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5. 15:34
2007년 1월 4일 스포홀릭 기사


 2006 프로야구 최고 타자는 이대호(롯데)였다. 그렇다면 대학야구 최고 타자는 누구였을까? 여러 선수가 거론되지만 거의 모든 타격 부문에서 고른 활약을 보인 모창민(21, 성균관대 예비 4학년, 3루수)이 가장 눈에 띈다.

 모창민은 아직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낯선 이름이지만, 그는 이미 대학 무대 강타자다. 2006년 장타율, OPS, 누타수 1위와 홈런 2위, 타점 4위에 오르는 등 거의 모든 타격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추계리그에서는 MVP와 수훈상, 홈런왕을 휩쓸며 소속팀을 3년 만에 전국대회 우승으로 이끌었다. 추경식(롯데), 김태완(한화)이 졸업하며 허약해진 팀내 중심타선을 이끌며 거둔 수확이었다. 7월에는 야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대표에 선발되어 한미 대학야구대회에 참가했다.

 이런 활약으로 그는 지난해 아마 야구를 총결산하는 ‘2006 야구인의 밤’행사(12월 21일)에서 대학부문 ‘우수 타자상’을 수상했다(참고로 ‘우수 투수상’은 동향에 나이와 이름도 같은 연세대 임창민이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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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팀의 외면이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성장이 있기까지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광주일고 졸업을 앞둔 2003년 찾아온 시련이 그것이다. ‘04 프로야구 신인 지명에서 그를 찾은 구단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특히 고향 팀의 지명을 받지 못한 것은 더더욱 큰 충격이었다.

 이때 미국 메이저리그 모 구단의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하고, 4년 후 재도전을 위해 대학무대로 발길을 돌려, 2004년 성균관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1학년 때부터 꾸준히 주전으로 기용되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특히 인스트럭터로 선수들을 지도했던 김성근 감독(현 SK 와이번스 감독)과의 만남은 타격의 눈을 뜨게 했고,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 2007년 목표는 ‘10(홈런)-10(도루)’

 그는 “4개의 누를 모두 돌아 동료들과 하이파이브 할 때가 가장 기분 좋다”고 주저없이 말한다. 그만큼 그는 홈런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해 팀 우승 다음으로, 전년도보다 늘어난 홈런 숫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지난해 참가한 4개 대회 가운데 2개 대회에서 홈런왕에 올랐다. 여기에 올해는 10개의 홈런을 달성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렇다고 그가 홈런만 노리는 선수는 아니다. 그의 최종적인 타격의 완성은 모든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는 호리호리한 체형과 11초 후반의 100m 기록을 보일 정도로 빠른 발을 가졌다. 그리고 이러한 장점을 십분 발휘하겠다는 각오다. 지난해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40(홈런)-40(도루)-40(2루타)’을 달성한 알폰소 소리아노(시카고 컵스)가 그의 타격 모델이다. 실제로 모창민의 타격 자세를 보면 소리아노가 연상된다. 재미있게도 까맣게 탄 피부 때문인지, 얼굴 생김새도 닮아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그가 올해 목표로 삼고 있는 기록은 ‘10-10’이다. 홈런 10개와 도루 10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의 알폰소 소리아노’임을 증명해줄 것인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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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있어도 할 일이 없어 훈련한다
 
 2007년에도 대학 최고 타자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는 벌써부터 훈련을 시작했다. 연말을 맞아 2주간 고향에 내려와 쉬게 되었지만, 친구인 이성호(고려대 포수)와 함께 모교인 광주일고를 찾아 후배들과 훈련을 시작한 것이다. 남부지방에 폭설이 내리던 날에도, 전국이 영하로 꽁꽁 얼던 날에도 그는 훈련에 임했다. 집에서 휴식을 통해 재충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집에 있어도 할 일이 없다”며 겸손한 태도로 훈련의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저녁에는 집 근처 헬스클럽에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빼놓지 않는다.

 그가 이렇게 훈련에 열심히 나서는 이유 중 하나는 야구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을 찬송가로 설정해 놓을 만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그는 평상시 담배와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 생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여자 친구 한명 있을 법 하지만, 야구로 성공하기 이전까지는 야구가 나의 애인이라고 못을 박았다.

◆ 오키나와는 약속의 땅

 그렇다고 그에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로에서 활동 중인 또래들에 비해 대학 선수들의 기록이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인 턱없이 부족한 경험 문제가 너무나도 크다. 또한 아직은 평범한 수비 능력 또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겨울 훈련을 통해 이를 만회할 생각이다. 성균관대는 작년에 이어 일본 오키나와로 한 달간 전지훈련을 떠나는데, 이곳을 약속의 땅으로 삼고 있다. 이곳에서 국내 프로팀과 일본 대학팀과의 다양한 실전 경험을 쌓을 예정이며, 수비 능력 향상을 위한 훈련에 집중할 계획이다. 성균관대에는 과거 쌍방울에서 3루수로 활약한 석수철 코치가 있어, 수비 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제격이다.

◆ 웃음을 되찾기 위해 오늘도 뛴다

 작년에 10번을 달았던 그는 올해부터 16번을 달고 경기장에 나설 예정이다. 주변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등번호를 버리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만류했지만, 그는 기어이 번호를 바꿨다. 자신에게는 해당 없는 한낱 징크스 일뿐이며, 작년 성적이 좋았지만 거기서 만족하기에는 이르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올해 이뤄야할 목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팀 우승이 최우선 목표이며, 개인적으로는 ‘10-10’도 달성해야 한다. 그리고 작년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한미대학선수권 대표에 다시 선발되어 부진을 만회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4년전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고향 팀으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먼저 불러져 웃음을 되찾는 게 최종 목표다. 이 목표를 모두 이루기 위해 그는 오늘도 운동장을 뛰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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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짜
2007. 10. 5. 15:30


 아래는 모창민(성균관대 예비 4학년, 3루수) 선수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는 수원과 광주에서 이뤄졌고, 아래는 그 내용을 모은것이다.


▶ 쉬는 기간은 어떻게 되나
: 12월 25일부터 1월 7일까지다.

▶ 오랜만의 휴식이라 집에서 쉴 만도 한데, 운동장에 나온 이유는
: 집에 있어도 할 일이 없다. 운동장에 나가 훈련 하는게 더 좋다.(그는 모교인 광주일고에서 고려대 포수이자 친구인 이성호와 함께 후배들과 같이 개인 훈련 중이었다.)

▶ 집에 온 아들을 보고 부모님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
: 오랜만에 집에 왔더니 부모님이 매우 좋아하시더라. 더군다나 지난 7월 한미대학야구를 마치고 잠깐 쉬는 기간이 있었는데, 그 때 이후 처음으로 집(광주)에 왔으니... 더군다나 집에는 두 분 밖에 안 계신다. 형도 취업 준비를 위해 서울에 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좋아하신 것 같다.

▶ 휴대폰 통화 연결음이 특이하던데
: 찬송가다.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다. 가끔 이것 때문에 주변에서 놀림감이 되곤 한다.

▶ 좋아하는 음식은
: 가리는 음식은 없다. 고기가 들어간 음식이라면 더더욱 좋다. 지금은 학생이기 때문에 비싼 음식은 꿈도 못 꾼다. 다행인 것은 학교 주변(성대 수원캠퍼스) 음식 값이 싼 편인데 그중에서도 싼 집을 골라 다닌다.(웃음)

▶ 별명이 혹시 있나
: 많다. 하지만 좋은건 하나도 없다. 모지리, 모칠래, 모친다 등등 너무 많다. 성이 특이해서 수도 없이 나온다.(웃음) 그래서 저런 놀림 안 듣기위해 더 잘하려고 한다.

▶ 야구 이외에 잘하는 운동은 뭐가 있나
: 없는 것 같다. 축구나 농구 모두 평범하기 때문이다. 야구만 잘하는 것 같다.

▶ 좋아하는 선수는 누구인가
 : 국내에서는 정성훈(현대 유니콘스)을 좋아하고, 해외는 알폰소 소리아노(시카고 컵스)를 좋아한다. 고교 선배이기도 한 정성훈은 고등학교 시절, 그가 시즌이 끝나고 학교를 찾아와 같이 훈련을 하면서 좋아하기 시작했다. 우연치 않게 올해부터 다시 달게 되는 등번호(16번)가 정성훈 선배의 번호와 같아서 기분이 좋다.
 알폰소 소리아노 같은 경우는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닮았다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게 되면서 좋아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중독이 된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타격 폼도 비슷하고, 그 선수만큼 야구를 잘하는게 꿈이 되었다.

▶ 이번에 등번호를 바꾼 계기가 있나
: 16번은 야구를 처음 시작했던 초등학교 4학년 때 등번호다. 그 당시는 그냥 일괄적으로 부여된 번호라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까 애착이 가더라. 마침 16번을 달고 있던 선배가 졸업을 앞둬 내가 그 번호를 다시 달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해 좋은 성적을 냈던 등번호(10번)를 버리는 건 아니다”며 주변에서 만류를 했다. 하지만 원래 징크스나 미신 같은 건 믿지 않기 때문에 개의치 않는다. 그리고 지난해 성적도 좋았지만, 앞으로 더욱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 유소년 시절 이야기

▶ 야구를 접하게 된 계기는
: 어릴적 살던 집이 무등 야구장과 채 10분 거리도 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보러 다녔다.

▶ 어떤 선수의 야구를 보면서 자랐고, 그 당시 가장 좋아하던 야구 선수는 누구 였는가
: 이종범 선수였다. 그를 보며 자랐고, 자연스럽게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이종범 선수를 보기위해 야구장에 몰려든 관중이 엄청났다. 그 당시 야구 인기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 그렇다면 야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
: 초등학교 4학년(1995년)때다. 그 일은 지금 생각해봐도 신기하다. 우선 육상이 시작이었다. 당시에도 달리기를 잘해서 전국소년체전에 광주 대표로 참가했다(80m부문 3위). 이를 눈여겨본 화정초등학교 박태영 감독(서재응의 은사이기도 하다)님께서 나의 왼팔에 전화번호를 직접 적어 나중에 연락을 하라고 하셨다. 여기서부터가 재미있다. 나는 그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후 세수를 하기 바로직전 희미하게 남겨진 그 번호를 발견했고, 바로 감독님께 연락을 해서 야구를 시작했다. 만약 그 번호가 지워졌다면 지금쯤 평범한 대학생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 집안의 반대는 없었나
: 있었다. 공부하기를 원했던 아버지의 반대로 야구를 처음 시작하자마자 중단했다. 의외로 어머니는 찬성하셨지만 아버지의 뜻이 워낙 완강해 어머니도 반대로 돌아섰다. 그렇게 2달 정도 쉰 후에야 다시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어머니는 물론이고, 아버지가 더욱 열성적 후원자가 되셨다.


♠ 고교 시절 이야기

▶ 프로 구단으로부터 ‘04 신인 선수 지명(2003년)을 받지 못했는데 당시 심정은
: 무척 힘들었다. 나도 나지만 가족들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힘들었다. 특히 아버지께서 많이 힘들어하셨다. 그 이후 미국 프로야구 모 구단에서 영입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 고향팀의 지명을 받지 못한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그것 때문에 더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 그 당시 프로 지명을 받았거나, 해외 진출에 응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프로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대학 진학을 한 게 오히려 잘된 것 같다. 어차피 지명이 되었더라도 당시 분위기로 봐서 후순위 지명이 되었을 텐데, 프로에 들어와서도 기회 잡기는 힘들었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해외 진출은 아예 생각도 안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직은 해외 진출을 생각할 정도의 실력이 아니다.

▶ 고교 시절 자신의 라이벌은 누구였나
: 광주 동성고 김주형(현 기아)이었다.

▶ 김주형은 학교는 달랐지만 동기다. 지금의 그에 대해 평가해 달라
: 현재는 잘 모르겠다. 무대가 달라 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교시절에는 내가 봐도 정말 대단한 선수였다. 고교 3학년 때 내가 5개의 홈런을 쳐냈는데, 김주형은 10개의 홈런을 쳐냈다.

▶ 김주형과의 친분 정도는
: 고교 시절 많은 대회를 통해 얼굴은 익혀둔 정도다. 하지만 학교도 달랐고, 대학과 프로로 무대가 갈리면서 서로 친분을 쌓을 기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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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시절 이야기 1. 성균관대

▶ 2005년에 비해, 2006년은 타격 전 부문에 걸쳐 뛰어난 기록을 남겼다. 비결은
: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첫 대회였던 춘계리그에서 좋은 출발을 보여, 심적 부담을 덜어낸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이후 마지막 대회까지 그 흐름이 이어졌다.

▶ 추계리그 우승은 대학 입학 후 첫 우승이고, 팀도 3년만의 우승이었는데 당시 기분은
: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고였다. 대학 입학 이후 첫 우승이라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더군다나 팀은 지난해 우승 한 번 없이 무려 3번이나 준우승에 머물렀다.

▶ MVP․수훈상․홈런왕까지 3관왕을 차지하며 팀 우승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는데
: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선수단 전체가 우승을 위해 열심히 뛴 결과였다. 혼자만의 공헌은 말도 안 되고, 절대 아니다.

▶ 팀내에서는 어떤 선수와 친한가
: 같은 학년의 김다원(우익수, 동성고졸), 이희근(포수, 중앙고졸, 주장)과 친하다. 특히 김다원은 주말 교회친구다.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지금은 잘 따라나선다.

▶ 올 시즌 개인 기록 가운데, 가장 뿌듯한 기록과 아쉬운 기록은 무엇인가
: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홈런이다. 지난해에 비해 홈런 개수와 순위 모두 성장했다. 하지만 1위를 차지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홈런 순위는 마지막 대회였던 전국체전에서 3개의 홈런을 쳐내며, 모창민을 2개 차이로 따돌린 단국대 3학년 나지완이 1위를 차지했다. 모창민의 소속팀은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 대학야구에서 친 홈런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홈런이 있나
: 모든 홈런이 나에게는 값지다. 그중에서 대학에 들어와 두 번째 쳤던 홈런이 기억에 남는다. 1학년 때 친 홈런인데 상대가 단국대 4학년 오승환(현 삼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대단한 선수를 상대로 홈런을 쳤다는 생각이 든다. 당시 타구를 날리고 홈런이라는 느낌이 왔으나 1학년이었기 때문에 1루를 돌고 나서야 홈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100m 기록은 어떻게 되나
: 11초 후반대다. 팀 내에서 두 번째로 빠르다.

▶ 의외로 발이 빠른데, 도루에도 자신 있나
: 올해는 많이 시도하지 못했는데, 도루에 적극적이다. 감독님도 누상에 출루했을 때는 맡기는 편이다.

▶ 2006년 상대해 본 투수 가운데 인상에 남았던 투수는
: 오준형(기아)과 정민혁(한화)이다. 오준형 선배는 제구력이 좋고, 정민혁 선배는 변화구가 인상적이었다.

▶ 그렇다면 올해 특별히 경계하고 있는 투수가 있나
: 고려대학교 김준이 꼽힌다. 공도 묵직하고, 볼 끝이 좋다. 좋은 공을 가진 투수다.

▶ 스스로 현재의 수비 실력을 평가한다면
: 아직 많이 부족하다. 돋보이기보다는 평범하다. 그래서 이번 겨울 훈련 기간 동안 연습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반쪽짜리 선수가 되기는 싫다.

▶ 겨울 훈련은 어떻게 진행되나
: 이번 휴식 기간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그리고 1월말부터 한 달 동안 일본 오키나와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작년에도 갔던 곳이다. 국내 프로팀 및 일본 대학팀과 많은 연습 경기가 예정되어 있다. 경기 경험도 쌓고 수비 능력 향상과 배트 스피드를 끌어올리는데 주안점을 둘 생각이다.

▶ 지난 ‘야구인의 밤’ 행사에서 같이 상을 받게 된 연세대 투수 임창민은 이름도 같고 고향도 같은 동성고 출신이다. 서로 맞대결 한 적이 있는가
: 고등학교 때 같은 지역의 상대학교 선수였기 때문에 많이 상대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대학 무대에 와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상대한 적이 없다.

▶ 대학에 와서 배운 점이나 가장 큰 소득은
: 현재 이연수 감독님과 코치 선생님들 그리고 대학 강팀으로 올라서면서 배출된 좋은 선배들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지도 받았던 김성근 감독(현 SK 와이번스 감독)님과의 만남은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인스트럭터로 오셔서 타자들을 지도하셨던 감독님을 통해 타자로서 눈을 뜨게 되었다. 미리 선수 개개인 파악을 하고 난 뒤 이어지는 조언은 머릿속에 쉽게 들어왔다. 그리고 항상 메모하는 습관을 기르라는 충고 역시 잊지 않고 있다. 지금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김성근 감독님의 지도가 큰 힘이 되었다.


♠ 대학 시절 이야기 2. 한미대학야구 대표

▶ 7월 한미 대학야구 대회는 몇 번째 대표 선발인가
: 야구를 시작하고 난 뒤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뛰었다. 가족을 비롯한 주변분들이 좋아하셨다. 스스로도 기분이 좋았다.

▶ 성적은 어땠는가
: 성적을 꺼내기 힘들 정도로 창피하다. 3경기 내내 클린업 트리오에 배치되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시차 적응에 실패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 대회에 참가하고 난 뒤 배운점과 달라진점은
: 역시 아직 부족함이 많음을 느꼈다. 그리고 책임감이 커졌다. 자칫 태극마크를 달고 나태해질 수도 있으나, 오히려 국가대표 출신이라는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하려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 대회 기간 중 에피소드는 없었나
: 나중에 들은 이야기다. 경기를 앞두고 연습 타격에서 담장을 훌쩍 넘기는 타구가 많이 나오자, 이를 지켜보던 미국 대표팀 감독이 “한국팀은 용병을 데리고 왔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도 검게 탄 피부를 보고 그런 것 같다.(웃음)

▶ 미국 대학야구 투수들의 느낌은
: 미국이 이번에는 전년도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제법 공을 들인 느낌이었다. 그래서 선수들도 우수한 선수들 위주로 선발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투수들의 공이 굉장히 빨랐다. 한국 투수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였다. 95마일을 쉽게 찍어댔다.


♠ 기타 이야기와 마무리

▶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경기는
: 앞에서도 말했지만 당연히 우승을 차지했던 2006 추계리그다. 2005년 무려 3번이나 준우승에 그쳤는데, 우승을 차지했기 때문에 감격이 컸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대학에 들어와 첫 우승이었기 때문에 그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야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 입학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초등학교때는 즐기는 야구를 했는데,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2003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할 때에도 힘들었다.

▶ 야구 선수가 안 되었다면 현재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 평범한 대학생이거나, 입대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 야구 선수 생활을 하기 이전에 품었던 꿈은
: 어릴적에는 여러 가지 꿈을 많이 꾸는데 나도 그랬다. 경찰이나 공무원 그리고 평범한 회사원 같은 꿈을 가졌던 것 같다.

▶ 향후 해외 진출 계획은
: 해외 진출을 생각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더 많다. 한국 야구 무대에서 뛰는 것 이외의 다른 무대는 생각해 본적 없다.

▶ 야구 선수 생활을 마치고 난 뒤 꿈은
: 벌써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이르지만, 야구 지도자가 되어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프로야구 감독도 하고 싶다.

▶ 어떤 유형의 선수로 성장하고 싶나
: 우선은 홈런을 많이 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야구를 하면서 홈런 칠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4개의 누를 모두 밟고 홈으로 들어와서 동료들과 하는 하이파이브 할 때가 가장 최고의 순간이다. 그리고 홈런을 치면 누를 돌고 있는 동안 모두의 주목을 받지 않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홈런이 전부는 아니다. 홈런뿐만 아니라 타격 모든 부문에서 잘하는 호타준족형 선수가 되고 싶다. 그래서 올해 목표가 10(홈런)-10(도루)이다.

▶ 올해 목표는
: 당연히 팀 우승이 먼저다.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10-10’ 달성이 개인적인 목표다. 또한 지난해 처음 선발된 대표에 올해 다시 선발되고 싶다. 특히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한미대학야구대표에 다시 선발되어 설욕을 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향팀의 지명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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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짜
2007. 10. 5. 15:27


★ 2006년 대학 야구 개인 성적 - 타자 부문

 아래 기록은 조지승(www.cyworld.com/unicorn16, 조이버)님이 작성한 기록입니다. 저는 작성자로부터 이 기록을 사용 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더 기록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신 조지승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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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