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 7. 17:41


 비가 오거나 당장 올 것 같이 흐렸던 5일, 전국 4개 구장에서는 그 동안 비로 연기된 잔여경기 일정이 시작되었다. 정규 시즌을 지나 벌어지는 일정 때문이었을까? 그 동안 좀처럼 보기 드문 사고와 기록이 수립된 하루였다.

◆ 잠실 : 두산 베어스 VS LG 트윈스, 사이클링히트 무산

 두산 베어스 2루수 고영민은 25년간 12번밖에 수립된 적이 없는 '싸이클링 히트'에 도전했으나, 홈런을 치지 못해 대기록 도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참고로 그의 프로 통산 홈런은 단 1개. 그것도 불과 5일전 기록한 것이라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반면 그의 팀 동료인 랜들과 박명환은 새로운 기록을 썼다. 이날 선발 투수로 나선 랜들은 이날 경기 승리로 13승을 올리며, 지난해 승수(12승)를 뛰어넘었다. 또한 삼진도 9개나 잡아, '개인 한 경기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도 세웠다. 줄곧 선발 투수로 뛰었던 박명환은 부상 복귀이후 불펜 투수로 뛰어오다, 올 시즌 처음으로 팀의 마무리 투수로 등판 무려 5년만의 '세이브'(2001년 7월 8일 잠실 한화전)를 기록했다.

◆ 대구 : 삼성 라이온즈 VS 롯데 자이언츠, '킬러'에 대한 복수와 어이없는 플레이.
 이날 라이온즈의 선발 투수는 1996년 프로 데뷔이후 자이언츠를 상대로 14승 2패(3.25)를 거두고 있던 ‘롯데 킬러’ 좌완 전병호였다. 그는 지난 5월 31일 경기에서 호투를 펼치고도 무려 3,558일만에 12연승에서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이후 다시 2연승을 이어가고 있던 국내 돋보적인 ‘자이언츠’킬러였다.
  하지만 경기는 전혀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1회초 6안타와 1볼넷으로 6실점. 2회초에도 이원석의 만루홈런 포함 5안타와 1볼넷으로 또 다시 6실점. 이와 함께 2이닝 연속 타자 일순이라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도 허용했다. 평균 자책점은 무려 54.00을 찍으며, 3점대에서 4점대로 급격한 상승을 이뤘다.

 반면, 자이언츠 타선은 각종 기록을 양산해냈다. 시즌 12번째 ‘선발 타자 전원 안타’는 물론이고, 프로야구 역대 2번째 ‘선발 타자 전원 2안타 이상’의 보기 드문 기록도 수립했다. 또한 23개의 안타를 기록하며 ‘올 시즌 한 경기 팀 최다안타’ 기록(종전 기아 타이거즈, 22개)을 갈아치웠고, 이는 자이언츠 ‘팀 역사상 한 경기 최다 안타’ 타이기록이었다. 그리고 이날 자이언츠가 기록한 17득점은 타이거즈, 라이온즈에 이어 ‘올 시즌 한 경기 팀 최다득점’ 타이기록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양 팀이 이날 기록한 35안타는 ‘올 시즌 한 경기 최다안타’기록이었다.(종전은 4월 14일 기아 타이거즈와 현대 유니콘스의 33안타)
 이날 자이언츠의 승리로 선발 이상목은 FA 계약을 앞두고 있던 2003년 15승 이후 3년만의 두 자릿수 승리 투수 대열에 복귀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러한 기록 잔치와 함께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의 수비에서 보여준 어이없는 플레이도 이날을 더욱 ‘이상한 하루’로 만들었다. 3회초 수비에서 1루수 조영훈은 유격수 박진만의 땅볼 송구를 놓쳐 위기를 자초했고, 중견수 박한이는 뜬공 처리이후 아웃 카운트를 착각하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려는 행동을 보였다. 이로 인해 2루에 있던 주자가 중견수 뜬공으로 홈에 들어오는 진기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기에 포수 김영복은 투수의 폭투된 공을 찾지못해 역시 2루주자가 홈으로 들어오게끔 만들었다. 이때 홈을 밟은 선수는 이대호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3회초에 나온 3점은 모두 비자책점으로 기록되었다.

◆ 문학 : SK 와이번스 VS 현대 유니콘스, 스프링클러의 습격.

 절대 나오지 말아야 할 경기외적 상황이 승부까지 바꿔놨다. 0-1로 뒤진 현대 유니콘스의 5회초 공격. 상황은 1사 주자 2루에서 나왔다. 신승현(와이번스)은 마운드에, 서한규(유니콘스)는 타석에 있었다. 볼 카운트는 4구째가 파울볼이 되며, 2S-2B이 되었다. 그런데 이 때 갑자기 경기가 중단되었다. 이유는 우측 담장 앞 땅속에 설치된 2개의 살수장치(스프링클러)가 작동이 되며, 물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경기는 약 5분간 중단되었고, 긴장감 있던 경기는 갑자기 맥이 풀렸다. 승부의 변수가 될 만한 상황이었다. 첫 미소는 신승현이 지었다. 서한규를 삼진으로 잡아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음 타자 송지만에게 홈런을 내주며 승부는 순식간에 1-2로 역전이 되고 말았다. 이는 결승홈런이자, 송지만의 '프로 통산 1,300안타'(역대 23번째)로 기록되었다. 결국 경기는 유니콘스의 차지가 되었고, 4강 진출을 위해 갈 길 바쁜 와이번스는 통한의 1패를 당하고 말았다.
 한편 이날 유니콘스 선발로 나온 신인 장원삼은 팀 승리로 올 시즌 세 번째(이글스 류현진, 유니콘스 전준호) '전 구단 상대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누렸다.


◆ 대전 : 한화 이글스 VS 기아 타이거즈, 비로 인해 양팀의 역할이 바뀌다. 유리창 박살.

 양 팀의 정규시즌 마지막 대전경기를 슬퍼하듯, 이곳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비가 해프닝의 주인공이었다.
 계속해서 내리는 굵은 비로 인해 평상시 같았으면 심각하게 경기 취소가 내려졌겠지만, 이날 양팀은 무슨일이 있어도 경기를 강행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초반 선취점을 뽑으며 앞서나간 타이거즈는 더더욱 그런 의지가 강했다. 그럼에도 4회초가 시작되기전 빗줄기는 강해졌고, 결국 심판진은 경기 중단을 선언했다. 이때 타이거즈 서정환 감독과 코치진은 곧바로 나와 심판진에게 경기 중단에 항의했지만, 거세진 빗줄기에 중단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 때, 지붕이 없는 일반석에 위치한 관중들을 배려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따로 구분된 지정석문을 개방하기도 했다.

 그리고 24분 뒤 경기는 재개되었다. 해프닝은 이때 발생했다. 비가 더욱 거세지기 전에 정식 경기로 인정받고 싶었던 타이거즈는 4회초 공격을 무려 1분 30초만에 속전속결로 마치고 만 것이다. 이 때 3아웃 잡기위해 양훈(이글스)이 던진 공 개수는 무려(?) 4개. 5회초에도 마찬가지로 공 9개만에 공수교대가 되었다. 특히 장성호와 이재주는 팀 플레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땅볼투구와 어이없는 바깥쪽 공에도 방망이를 돌렸다. 타이거즈 타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아웃을 하려는 모습이었고, 이글스 배터리는 출루를 시키려는 역할이 뒤바뀐 그야말로 웃지 못할 장면을 연출했다. 이렇게 비가 오는 가운데 경기는 타이거즈의 바람대로 5회말을 마치고, 정식 경기로 인정되었다.

 이 후 대전구장에서는 비로인해 큰일이 날 뻔 했다. 6회초 1사후 주자 없는 상황. 타석에는 이종범이 들어섰고, 2S-2B에서 양훈의 5구를 힘껏 쳐냈다. 하지만 공은 뒷그물 쪽으로 날아가며 파울. 그와 동시에 ‘와장창’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유는 경기 진행요원과 기록위원이 위치한 곳의 앞 유리창을 박살냈기 때문. 분명 그물망이 있었지만, 계속 내린 비로 인해 그물이 물을 잔뜩 먹어 탄력을 잃어버리고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유리창은 산산조각이 났고,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경기는 마무리 되었고, 타이거즈는 5할 승률 복귀와 함께 시즌 50승 고지에 올랐다. 이는 지난해 승수(49승 1무 76패)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왜 그토록 타이거즈가 승리에 집착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