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열릴지 모른 채 무기한 연기되었던 기아 타이거즈와 한화 이글스의 2007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가 지난 19일 무등 야구장에서 펼쳐졌다.
이미 포스트시즌이 한창 진행 중임에도 느닷없는 정규 시즌 경기가 열리게 된 이유는 당초 경기 예정일이었던 지난 7일 광주에 너무 많은 비가 내려 운동장 사정으로 경기 도중 취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예비일이었던 다음날, 경기가 가능했지만 문제는 한화 이글스가 당장 이틀 후에 경기를 치러야 하는 포스트 시즌 진출 팀이었다는 사실.
이로 인해 마지막 경기는 한화 이글스가 포스트 시즌을 최종적으로 마무리 짓고 난 뒤에 하기로 무기한 연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한 한화 이글스가 지난 17일 두산 베어스에게 경기를 내주고 포스트 시즌을 마무리하면서, 마침내 정규 시즌 최종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 우천으로 인한 운동장 사정으로 경기 도중 취소되었던, 지난 7일 무등 야구장 모습.
◆ 평일 낮 경기와 352명 최소 관중
그러나 18일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 홈페이지에 발표된 경기 날짜와 시간은 많은 팬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19일 오후 2시 개최” 팬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표였다. 상식적으로 평일 낮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학교나 직장 등에서 한참 활동을 하고 있을 시간대임에도, 경기 관계자들은 이를 무시한 것이다. 그리고 우려대로 이날 무등 야구장에는 352명이 입장하면서, 올 시즌 최소 관중 경기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낮에 경기를 하는 것은 최근 들어 부쩍 쌀쌀해진 날씨와 경기 감각이 떨어진 선수들을 감안해 부상 방지 차원으로 볼 수 있다 해도, 평일을 선택했다는 점은 도무지 어떠한 연결 고리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주말부터 한국 시리즈가 예정되어 있었다면 큰 행사를 위한 양보 차원으로 볼 수 있었겠지만, 한국시리즈는 월요일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팬들을 생각했다면 다음날이었던 토요일 낮 경기가 훨씬 탁월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각 방송사들이 TV 중계를 외면할 정도로 순위나 타이틀과는 관계없었음에도, 팬들에게는 시즌 마지막 경기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팬들의 바람과는 달리 경기는 평일 낮에 열렸고, 352명 최소 입장 관중 경기라는 불명예를 쓰고 말았다.
◎ 금요일이었던 지난 19일 오후에 열린 기아와 한화의 시즌 최종전 경기 모습.
◆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고
7일 경기가 취소 된 후 한화 김인식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운영의 묘를 살려서 양 팀 합의하에 생략을 했으면 좋겠다.”라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KBO는 모든 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리고 다음날 경기를 할 수 있었지만, 무기한 연기를 통해 일정을 뒤로 미뤘다. 이는 준플레이오프를 앞둔 팀을 위한 배려일수도 있었겠지만, 경기다운 경기를 치르기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평일 낮 경기 개최 발표는 이러한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352명의 관중이 이를 증명해주었고,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최종전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서둘러 1경기를 채워서 계획된 504경기를 모두 마무리 짓는 데만 목적이 있었다면, 차라리 취소 다음날 개최가 훨씬 현명한 방법이었다. 아니면 김인식 감독의 말처럼 생략도 고려해 볼만했다.
그랬다면 기아 타이거즈 선수단은 올 시즌을 마무리하고 내년을 위한 준비를 좀 더 일찍 시작했을 것이다. 실제로 선수단은 13일부터 남해 마무리 훈련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무기하게 연기된 경기로 인해 일주일이나 늦은 21일부터 마무리 훈련을 시작하는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결국, 이러한 모든 것들을 감안하고 연기한 경기였다면, 더욱 의미 있는 경기가 될 수 있도록 납득할 수 있는 일정에 치러야 하는 게 당연했다.
◆ 퇴근 본능?
인터넷 상에서 야구팬들끼리 사용하는 표현 중에 ‘퇴근 본능’이라는 말이 있다. 남이야 어찌되건 말건 자신의 관점에서 편한 쪽으로 행동하는 것을 꼬집는 표현으로, 지금까지는 특히 심판 판정 문제가 불거졌을 때 많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번 평일 낮 경기 개최는 이러한 ‘퇴근 본능’에 의해서 나온 결정으로 보인다.
알려진 대로 야구 경기를 위해서는 알게 모르게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치러진다. 눈에 보이는 심판이나 기록원들뿐만 아니라 그 외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구장 안팎의 직원들 그리고 범위를 더 넓히면 언론인들까지도 여기에 포함이 된다. 그런데 순위도 기록도 관계없는 경기를 위해서 주말에 그것도 지방인 광주로 출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금요일에 서둘러 경기를 치르고, 주말에 편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인지상정 일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시리즈도 월요일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주말에 편안한 재충전을 갖고, 큰 경기를 대비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스케줄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결국, 평일 낮 경기 선택은 이러한 편의 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이기적인 선택이었고, 거기에 팬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최악의 결정이었다.
◎ 정상적인 경기 시간대였다면, 더 많은 관중들이 찾아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올 시즌 KBO의 최대 목표 중 하나는 400만 관중 돌파였다. 그리고 지난 9월 26일 이 목표를 무난히 달성했다. 만약에 이번 시즌 최종전을 앞둔 상황에서 400만 관중에 불과 2~3천명 정도 남겨둔 상태였다면, KBO는 과연 이 경기를 평일 낮에 개최하겠다는 결정을 내렸을까? 과연 누구를 위한 평일 낮 2시 경기였는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