지만 ‘추첨의 달인’ 천안북일고는 74, 81회 각 대회에서 무려 2번의 추첨에 맞서 모두 이겨버린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이렇게 한 대회에서 2번의 추첨승을 거둔 경우는 이외에도 3번 있었다. 53회 고등부의 대구상고와 79회 고등부 군산상고와 일반부 현대전자가 추첨으로만 2승을 거둔 것이다. 이 가운데 74회 천안북일고와 함께 2승의 행운이 우승까지 연결된 경우는 79회 군산상고 밖에 없었다.

 이번 대회 일반부 우승을 차지한 성균관대는 두 대회 연속 추첨의 스릴과 함께, 모두 승리를 거두는 행운까지 차지했다. 이런 사례는 주로 일반부에서 많이 나왔다. 원광대(74, 75회)를 시작으로 동의대(82, 83회), 경남대(83, 84회) 그리고 인하대(84, 85회)가 쉽지 않은 행운을 거머쥔 팀들이다. 이 중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동의대(82회)와 원광대(84회) 뿐이었다. 고등부에서는 광주일고(77, 78회)만이 유일하게 기록했고, 77회에서는 우승을 차지했다. 한편, ‘추첨의 전설’ 천안북일고는 양쪽 부문을 통틀어 유일한 3개 대회(62~64회) 연속 추첨을 경험했다. 하지만 결과는 1승 2패로 저조.

 체전에서 추첨의 한계는 없다. 결승전에서도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최초의 결승전 추첨은 63회(1982년) 고등부에서였다. 천안북일고와 군산상고가 2-2 무승부를 이뤄 추첨으로 천안북일고가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이후 70회 일반부에서 경남대가 단국대를 같은 방식으로 물리쳤고, 75회 고등부에서 부천고가 대전고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다행인 것은 이외에 더 이상의 결승전 추첨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 추첨은 언제까지?

 “이제 연장전이네?”

 9회말 상무 박병호의 타구가 유격수 땅볼로 이닝이 마무리되자 한 관중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펼쳐진 광경은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경기가 이어져야 할 운동장에 느닷없이 책상이 들어오고, 양 팀 선수들은 그 책상을 중심으로 나란히 서 있었기 때문. 연장전 대신 추첨으로 승부를 가르는 체전만의 독특한(?) 경기 방식을 몰랐던 것이다.

 이내 추첨으로 승부가 가려지고 자리를 뜨는 관중들의 반응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뭐 이런게 다 있어?” 마지막까지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던 경기 뒤에 나온 허무한 승부 결정 방식에 대한 허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이렇게 추첨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일주일간의 짧은 대회기간 때문이다. 여기에 일부 경기장을 제외하고는 야간 경기를 할 수 없는 열악한 경기장 사정과 선수층이 얇은 것도 추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타까운 사정이다.

 하지만 이제는 일방적인 추첨에 변화를 줘야할 때다. 최소한 몇 이닝 정도는 연장전을 해보고 추첨으로 넘어간다거나, 아니면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 등장했던 승부치기와 같은 제도라도 도입해서 야구를 통해 승부가 결정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그들만의 대회'가 아닌 지켜보는 관중이 있다는 점에서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 대회부터 제도 개선을 통해 선수들도 아쉽지 않고, 관중들도 아쉬움속에 발길을 돌리지 않는 좋은 방법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Posted by 공짜
2008. 10. 10. 00:21

* 부제 : 되돌아 본 제88회 광주 전국체전 ('07)


 제89회 전국체전의 날이 밝았다. 전라남도에서 개최될 이번 전국체전은 여수를 중심으로 17개 시군 62개 경기장에서 모두 42개 종목(시범경기 포함)의 경기가 16일까지 일주일간 펼쳐질 예정이다.

 이번 체전이 새삼스럽지 않은것은 주요 경기가 펼쳐지는 동네가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과 함께 불과 1년전 광주에서 열린 인연으로 많은 경기를 볼 수 있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기 때문. 특히 수도권과 거리가 먼 지역적 특성상 평상시 직접 관람의 기회를 접하기 힘든 현실에서, 체전은 맘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보고 싶은 경기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스포츠는 TV보다는 현장에서"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던 지난해 체전을 관람 종목 중심으로 되돌아 본다.






● 야구 : 체전의 0순위 관람 종목. 무엇보다 체전에서만 볼 수 있다는 추첨 광경을 본 것은 큰 수확.(당시 내용은 오른쪽 분류 중 '아마야구'를 클릭하면 1~2페이지에 걸쳐 나와 있음.)

● 축구 : 고생한 선수들이나 관계자분들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체전 관람 종목 가운데 가장 큰 실망을 안고 뒤돌아서야 했던 종목이다. 스스로 주목할 만한 팀이나 선수를 눈여겨두지 못한 탓이라 본다.

● 럭비 : 첫 직접 관람. 체전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평생 불가능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분명 수업시간에 참여를 하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학생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게임의 방법, 구성, 인원, 시간 등등 배경 지식이 전혀 없다보니, 럭비공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모습만 봤을 뿐이다. 점수가 날때마다 대형 스피커를 통해 나오던 세레모니 음악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해야하나? 육상 경기처럼 경기 진행을 설명해주는 진행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직까지 럭비는 우리들에게 낯선 종목이 분명하니까.

● 핸드볼 : 그 명성 그대로. 다만 응원팀과 선수가 있었다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스포츠를 재미있게 볼려면 간단한 예습 정도는 필수.

● 수영 : 첫 직접 관람. 수영장을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훈풍. 거기에 박태환 효과로 관중석은 만원 사례. 간신히 출발 라인 반대쪽 구석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 정도로 수영은 이 때 최고의 인기 종목이었다. 박태환 경기를 노리고 가지는 않았어도 박태환 경기를 보지 못한 아쉬움은 있었지만, 다른 출전 선수들의 경기도 충분히 매력이 있었다. TV에서는 앞서 나가는 선수들 중심으로만 나오지만, 현장에서는 TV에서 볼 수 없는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위권으로 쳐진 선수들의 모습이나 선수가 역영을 할 때 도움을 주기위해 코치가 따라다니며 호흡을 맞추는 모습 등등. 바로 이런 장면이 현장으로 이끄는 요인이 아닌가 싶다.  

● 육상 : 하필이면 관람 당시 단거리보다는 장거리 위주로 펼쳐지고 있었던 탓에 육상에 대한 모든 매력을 많이 느끼지 못한 점이 아쉬웠지만, 광주월드컵 경기장이라는 최고급 시설 때문인지 나쁜편은 아니었다. 특히 놀라운 점은 현장 관중들을 상대로 개별 종목 하나하나마다 윤여춘 MBC 육상 해설위원의 해설이 곁들여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자칫 루즈해지기도 쉽고, 어디에 눈을 고정시켜야 할지 모르는 관중들을 위해서라도 참 좋은 아이디어였다. 저변 확대가 별것인가? 바로 이렇게 조금만것 하나부터 해나간다면, 그 노력의 기쁨을 좀 더 빨리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인라인 롤러 : 첫 직접 관람 및 최고의 인상적인 경기. 당초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만들어졌다는 인라인 롤러장 시설을 보기위해 갔는데, 오히려 선수들의 경기 모습에 빠져버렸다. TV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선수들의 스피드함과 신경전 그리고 코너에서의 아슬아슬한 질주. 여기에 결승선을 앞두고 펼쳐지는 치열한 순위 싸움. 직접 타는것 만큼이나 전문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직접 보는것도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Posted by 공짜
2008. 10. 6. 17:35

(방문일 : 2006년 8월 24일)


 인천 야구장? 도원 야구장? 숭의 야구장?

 제 각각 명칭인 것 같지만, 이는 하나의 야구장을 뜻하는 똑같은 이름(이하 숭의)들이다. 과거 인천의 짠물 야구를 상징했던 곳이자, 문학 야구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인천을 연고로 했던 프로 5개팀이 모두 거쳐갔던 인천 야구의 메카.

 근래들어 추억의 꼴찌로 사랑받지만 당시에는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던 '삼미 슈퍼스타즈',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청보 핀토스', 무너졌던 인천 야구팬들의 자존심을 세워줬던 '태평양 돌핀스', 사상 처음으로 우승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지만 인천을 등져버린 '현대 유니콘스', 그리고 인천에 새 기운을 불어넣은 'SK 와이번스'까지. 이 팀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갔던 그 야구장.

 인천 야구장으로 불리웠던 지난 8, 90년대 TV속에 비쳐지던 이 곳에 대한 인상은 정말 열악하다는 느낌만이 가득했다. 지금이야 지난 1996년 현대 유니콘스가 팀을 인수하면서 외야에 인조잔디를 깔고 내야에는 최고급 검은 모래를 뿌리면서 야구장 환경이 180도 달라졌지만, 그 이전에는 외야에 심어진 잔디가 잡초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드문드문 자라있었고, 흙도 고르지 못해 불규칙 바운드가 나오거나 선수들이 돌을 골라내는 장면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곳 야구장에서만 볼 수 있었던 외야의 높은 철조망 펜스도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었다. 지금이야 아는 내용이지만 야구 규칙을 잘몰랐던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이것 때문에 내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철조망을 맞고 나오는 공을 외야수가 바로 잡으면 아웃인지 아닌지 여부.

 바로 그 장소가 조만간(10월경 예정) 이름만을 남긴 채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현재 이 일대에서 진행중인 '숭의운동장 도시개발사업(인천도시개발공사)'에 따라 대표적인 노후화 시설인 이곳이 철거의 운명을 피할 수 없게된 것.  이미 바로 옆 숭의 종합 운동장은 지난 6월 철거가 이뤄지고 재개발 공사가 시작되었다. 지난해 동대문 야구장 철거에 이어 또 다시 찾아온 슬픔이다.




         1부. 인천 숭의 야구장은?

* 개장 : 1964년(1978, 1982, 1983, 1999년 개보수)
* 면적 : 대지(43,643 ㎡), 구장(17,829 ㎡)
* 좌석 : 12,000석
* 크기 : 좌우 91m, 중앙 110m
* 잔디 : 내야 - 흙,  외야 - 인조 잔디
* 기타 : 전광판, 조명탑
* 관리 : 인천광역시체육회(클릭)
 
 인천 숭의 야구장은 1964년 전국 체육 대회를 위해 지어지면서 그 역사를 시작한다. 이후 전국 대회 출전권을 따내기 위한 '인천고'와 '동산고'의 치열한 맞수 대결 장소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본격적으로 인천 야구의 중심지로 떠오른다. 이 시기에 시설 보수 공사를 통해 야구장 환경이 대폭 개선되었는데, 여기에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보조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것도 한 이유였다.
 
 이렇게 영원히 야구 경기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이 곳도 1999년 시즌이 끝나고 최대 위기를 맞이한다. 연고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로 입성하기 위해 인천을 떠나기로 했기 때문. 하지만 새로 창단한 SK 와이번스가 인천을 연고로 하면서, 야구장의 역할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수명은 오래 가지 못했다. 2001년 시즌이 끝나고 SK 와이번스가 홈 구장을 문학 야구장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최신식 시설을 갖춘 문학 야구장을 놔두고 굳이 열악한 환경의 숭의 야구장을 고집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2년 6월 9일 정규 시즌 고별전을 통해 프로야구 정식 경기와 작별을 했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옛 주인인 현대 유니콘스.

 이렇게 되자 숭의 야구장의 철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노후화된 시설과 함께 낙후된 주변 환경을 감안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2004년 3월 14일 시범 경기를 통해 당시 떠나는 숭의 야구장를 아쉬워 하는 마지막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2004년부터 매해 신문의 단골 기사로 곧 철거를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나왔지만, 숭의 야구장은 반대로 더욱 건재함을 과시했다. 지역 아마팀들의 경기와 전국 대회(미추홀기)는 물론이고, 사회인과 연예인 야구가 꾸준히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3월에는 지난해 동대문 야구장 철거 여파로 황금사자기 고교야구 경기 상당수가 이 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그리고 앞선 고별전을 통해 작별한 줄 알았던 프로야구와의 인연도, 지난 2006년부터 SK 와이번스가 2군 홈구장으로 사용해오고 있었다.

 이렇게 된 것은 당장 숭의 야구장을 철거하고 난 뒤, 대체 할 만한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 그래서 당초 계획보다 그 수명이 길어졌다. 안타까운것은 그렇게 시간을 벌어준 동안 마땅한 대체 야구장 마련 없이 숭의 야구장이 철거된다는 것. 다행히 새로운 야구장 착공이 시작된 것은 기쁜 소식이지만, 지난 8월말에서야 공사가 시작된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 야구장이 완공되기까지 이 곳을 앞마당으로 사용했던 선수들이 떠돌아 다녀야 할 것을 생각하면, 떠나는 숭의 야구장의 발걸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다. 


         2부. 인천 숭의 야구장은 어디?

 인천광역시 중구 도원동 6번지

 행정구역상으로 참 묘한 지점에 야구장이 위치해 있다. 그것은 중구와 남구의 경계가 지나는 곳에 들어서 있기 때문. 이로 인해 겉으로는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야구장과 종합 운동장이 전자는 중구 도원동, 후자는 남구 숭의동에 속해 있다.(그런데 한 기사를 보면 도원동에서 숭의동으로 행정구역이 변경 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클릭)

 바로 이 때문에 이 곳 야구장의 이름이 여러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문학 야구장이 생기고 난 이후, 인천 야구장이라는 이름을 쓰기 애매해진 상황에서 행정 구역에 맞게 '도원 야구장'이 맞다는 측과, 숭의 운동장과 같은 시설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숭의 야구장'으로 해야한다는 측의 의견이 그것.(하지만 여기에서는 최근에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숭의 야구장으로 한다.)
 
 이렇게 주소상으로는 복잡한 비밀이 있지만, 찾아가기는 정말 쉬운 야구장이다. 우리 나라에 존재하는 야구장 가운데 '가장 찾아가기 쉬운 야구장'을 꼽는다면, 주저없이 이 곳이라고 말 할 자신이 있을 만큼 코 앞에 야구장이 있다.

 그 비밀은 지하철에 있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는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도원역'에 내리면 끝이다. 물론 다른 야구장 중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곳이 있지만, 숭의 야구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곳은 주변을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다. 도원역을 빠져나오면 바로 앞에 보이는 것이 야구장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호등을 건너 곧장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길어봤자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끝.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


         3부. 인천 숭의 야구장 구경하기?

  ▶ 야구장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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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구장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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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엔 보기드문 귀여운(?) 전광판




         4부. 인천 숭의 야구장에서 만들어진 주요 기록들


* 1983년 9월 26일 -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 이전 경기 완투 이후 이틀만에 선발 등판하여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5-0 완봉승 기록. 이는 프로 역사상 전무후무한 시즌 30번째 승리. 참고로 장명부는 시즌 30승 가운데 12승을 인천에서 기록

* 1984년 6월 27일 - 올스타전 3차전 개최(서군 4 : 2 동군, 최종 2승 1패로 동군 우세. MVP는 롯데 자이언츠 김용희)

* 1985년 4월 16일 - 삼미 슈퍼스타즈, OB 베어스에게 (8회초) 2사후 최다 실점(10점) 및 1이닝 최다 2루타 허용
* 1985년 4월 27일 - 장명부(삼미 슈퍼스타즈), 1경기 최다 실점(12실점, 6이닝 36타자 16안타 44구)
* 1985년 4월 30일 - 최계훈(삼미 슈퍼스타즈), 완봉 역투로 팀의 18연패를 끊음. 팀은 다음날 청보 핀토스로 매각
* 1985년 8월 25일 ~ 1987년 6월 18일 - 삼성 라이온즈, 청보 핀토스를 상대로 인천에서 특정 구장 연승 기록(14연승)
* 1985년 - 장명부(삼미→청보 핀토스), 시즌 25패 가운데 14패를 인천에서 기록

* 1986년 4월 27일 - 장명부(청보 핀토스), 1경기 최다 피안타(16개, 36타자 12실점)
* 1986년 7월 15일 - 청보 핀토스 최계훈과 조병천, 프로 최초로 합작해서 매회 탈삼진 기록(최계훈 3개, 조병천 11개)
* 1986년 7월 27일 - 청보 핀토스와 해태 타이거즈. 한국 프로야구 최초 15이닝 0-0 무승부 경기. 더욱이 양 팀 선발투수 모두 15이닝 완투 기록. 김신부(청보 핀토스)는 15이닝 54타자 8피안타 10탈삼진, 차동철(해태 타이거즈)은 15이닝 51타자 10피안타 6탈삼진(이는 2008년 9월 3일 두산 베어스와 한화 이글스의 잠실 경기에서 '연장 18회 1-0'이 나오기까지 유일 무이한 기록이었음.)

* 1987년 4월 23일 ~ 1987년 5월 30일 - 청보 핀토스, 홈 경기 14연패
* 1987년 8월 25일 - 임호균(청보 핀토스), 해태 타이거즈 상대로 경기 최소 투구(73개) 완봉승(27타자 2피안타 2사사구, 5-0 승)
* 1987년 8월 31일 - 정구선(롯데 자이언츠), 프로 통산 3호 사이클링 히트 기록

* 1988년 5월 5일 - 김동기(태평양 돌핀스), 1이닝 최다 몸에 맞는 공(2개, 삼성 라이온즈)
* 1988년 5월 28일 - 태평양 돌핀스,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10연속 타자 안타 및 11 연속 타자 득점(7회초, 총 15안타 11득점)
 
* 1989년 10월 8일 - 태평양 돌핀스, 인천 연고 팀으로는 최초로 포스트 시즌(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후 1차전에서  박정현의 완봉투와 연장 14회말 나온 김동기(이상 태평양 돌핀스)의 끝내기 3점홈런으로 승리

* 1990년 5월 14일 - 프로야구 사상 두번째 끝내기 폭투 경기(투수 송진우:빙그레 이글스 - 타자 김경문:태평양 돌핀스)
* 1990년 9월 3일, 19일 - 최창호(태평양 돌핀스), 각각 선발타자 전원 탈삼진 기록 (LG 트윈스, 빙그레 이글스)

* 1992년 8월 19일 - 장원진(OB 베어스), 최초의 양쪽 타석 안타 및 2루타 기록

* 1993년 6월 20일 - 김홍집(태평양 돌핀스), LG 트윈스 상대로 13이닝 동안 탈삼진 16개 기록

* 1994년 10월 22일 - 태평양 돌핀스, 인천 연고 팀 사상 첫 한국 시리즈 경기. 최종 결과는 LG 트윈스에게 0승 4패로 패

* 1996년 10월 20일 - 정명원(현대 유니콘스), 한국 시리즈 4차전에서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로 포스트 시즌 유일무이한 노히트 노런 기록(9이닝 3사사구)

* 1997년 9월 20일 - 송진우(한화 이글스)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통산 100승 달성. 이로부터 9년 뒤인 2006년, 송진우는 대망의 200승을 기록. 현재 한국 프로야구 최다승(209승) 투수

* 1998년 5월 18일 - 이대진(해태 타이거즈), 소위 '쿨바에서 쿨바까지'로 불리는 10 연속 타자 탈삼진 기록. 또한 매회 탈삼진(통산 11호), 선발 타자 전원 탈삼진(통산 12호) 1경기 최다 탈삼진 역대 공동 3위의 위업도 함께 달성
* 1998년 10월 30일 - 현대 유니콘스, 인천 연고 팀 사상 첫 한국 시리즈 우승(LG 트윈스 상대로 4승 2패)

* 2000년 10월 11일 - 현대 유니콘스 정규시즌 사상 첫 90승 돌파. 131경기만의 기록(90승 2무 39패 0.698)이었으며, 최종적으로는 1승을 추가해 91승 2무 40패(0.695)로 시즌을 마감. 현재까지도 정규 시즌 최다승 기록

* 2001년 9월 22일 - 에르난데스(SK  와이번스), 현대 유니콘스와의 경기에서 외국인 최초(통산 9호) '200이닝-200탈삼진' 달성

* 2002년 6월 9일 - SK 와이번스, 정규 시즌 고별전 개최. 상대는 현대 유니콘스

* 2004년 3월 14일 - SK 와이번스, 시범경기를 통해 1군 최종 고별전 개최

* 2008년 9월 2일 - SK 와이번스, 기아 타이거즈 상대로 2군 최종전 (9-5 승)
* 2008년 9월 5일 - 마지막 경기. 제6회 남구청장기 초·중고 야구대회를 끝으로 공식 임무 마감.
* 2008년 10월 ??일 - 철거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다준 '인천/도원/숭의 야구장'

안녕~ 잘가...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