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5. 14:06
2006년 5월 1일 스포홀릭 보류 기사


 SK 와이번스와 두산 베어스 경기가 열린 4월 30일, 인천 문학 야구장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세계적인 선수’, ‘천재 골프 소녀’와 같은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위성미(미국명 미셸위) 선수의 시구와 시타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예정된 행사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며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위성미 선수측과 SK 와이번스 구단측의 미숙한 행동으로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강행된 행사

 SK 와이번스의 공식 발표대로라면, 그녀가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시간은 오후 1시 10분이었다. 그래서 30분가량 시구와 타격 연습을 통해 관중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인 후 경기 시작 시간인 2시에 정식 시구와 시타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2시가 가까워 오자 그때서야 운동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뒤늦게 예정된 행사가 진행되었다. 자연스럽게 경기 시작 시간은 뒤로 밀려지기 시작했고, 오후 2시 9분부터 경기가 시작될 수 있었다.

 행사 강행으로 인해, 정작 이날의 본 무대인 야구 경기를 보기위해 현장에서 뜨거운 햇빛, 그리고 황사 바람과 싸우며 경기 시작을 손꼽으며 기다린 2만 여명의 관중들과 다른 프로그램 대신 야구 시청을 선택한 시청자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 비록 이날 경기가 지상파에서 중계를 하지 않았지만, 정규 방송 시간으로 인해 중계 방송이 중단되는 상황을 경험한 시청자들 입장에서 늦춰진 경기 시간을 곱게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지각은 같은 운동 선수입장에서 바라봐도 올바르지 못했다. 운동 선수들은 상당히 민감한 존재이다. 일반인들에는 사소해 보이는 자연적, 인위적 환경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골프 선수들에게 있어 샷이나 퍼팅을 하기 전, 갤러리들의 사소한 소음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위성미 선수 본인이 너무나도 잘 알 것이다.

 이날 야구선수들에게 그녀의 지각은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어떤 종목을 통틀어 자신이 출전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종목은 없다.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자신의 신체 리듬과 컨디션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지각을 해버린 그녀의 행동은 종목은 다르지만, 같은 운동 선수들에게 너무나도 큰 피해를 준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이날 행사는 약식으로 진행되거나, 후일을 기약하는 한이 있더라도 취소가 되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SK 구단의 속모를 사정으로 행사는 강행될 수 밖에 없었다. 그녀의 이번 고국 방문은 빡빡한 LPGA 일정을 뒤로하고, 국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 대회 스폰서는 SK의 통신회사였다. 어쩔 수 없이 SK 와이번스 구단은 위성미 측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던 이희아 씨 시구 행사

 이렇게 강행된 행사는 현대 유니콘스와 기아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린 4월 16일 수원 구장의 모습과 너무나도 대비가 된다. 이 날 경기를 앞두고 현대 구단은 이숭용 선수를 좋아한다는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씨의 시구 행사 예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시구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경기는 예정대로 시작이 되었다. 행사 내용에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1회말이 끝나고 그녀가 마운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관중들에게 인사만 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행사 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지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사로 대신하고 운동장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무리수를 두었다면 시구 행사는 강행 되었겠지만, 자신으로 인해 받게 될 많은 사람들의 피해를 생각해서 아쉽게도 인사로 대신 했던 것이다. 위성미 선수측과 SK 와이번스 구단측은 이날 이 모습을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하인스 워드 선수의 빛나는 행동
 
 지난 4월 3일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슈퍼볼 최우수 선수에 빛나는 하인스 워드 선수가 어머니와 함께 고국을 방문했었다. 그는 거친 풋볼 선수답지 않은, 좋은 매너와 언제 어디서나 항상 잃지 않는 미소로 모든 이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특히, 4월 8일 그의 모습이 빛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전날 숨쉴틈 없던 일정과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럽다며 돌연, 향후 일정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당장 예정되었던 모든 행사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하지만 그는 다른 행사 일정은 포기 하더라도, 이날 잠실에서 예정된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 행사만큼은 참석을 했다. 한두 사람과의 약속이 아닌, 2만 여명과의 약속이라, 운동선수로서 참석 취소에 대한 파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피로한 몸을 이끌고 예정대로 행사를 치른 것이다.

 더군다나 오후 4시부터 예정된 경기 시간을 지키기 위해 편법이긴 했지만, 이동을 위한 구급차 2대를 미리 준비 한 것은, 프로 선수로서 팬들과의 시간 약속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위성미 선수의 지각 사건과 대비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그녀의 이번 고국 방문은 여러 가지 면에서 뜻 깊은 방문이다. 왜냐하면 지난 2003년 이후 무려 2년 7개월 만에 다시 고국을 찾은 것이고, 한국에 있는 동안 PGA 최경주 선수와 골프를 통한 남녀 성대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소아암 환자 돕기에도 나서는 등 인상 깊은 한국 방문으로 채워져 있다. 4월 30일 프로 야구 경기도 그녀의 예정된 행사 효과로 인해 개막전 이후 최다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다. 하지만, 시구 행사 지각으로 그 빛이 바랬다.

 올해 10월이면 만 17살이 되는 아직은 어린 소녀라는 점과 올해부터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한 ‘초보생’임을 감안하면 그녀의 소속사측과 SK 와이번스 구단의 원활한 행사 진행이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그녀도 프로다. 그리고 그에 걸맞는 행동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더욱 좋은 모습이 기대가 되고, 실제로 그렇게 나와야 할 것이다. 그녀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해 보자.
 

Posted by 공짜
2007. 10. 5. 14:04
4월 29일 스포홀릭 기사


 28일 광주 무등경기장 야구장에서는 기아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가 시즌 첫 맞대결을 펼쳤다. 지난 시즌 3승 15패의 치욕적인 상대 전적이 말해주듯 기아 타이거즈의 선수들과 팬들은 앙갚음을 하기 위해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를 기다려왔다. 그리고 첫 경기를 승리하길 너무나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9회말 박한이 선수의 기가 막힌 빨랫줄 같은 송구가 더블 아웃으로 연결되며, 동점에 실패 0-1로 패하고 말았다. 순간, 기아 선수들을 비롯한 홈팀 관중들은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왜 기아 타이거즈 선수와 팬들은 승리를 원했고, 한 시즌 126경기 중에서 단지 1경기만을 졌을 뿐인데, 왜 선수들과 관중들은 허탈해 했을까? 그 원인은, 바로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역전패

 시즌 개막이후 3승 3패로 5할 승률을 유지하고 있던 기아 타이거즈는 4월 12일 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맞이한다. 초반 0-4로 뒤진 기아는 6회말과 7회말 각각 5점과 1점을 추가해 단숨에 6-4 역전에 성공했다. 남은 두 이닝을 잘 막아낸다면 승리가 유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가 8회초 김한수 선수의 1점 홈런으로 1점차로 쫓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기아는 앞서고 있었고, 마운드에는 마무리 신용운 선수가 8회초부터 올라와 있었다.

 운명의 9회초. 2사 1-2루 상황이 되었다. 또 다시 타석에는 김한수 선수가 들어섰고, 그는 1S에서 신용운 선수의 2구를 좌중간 2타점 2루타로 연결시켰다. 6-7 역전. 벤치를 비롯해 홈팀 관중까지 일순간 조용해졌다. 사기가 저하된 기아 타선은 9회말 공격에서 상대 마무리 권오준 선수에게 삼진 3개를 당하며, 상대의 기분 좋은 역전승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이날 경기의 잘못된 시작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기아 타이거즈를 따라다녔다. 남아있던 나머지 주중경기도 무기력하게 모두 패하며, 첫 만남을 3연패로 마감했다. 이날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이전 경기를 포함, 팀은 8연패에 빠졌다.

 귀신에 홀린 듯 대구에서 연이은 역전패

 보름 뒤 양팀은 대구에서 만났지만, 기아 타이거즈의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신용운 선수의 눈물 사건(?)까지 발생하고 만다.

 4월 29일 대구에서 주말 3연전 첫 경기가 있었다. 경기는 삼성이 도망가면, 기아가 쫓아가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3-6으로 뒤지던 8회초 기아 타이거즈가 저력을 발휘하며, 6-6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분위기를 반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연장으로 접어든 승부는 삼성 편이었다. 10회말 1사 만루에서 박석민 선수의 빗맞은 타구가 끝내기 중전 안타가 되면서 경기는 종료되었다. 이 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진 투수는 신용운 선수였다.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담담했다. 1년 126경기를 하면서 1패라는 다부진 마음을 가진 것 같았다.

 그리고 4월 30일 같은 장소에서 양팀이 다시 만났다. 기아는 비록 선취점을 내주긴 했지만, 상대 선발 임창용 선수의 부진을 틈타 3회초 대거 4점을 획득하면서 4-1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그러나 삼성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3, 4회말 1, 2점을 따내며 단숨에 4-4 동점을 만들었다. 치열한 투수전이 전개되었고 전날에 이어 또다시 연장으로 승부가 넘어갔다. 그리고 10회초 기아가 먼저 1점을 따내면서 승리는 기아로 미소 짓는 듯 했다. 10회말 2사 2루에서 양준혁 선수의 2루수 땅볼이 김종국 선수에게 굴러 갈 때만해도, 드디어 기아 타이거즈가 승리하는 듯 했다. 하지만, 승리의 신은 기아 편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공을 잡은 김종국 선수의 송구가 어이없게 1루수를 빗나간 것이다. 그 사이 2루 주자는 홈을 밟아 동점이 되었고, 후속 심정수 선수의 빗맛은 타구마저 우익수 심재학 선수가 넘어지며 잡으려 했지만 놓치면서, 경기는 또 다시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행운의 승리를 거둔 삼성 선수들은 경기장을 뛰어다녔고, 승리를 지키지 못한 신용운 선수는 그대로 마운드에 주저앉아 삼성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던 그 한가운데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사기가 땅에 떨어진 기아 타이거즈는 남은 주말 경기마저 패하며, 팀간 전적 6연패로 빠져들었다.

 반등의 기회에서 또 다시 삼성을 만나다.

 2005 시즌 일정을 보면 눈에 띄는 기간이 있었다. 6월초 있었던 ‘죽음의 9연전’. 이 9연전이 끝나고 난 뒤에는 시즌 판도가 완전히 바뀌어있었다. 상위권에 있던 롯데 자이언츠가 연패에 빠지며 순위가 곤두박질 쳤고, 한화 이글스가 전승을 거두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 순위는 시즌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런 중요한 기간 기아 타이거즈는 승부수를 걸었다. 9연전을 앞두고 팀은 마침내 탈꼴찌에 성공한 상황이었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도 영입했다. 그러나 연전의 첫 상대가 삼성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3경기를 모두 내줬다. 3경기 모두 선취점을 획득한 상태에서 역전패를 당했다. 사기는 땅에 떨어져 한 이닝에 10점을 허용하기도 했다. 결국, 이 3연패가 부담이 되어, 기아 타이거즈는 9연전 이후 다시 꼴찌로 떨어졌다.

 마침내 첫 승을 거두다. 그러나....
 
 한 달만인 7월 5일 다시 삼성을 만났다. 그리고 첫 승리에 대한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전패의 위기에서 7월 1일부터 출장이 가능했던 최향남 선수의 구원 성공으로 7-5 승리를 거두며 9연패를 끊고 가까스로 첫 승을 거뒀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김진우 선수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완봉패를 당했다. 한편, 삼성과 연전을 펼치고 있던 이 기간 기아 타이거즈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팀내 에이스 역할을 해주었던 외국인 선수 리오스 선수를 방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그 소문은 사실이 되었고, 리오스 선수는 김상훈 선수와 마운드에서의 포옹을 보여준 7월 7일 삼성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정들었던 타이거즈 유니폼을 벗게된다.

 삼성은 정규 시즌 1등, 기아는 창단 첫 꼴찌

 시즌이 막바지에 다다른 9월 21일. 이때까지 기아는 삼성과 모두 16경기를 펼쳐 3승 13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여전히 팀은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은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탈꼴찌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또 다시 삼성 앞에서 무너졌다. 삼성과 남아있었던 9월 21일과 22일 홈에서 두 경기를 모두 패한 것이다. 특히 9월 22일 양팀간의 마지막 경기는 양팀의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경기였다. 승리를 거둔 삼성 라이온즈는 신임 선동열 감독에게 부임 첫해부터 정규 시즌 1위를 안겨주었다. 반면, 홈구장에서 상대에게 1위 축하 무대를 내준 기아 타이거즈는 이날 경기를 패함으로써, 잔여 경기에 상관없이 꼴찌가 확정되었다. 우승을 9번 차지할 만큼 앞만 보고 달려왔던 팀 역사상 첫 꼴찌의 수모였다.

 이렇게 기아 타이거즈는 2005 시즌 삼성과의 18경기에서 3승 15패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특히, 15패 가운데 선취점을 뽑거나 앞서있는 상황에서 역전패가 무려 8패나 됐다. 이런 성적을 받게 된 출발점은 승리를 눈앞에 두었던 시즌 첫 경기 역전패로부터 출발했다. 첫 단추를 잘못 끼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28일 경기에서 기아 선수들과 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승리를 간절히 바랬던것이다. 작년에는 한번 두번 패하다가 결국은 3승 15패를 당했다. 그 전철을 올해는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것이고, 첫 경기부터 패배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승리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다를 것이다’라는 강한 의지가 1차전에서는 아쉽게도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 2005 시즌 기아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맞대결 성적(승패는 기아 기준)

<1차전> 4월 12일(화) 삼성  7 : 6 기아 광주  패 (1점차 역전패, 1점차)
<2차전> 4월 13일(수) 삼성 14 : 4 기아 광주  패 (경기 종반 대량실점)
<3차전> 4월 14일(목) 삼성  4 : 3 기아 광주  패 (1점차 패배)

<4차전> 4월 29일(금) 기아  6 : 7 삼성 대구  패 (연장전 1점차 패배)
<5차전> 4월 30일(토) 기아  5 : 6 삼성 대구  패 (연장전 1점차 역전패)
<6차전> 5월  1일(일) 기아  1 : 5 삼성 대구  패 (무기력한 패배)

<7차전> 6월  4일(토) 삼성  8 : 5 기아 광주  패 (역전패)
<8차전> 6월  5일(일) 삼성  9 : 3 기아 광주  패 (역전패)
<9차전> 6월  6일(월) 삼성 12 : 4 기아 광주  패 (역전패, 한 이닝 10실점)

<10차전>7월  5일(화) 기아  7 : 5 삼성 대구  승 (최향남 세이브, 팀간 첫 승)
<11차전>7월  6일(수) 기아  0 : 1 삼성 대구  패 (완봉패, 김진우 완투패)
<12차전>7월  7일(목) 기아  1 : 7 삼성 대구  패 (역전패, 리오스 고별전)

<13차전>7월 22일(금) 기아  1 : 3 삼성 대구  패 (무기력한 패배)
<14차전>7월 23일(토) 기아  5 : 7 삼성 대구  패 (역전패, 한 이닝 7실점)
<15차전>7월 24일(일) 기아  5 : 2 삼성 대구  승 (역전승, 그레이싱어 승리)

<16차전>8월 20일(토) 삼성  1 : 5 기아 광주  승 (역전승, 그레이싱어 승리)
<17차전>9월 21일(수) 삼성  7 : 2 기아 광주  패 (무기력한 패배)
<18차전>9월 22일(목) 삼성  5 : 3 기아 광주  패 (역전패)
 

Posted by 공짜
2007. 10. 5. 14:01
2006년 4월 28일 스포홀릭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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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 김원형. 이제는 아무도 그를 왕자라 부르지 않지만, 유독 타이거즈 팬들은 다른 팀 팬들보다 먼저, ‘왕자’라는 이미지를 일찍 지워버렸다. 타이거즈와 경기를 하는 날이면 항상 괴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27일 기아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의 시즌 3차전 경기에 SK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2006 시즌 개막이후 첫 번째 승부였다.

 그리고 타이거즈 팬들은 또 다시 이 괴물의 투구에 하늘만 바라봤다. 7이닝 무실점. 4안타만 치고, 삼진은 7개나 당했다. 기아 타선은 그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3루는 밟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득점 기회를 만들지도 못했다. 2006 시즌 첫 만남부터 또 다시 패배였다.

 만나기만 하면 무기력해지는 그래서 '천적‘이라 불리우는 타이거즈와 김원형 선수의 운명적인 만남의 역사를 기록으로 살펴보자.

■ 첫 만남 - 타이거즈가 그의 기를 살려주다.

 1991년 전주고를 졸업하고 팀 뿐만 아니라 야구 관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입단한 김원형 선수. 아직은 미완의 대기지만 미래 에이스로 성장해 달라는 의미에서 ‘어린 왕자’라는 별명이 주어진다. 하지만 프로 첫 경기부터 승리(1991년 개막전 對 빙그레 11-0 승)를 너무 쉽게 얻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어린 그에게 있어 프로 세계는 가옥한 곳이었다. 무려 9연패(12번 선발)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그가 눈물을 흘리며 당시 김인식 감독에게 2군행을 자청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오히려 그를 꾸짖고 계속해서 선발 투수로 기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패이후 4연승을 달린 그에게 투수로서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준 경기를 타이거즈가 선사해준다. 1991년 8월 14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펼쳐진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경기에서 2안타 10탈삼진으로 1-0(김기태 선수의 1점 홈런) 완봉승을 거둔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만 19세 1개월 10일이었다. 이는 당시 최연소 완투승 및 완봉승의 대기록(1994년 주형광 선수에 의해 기록은 깨짐)이었다.

 이런 기록적인 의미를 제쳐두고 이 경기가 더욱 값진 것은 당시 상대 투수가 ‘국보급 투수’ 선동열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미 2년 연속 투수 3관왕을 달성하고, 3년연속 3관왕이 유력하던 최고 투수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점에서, 그는 투수로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순간이었다. 이런 오래전 인연으로 타이거즈와 김원형 선수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이후 그는 1993년 4월 30일 전주구장에서 펼쳐진 OB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최연소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20세 9개월 25일이었다.

■ 투수로서 제 2의 탄생 뒤에도 타이거즈가 있었다.

 입단 때 기대했던 기대대로 쌍방울 레이더스의 에이스이자 유일한 희망으로 성장한 김원형 선수는 1990년대 후반 전성기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1998년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인 12승과 13세이브를 올린것이다. 이런 그에게 1999년 시즌 시련이 다가온다.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팀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도 힘들게 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1999년 7월 10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펼쳐진 한화 이글스의 경기 도중 장종훈(은퇴) 선수의 강한 직선타구에 얼굴을 그대로 맞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코뼈가 부러지고, 왼쪽 광대뼈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어쩔 수 없이 시즌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상 이후가 더 큰 문제였다. 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자신감은 없어지고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1999~2000년에 걸쳐 무려 12연패의 늪에 빠진 것이다. 프로 최다 연패 기록인 16연패(롯데 김종석, 1987~1991년 기록)에 불과 4경기까지 근접하는 대기록(?) 이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의 자존심을 살려준 것은 타이거즈였다. 2000년 시즌 그는 2승 13패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 2승을 모두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천적’관계는 굳건했다. 타이거즈 보약에 힘입어 김원형 선수는 1999, 2000년 시즌의 지긋지긋한 최악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

■ 해태에서 기아로의 새로운 탄생 무대에도 그가 있었다.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힘든 시즌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던 해태 타이거즈. 팀이 해체가 되느냐 연고지를 이전하느냐를 놓고 여러 소문이 돌다 마침내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에 팀이 인수가 되었다. 그리고 2001년 8월 2일(원래는 8월 1일 이었지만 우천으로 연기)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인천 도원야구장에서 SK 와이번스와 첫 경기를 가졌다. 새 팀에 대한 기대와 함께, 과거 타이거즈의 영광을 함께한 이종범, 이강철 선수도 컴백한 상태라 그야말로 모든 관심이 이 곳에 집중이 되었다.

 그런데 상대팀 마운드에는 얄궃게도 김원형 선수가 떡 하니 서있었다. 그가 상대팀 선발 투수로 출장한 것이다. 혹시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첫 타자 이종범 선수가 국내 복귀 첫 타석에서 좌전 안타를 쳐내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이후 기아 타이거즈 타자들은 그에게 8이닝 동안 9안타를 쳐냈지만 1실점만을 기록하며 또 다시 승리를 헌납했다.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펼친 첫 경기였기 때문에 승리가 간절했지만, 또 다시 ‘김원형’이라는 큰 벽에 가로막힌 것이다.

■ 어느 때보다 가능했던 V.10의 꿈도 그로 인해 물거품이 되다.

 2003년 기아 타이거즈는 막강했다. 시즌 전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기아의 우승을 점쳤다. 2002년에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그때는 우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성격이 짙었다. 그리고 2003년 기대대로 페넌트레이스 2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더군다나 우승 후보 삼성 라이온즈를 물리치고,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SK 와이번스가 돌풍을 일으키며 맞상대로 결정되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기아의 한국 시리즈 진출을 낙관했다.

 하지만,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3전 3패. SK 와이번스 한국 시리즈 진출. 그리고 그 중심에 투수진을 이끈 김원형 선수가 있었다. 그는 1차전 경기에서 선발 채병용 선수에 이어 6회부터 등판 마지막까지 던지며, 4이닝동안 1실점만 허용하며 4-1 승리를 책임졌다. 그리고 휴식을 가진 후 등판한 3차전에서도 조진호, 제춘모 선수에 이어 4회에 등판해 2.2이닝 동안 1실점을 하긴 했으나,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승리 투수가 되는 영광까지 얻었다. 비록 플레이오프 MVP는 인상적인 타격을 보인 이진영 선수에게 돌아갔으나, 김원형 선수도 그에 못지 않은 뛰어난 활약이었다.

 김원형 선수의 벽에 가로막혀 우승에 대한 꿈이 좌절된 기아 타이거즈는 이후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시 김성한 감독은 2004 시즌 계약이 연장(2년)되었지만, 이 때 플레이오프 패배에 대한 책임은 지울 수 없었다. 결국, 2004 시즌 부진까지 겹치며 중도 해임이라는 불명예가 따라왔다.

■ 타이거즈, 영광의 파트너가 되어주다.

 매년 꼬박꼬박 두 자릿수 승수를 따낸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떤 한해 동안 많은 승수를 거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린 나이에 일찍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줄곧 마운드를 지켜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댓가가 그에게 찾아왔다. 프로 통산 100승. 프로 야구 무대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투수들이 상당수임을 감안하면, 100승 고지에 올랐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24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단 16명만이 이 고지에 오른 위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명단에 김원형 선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영광의 기록 달성 뒤에는 김원형 선수의 영원한 동반자(?) 타이거즈가 역시나 함께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전인 2005년 4월 28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펼쳐진 기아와 SK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한 김원형 선수는 8이닝 동안 7안타 4실점의 역투를 펼치며 팀의 8-4 승리를 이끌었다. 프로 데뷔 15년만에 통산 99승에서 1승을 추가, 100승 고지를 밟는 순간이었다. 2000년 현대 정민태 선수에 이은 16번째 기록이었다. 이런 영광의 순간까지 타이거즈가 함께 한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어떻게 설명이 불가능한 끈질긴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2006년 4월 27일에도 그는 광주 무등경기장 마운드에 서 있었다. 변함없는 역투. 그리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어느새 통산 115승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타이거즈는 1년 동안 그에게 5연승을 선사하며, 통산 30승을 그와 함께했다. 이들의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 2000년 이후 김원형 선수의 시즌 성적과 타이거즈 상대 성적 비교

 년도  _____시즌 종합 전적_____ ---- 타이거즈 상대 전적
2005년 전체 32경기 15승 8패(3.33) --- 7경기 4승1패(2.88)
2004년 전체 30경기 8승 6패(4.20) ---- 7경기 3승1패(2.92)
2003년 전체 30경기 7승 7패(3.74) ---- 5경기 2승 무패 1홀드(0.77)
2002년 전체 13경기 4승 5패(5.25) ---- 3경기 1승 1패(5.11)
2001년 전체 26경기 9승 9패(4.37) ---- 6경기 4승 2패(3.26)
2000년 전체 29경기 2승 13패(5.81) --- 4경기 2승 1패(3.37)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