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5. 01:27

 

 ■ 박찬호

 1989년 LA 다저스와 입단 계약을 맺고 1990년 루키 리그에서 타자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던 펠릭스 로드리게스(이하 F-ROD)는 1993년 싱글A 소속일 때 투수로 전향을 한다. 그리고 다음해 그는 더블A 샌안토니오로 승격을 하게 되고, 여기에서 F-ROD와 박찬호의 인연은 시작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박찬호는 1994년 1월 LA 다저스와 6년간 계약금 120만 달러와 연봉 10만 9천달러의 계약을 맺고 메이저리그 사상 17번째로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을 했다. 하지만 2경기만에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한 채 마이너리그로 강등되었고 그 팀이 바로 F-ROD가 있던 더블 A 샌안토니오였다. 그리고 F-ROD와 박찬호는 그해 각각 26, 20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서며 미래의 메이저리거를 향해 팀 동료로서 선의의 경쟁을 시작하게 된다.

 이어 1995년 두 선수는 나란히 트리플 A 앨버커키로 동반 승격을 하게 되고, 얄궂게도 여기에서 둘의 운명은 갈라진다. 모두 팀의 선발투수로 나란히 시즌을 시작한 가운데 5월 중순경 F-ROD가 먼저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5월 13일 F-ROD는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꿈에도 그리던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게 되고 이후 영광스러운 메이저리그 첫 승까지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진가를 보여주기에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못했고, 더군다나 그가 꿈꿨던 선발 자리는 없었다. 이미 LA 다저스의 선발진은 에이스 라몬 마르티네즈(17승 7패), 토네이토 열풍의 노모 히데오(13승 6패), 이스마일 발데스(13승 11패), 톰 캔디오티, 페드로 아스타시오 등으로 굳건한 5선발 체제가 구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결국 그는 앨버커키로 다시 되돌아와야만 했다.

 F-ROD가 불규칙한 메이저리그 생활을 하고 있는 사이 박찬호는 여전히 트리플 A에서 꾸준히 선발 수업을 쌓고 있었고, 마침내 시즌 막판 엔트리가 확장되는 기간을 이용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게 된다. 그리고 2경기를 뛰게 되고, 그중 한경기는 LA 다저스의 시즌 마지막 경기 선발 투수 등판이었다. 이는 그의 메이저리그 첫 선발 등판임과 동시에 F-ROD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선발 등판이기도 했다.

 그리고 1996년 둘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F-ROD는 이번에도 트리플 A 앨버커키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된 반면, 박찬호는 LA 다저스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당당히 올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이스 라몬 마르티네즈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물러난 경기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메이저리그 첫 승을 기록한 박찬호는 이후 확실한 메이저리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반면, F-ROD는 이해 단 한 번도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한 채 성적은 더욱 나빠졌고, 결국 시즌이 끝나고 웨이버 공시가 된 후 신시내티 레즈로 유니폼을 갈아입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 최희섭

 펠릭스 로드리게스(이하 F-ROD)는 이제 팀 동료가 될 최희섭과도 묘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너무나 흥미롭다.

 둘의 인연은 투수와 타자라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줬다. 그리고 그 첫 만남은 지난 2003년 4월 30일(이하 한국시간) 당시 퍼시픽 벨 파크에서 있었다. 그 때 소속은 F-ROD가 샌프란시스코였고 최희섭은 시카고 컵스였다. 8회초 선두 타자로 에릭 캐로스를 대신해서 나온 최희섭은 마침 바뀐 투수 F-ROD를 상대했다. 그리고 결과는 F-ROD의 완승. 최희섭은 방망이도 돌려보지도 못하고 6구만에 서서 삼진을 당하고 말았다.

 F-ROD의 보직이 셋업맨이고, 최희섭도 플래툰 시스템으로 인해서 둘의 맞대결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이후 그들이 다시 만나기까지는 정말 정확하게 1년이 걸렸다.

 2004년 4월 30일. 이번에도 장소는 SBC 파크(퍼시픽 벨 파크에서 개명)였다. 9회초 1사후 주자 없는 상황에서 1년전과 달리 플로리다 유니폼을 입고 최희섭이 타석에 들어섰다. 바로 앞선 4번 마이크 로웰이 3-3상황에서 F-ROD를 상대로 1점 홈런을 터뜨린 영향 때문인지, 최희섭의 어깨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고 결국 이번에도 헛스윙 삼진 아웃. 하지만 최희섭은 선발 출장한 이날 경기에서 시즌 8호 2점 홈런을 쳐내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반면, 마이크 로웰에게 홈런을 허용한 F-ROD는 패전 투수의 멍에를 썼다.

 F-ROD의 영입이 발표된 후 최희섭이 밝힌 것처럼, 최희섭에게 F-ROD는 “엄청나게 빠른볼을 던지는, 무시무시한 투수”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을 2번의 삼진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처럼 둘 간의 대결에서는 최희섭이 완패를 당했지만, 당시 두 경기는 모두 최희섭의 소속 팀 승리로 끝이 났었다. 그리고 그 점수는 모두 4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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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은 이 뿐만이 아니다. 두 선수는 같은 감독의 지도를 받은 경험이 있다. 주인공은 ‘더스티 베이커’와 ‘잭 멕키언’이다. 먼저 최희섭은 2003년 시카고 컵스 시절 팀에 새로 부임한 ‘더스티 베이커’와 인연을 맺었지만 에릭 캐로스와의 지독한 플래툰 시스템으로 인해 많은 기회를 잡지 못하고 다음해 플로리다 말린스로 이적하고 만다. 그리고 새로운 팀에서 최희섭은 전년도 월드시리즈 우승에 빛나는 노장 ‘잭 멕키언’ 감독을 만나게 되고, 이전보다는 좀 더 많은 기회를 보장받으며 활기찬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불과 반 시즌만에 LA 다저스로 트레이드 되고 말았다.

 F-ROD는 1996년 시즌 후 LA 다저스에서 버림을 받고 난 뒤 신시내티에 입단하게 되는데 이때 만나게 되는 감독이 ‘잭 멕키언’이었다. 이때 F-ROD는 지금도 메이저리그 생활동안 유일한 선발 등판을 하게 되었고, LA 시절과는 달리 많은 기회를 얻으며 재기를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이후 애리조나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게 되는 그는 ‘더스티 베이커’를 만나게 되면서 전혀 새로운 투수로 태어나게 되었다. 최고 전성기를 그와 함께 보냈으며 월드 시리즈 무대도 밟게 되었다.


■ 구대성

 이외에도 현재 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구대성은 지금 기아 타이거즈 선수들보다도 먼저 F-ROD와 팀 동료가 될 뻔했다. 구대성이 일본을 거쳐 미국 진출에 도전했던 2005년 뉴욕 양키즈에 입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당시 F-ROD도 뉴욕 양키즈로 트레이드가 되어 먼저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구대성의 뉴욕 양키스 소식이 나올때마다 F-ROD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구대성은 당시 상황이 여의치 않아 뉴욕 메츠로 행선지를 바꾸며 인연은 이뤄지지 못했다.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