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5. 14:01
2006년 4월 28일 스포홀릭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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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 김원형. 이제는 아무도 그를 왕자라 부르지 않지만, 유독 타이거즈 팬들은 다른 팀 팬들보다 먼저, ‘왕자’라는 이미지를 일찍 지워버렸다. 타이거즈와 경기를 하는 날이면 항상 괴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27일 기아 타이거즈와 SK 와이번스의 시즌 3차전 경기에 SK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2006 시즌 개막이후 첫 번째 승부였다.

 그리고 타이거즈 팬들은 또 다시 이 괴물의 투구에 하늘만 바라봤다. 7이닝 무실점. 4안타만 치고, 삼진은 7개나 당했다. 기아 타선은 그가 마운드에 있는 동안 3루는 밟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득점 기회를 만들지도 못했다. 2006 시즌 첫 만남부터 또 다시 패배였다.

 만나기만 하면 무기력해지는 그래서 '천적‘이라 불리우는 타이거즈와 김원형 선수의 운명적인 만남의 역사를 기록으로 살펴보자.

■ 첫 만남 - 타이거즈가 그의 기를 살려주다.

 1991년 전주고를 졸업하고 팀 뿐만 아니라 야구 관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입단한 김원형 선수. 아직은 미완의 대기지만 미래 에이스로 성장해 달라는 의미에서 ‘어린 왕자’라는 별명이 주어진다. 하지만 프로 첫 경기부터 승리(1991년 개막전 對 빙그레 11-0 승)를 너무 쉽게 얻었기 때문이었을까? 이후 어린 그에게 있어 프로 세계는 가옥한 곳이었다. 무려 9연패(12번 선발)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그가 눈물을 흘리며 당시 김인식 감독에게 2군행을 자청했다는 일화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은 오히려 그를 꾸짖고 계속해서 선발 투수로 기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연패이후 4연승을 달린 그에게 투수로서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준 경기를 타이거즈가 선사해준다. 1991년 8월 14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펼쳐진 해태 타이거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와의 경기에서 2안타 10탈삼진으로 1-0(김기태 선수의 1점 홈런) 완봉승을 거둔 것이다. 당시 그의 나이 만 19세 1개월 10일이었다. 이는 당시 최연소 완투승 및 완봉승의 대기록(1994년 주형광 선수에 의해 기록은 깨짐)이었다.

 이런 기록적인 의미를 제쳐두고 이 경기가 더욱 값진 것은 당시 상대 투수가 ‘국보급 투수’ 선동열 선수였기 때문이다. 이미 2년 연속 투수 3관왕을 달성하고, 3년연속 3관왕이 유력하던 최고 투수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뒀다는 점에서, 그는 투수로서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순간이었다. 이런 오래전 인연으로 타이거즈와 김원형 선수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이후 그는 1993년 4월 30일 전주구장에서 펼쳐진 OB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최연소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당시 그의 나이 20세 9개월 25일이었다.

■ 투수로서 제 2의 탄생 뒤에도 타이거즈가 있었다.

 입단 때 기대했던 기대대로 쌍방울 레이더스의 에이스이자 유일한 희망으로 성장한 김원형 선수는 1990년대 후반 전성기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1998년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인 12승과 13세이브를 올린것이다. 이런 그에게 1999년 시즌 시련이 다가온다.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팀이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도 힘들게 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다.

 1999년 7월 10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펼쳐진 한화 이글스의 경기 도중 장종훈(은퇴) 선수의 강한 직선타구에 얼굴을 그대로 맞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코뼈가 부러지고, 왼쪽 광대뼈가 함몰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어쩔 수 없이 시즌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부상 이후가 더 큰 문제였다. 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슬럼프에 빠진 것이다. 자신감은 없어지고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1999~2000년에 걸쳐 무려 12연패의 늪에 빠진 것이다. 프로 최다 연패 기록인 16연패(롯데 김종석, 1987~1991년 기록)에 불과 4경기까지 근접하는 대기록(?) 이었다.

 그러나 이때에도 그의 자존심을 살려준 것은 타이거즈였다. 2000년 시즌 그는 2승 13패를 기록하게 되는데, 이 2승을 모두 해태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기록한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천적’관계는 굳건했다. 타이거즈 보약에 힘입어 김원형 선수는 1999, 2000년 시즌의 지긋지긋한 최악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

■ 해태에서 기아로의 새로운 탄생 무대에도 그가 있었다.
 
 모기업의 부도로 인해 힘든 시즌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던 해태 타이거즈. 팀이 해체가 되느냐 연고지를 이전하느냐를 놓고 여러 소문이 돌다 마침내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에 팀이 인수가 되었다. 그리고 2001년 8월 2일(원래는 8월 1일 이었지만 우천으로 연기)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인천 도원야구장에서 SK 와이번스와 첫 경기를 가졌다. 새 팀에 대한 기대와 함께, 과거 타이거즈의 영광을 함께한 이종범, 이강철 선수도 컴백한 상태라 그야말로 모든 관심이 이 곳에 집중이 되었다.

 그런데 상대팀 마운드에는 얄궃게도 김원형 선수가 떡 하니 서있었다. 그가 상대팀 선발 투수로 출장한 것이다. 혹시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첫 타자 이종범 선수가 국내 복귀 첫 타석에서 좌전 안타를 쳐내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이후 기아 타이거즈 타자들은 그에게 8이닝 동안 9안타를 쳐냈지만 1실점만을 기록하며 또 다시 승리를 헌납했다.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펼친 첫 경기였기 때문에 승리가 간절했지만, 또 다시 ‘김원형’이라는 큰 벽에 가로막힌 것이다.

■ 어느 때보다 가능했던 V.10의 꿈도 그로 인해 물거품이 되다.

 2003년 기아 타이거즈는 막강했다. 시즌 전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기아의 우승을 점쳤다. 2002년에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그때는 우승에 대한 기대보다는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는 성격이 짙었다. 그리고 2003년 기대대로 페넌트레이스 2위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더군다나 우승 후보 삼성 라이온즈를 물리치고,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SK 와이번스가 돌풍을 일으키며 맞상대로 결정되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기아의 한국 시리즈 진출을 낙관했다.

 하지만, 전혀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3전 3패. SK 와이번스 한국 시리즈 진출. 그리고 그 중심에 투수진을 이끈 김원형 선수가 있었다. 그는 1차전 경기에서 선발 채병용 선수에 이어 6회부터 등판 마지막까지 던지며, 4이닝동안 1실점만 허용하며 4-1 승리를 책임졌다. 그리고 휴식을 가진 후 등판한 3차전에서도 조진호, 제춘모 선수에 이어 4회에 등판해 2.2이닝 동안 1실점을 하긴 했으나, 타선의 폭발에 힘입어 승리 투수가 되는 영광까지 얻었다. 비록 플레이오프 MVP는 인상적인 타격을 보인 이진영 선수에게 돌아갔으나, 김원형 선수도 그에 못지 않은 뛰어난 활약이었다.

 김원형 선수의 벽에 가로막혀 우승에 대한 꿈이 좌절된 기아 타이거즈는 이후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당시 김성한 감독은 2004 시즌 계약이 연장(2년)되었지만, 이 때 플레이오프 패배에 대한 책임은 지울 수 없었다. 결국, 2004 시즌 부진까지 겹치며 중도 해임이라는 불명예가 따라왔다.

■ 타이거즈, 영광의 파트너가 되어주다.

 매년 꼬박꼬박 두 자릿수 승수를 따낸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떤 한해 동안 많은 승수를 거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린 나이에 일찍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줄곧 마운드를 지켜왔을 뿐이다.
 그리고 그 댓가가 그에게 찾아왔다. 프로 통산 100승. 프로 야구 무대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투수들이 상당수임을 감안하면, 100승 고지에 올랐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임에 틀림없다. 24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단 16명만이 이 고지에 오른 위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그 명단에 김원형 선수가 포함되어 있다.

 이 영광의 기록 달성 뒤에는 김원형 선수의 영원한 동반자(?) 타이거즈가 역시나 함께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전인 2005년 4월 28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펼쳐진 기아와 SK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한 김원형 선수는 8이닝 동안 7안타 4실점의 역투를 펼치며 팀의 8-4 승리를 이끌었다. 프로 데뷔 15년만에 통산 99승에서 1승을 추가, 100승 고지를 밟는 순간이었다. 2000년 현대 정민태 선수에 이은 16번째 기록이었다. 이런 영광의 순간까지 타이거즈가 함께 한 것은 그야말로 아이러니다. 어떻게 설명이 불가능한 끈질긴 인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2006년 4월 27일에도 그는 광주 무등경기장 마운드에 서 있었다. 변함없는 역투. 그리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어느새 통산 115승을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타이거즈는 1년 동안 그에게 5연승을 선사하며, 통산 30승을 그와 함께했다. 이들의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 2000년 이후 김원형 선수의 시즌 성적과 타이거즈 상대 성적 비교

 년도  _____시즌 종합 전적_____ ---- 타이거즈 상대 전적
2005년 전체 32경기 15승 8패(3.33) --- 7경기 4승1패(2.88)
2004년 전체 30경기 8승 6패(4.20) ---- 7경기 3승1패(2.92)
2003년 전체 30경기 7승 7패(3.74) ---- 5경기 2승 무패 1홀드(0.77)
2002년 전체 13경기 4승 5패(5.25) ---- 3경기 1승 1패(5.11)
2001년 전체 26경기 9승 9패(4.37) ---- 6경기 4승 2패(3.26)
2000년 전체 29경기 2승 13패(5.81) --- 4경기 2승 1패(3.37)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