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8. 23:13


(방문일 : 2005년 9월 28일)


 지난 8월, 우리 국민들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보여준 국가대표 선수들의 연이은 선전으로 모든 걱정과 근심을 잠시나마 잊은 즐거운 한 달을 보냈다. 그 때의 환희와 감동은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들 기억속에 남아있다.

 이렇게 4년마다 한 번씩 우리들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올림픽의 힘. 개인적으로 처음 기억에 남기 시작한 것은 정확히 20년 전 올림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올림픽은 다른 곳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던 대회. 앞선 ‘84 LA 올림픽도 기억에 남을 법한데 생중계로 본 기억이 없는 것은 의문이다.

 어쨌거나 1988년에 열린 제 24회 서울올림픽. 누군가가 생애 최고의 기억을 뽑아달라고 하면 주저 없이 선택할 만큼 그 때의 감동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지금의 10대들한테 2002 한일월드컵이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을듯이.

 그 대회가 지난 9월 17일, 어느덧 20주년이 되었다. 아무리 세월이 빠르다지만 아직도 14인치 금성사 TV 앞에 앉아 개막식을 시작으로 주요 순간을 생중계로 시청했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한데 벌써 20년이나 흐른 것이다.
                                       
                   ◎ '88 서울 올림픽 개회식 편집 영상. 1시간 분량.          (영상 출처 = 한국정책방송 - e영상 역사관)


 개인적으로는 올림픽을 보기 위해 학교를 마치면 집까지 열심히 뛰어왔던 기억, 그리고 집에서는 엄마와의 치열한 신경전도 잊혀 지지가 않는다. 또한 우리 집에 비디오가 있어서 ‘주요 장면을 녹화했으면 얼마나 좋을까’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이러한 소중한 추억이 담긴 서울올림픽. 역사적으로 봐도 이 대회는 큰 의미가 담긴 올림픽이었다. 한국은 이 올림픽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완성-물론 결과적으로는 약 10년 뒤 IMF로 인해 샴페인을 일찍 터뜨린 꼴이 되었지만-시켰고, 대외적으로는 더 이상 6.25의 아픔만을 가진 국가가 아님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올림픽 역사학적으로는 냉전으로 등을 돌렸던 미국과 소련을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 다시 한자리에 모여 사상 최대의 대회로 만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마란치 IOC 위원장은 폐회식에서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이었다”고 주저 없이 말했다. 개인적으로도 우리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이어서가 아니라, 진짜 기억에 남을 최고의 올림픽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절대 잊혀 지지 않을 1988년 그 때 그 올림픽.





● 그 날의 감동이 숨쉬고 있는 '잠실주경기장'
 
 예술적 능력이 떨어져 그 표현을 못하겠지만, 정말 아름다운 경기장이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각이나 원형이 아닌 곡선미가 들어간 디자인이 이를 증명해준다.

 故 동대문 운동장과 장충 체육관이 우리 나라 체육의 1세대라면 2세대는 바로 이 곳이다. 88 서울올림픽과 그 전에 열렸던 86 서울아시안게임이 모두 이곳에서 치러졌다. 그리고 1985년 허정무의 결승골로 숙적 일본을 꺾고 무려 32년만의 월드컵('86 멕시코) 진출 역사를 쓴 곳도 바로 이 곳 이다. 개인적으로 어릴적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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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구석의 '올림픽 전시관'

 주경기장 바깥 한쪽 구석에 자리한 올림픽 전시관. 가보지는 않았지만 송파구 올림픽 회관에 있는 '올림픽 기념관'이 규모면에서 형이라고 본다면, 이 곳은 아우뻘 되는 시설이다. 입장료도 없고, 나올때는 관리하는 직원이 친절히 방명록도 쓰고 가라고 권유한다. 비록 전시 내용물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서 조용히 그날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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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근과 잠실주경기장
 
  미술 시간에 익히 들어 알고 있겠지만 김수근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 건축가이다. 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건축물들 상당수는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작품 반열에 올라서 있다. 대표적으로 남산 자유센터(1963년), 세운상가(1968년), 장충동 타워호텔(1969년),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과 예술극장(1977년), 한계령 휴계소(1979년), 진주 박물관(1984년), 청주 박물관(1987년) 등이 있다.
 
 눈치가 빠르다면 잠실 주경기장 역시 그가 만들어낸 건축물이라는 느낌이 올 것이다. 김수근이 만든 건축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대표적인 시설이 바로 이 곳 잠실주경기장이다. 의미가 담긴 중요한 시설인 만큼 공사기간도 무려 6년(1978~1984년) 가까이 걸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수근은 서울 아시안게임을 불과 두 달여 앞둔 1986년 6월 14일 간암으로 숨을 거두면서, 그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건축물이 채 꽃을 피우기도 전에 이 세상과 작별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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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성기가 너무나 짧았던 '잠실주경기장'

 서울올림픽의 감동을 안고있는 역사적 장소이자, 8,90년대 한국 최고의 경기장이라는 프리미엄을 누렸던 잠실주경기장. 그랬던 만큼 3년 전 통로를 거쳐 운동장에 들어섰을때의 그 설레임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몇 분 뒤 그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좌석 곳곳이 노후화와 파손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그 나마 온전한 좌석 여기저기에는 비둘기 똥으로 보이는 오물이 묻어있었기 때문. 과연 이곳이 올림픽의 감동을 안고 있는 곳이 맞는지 의심부터 든 것은 당연했다. 더군다나 정면에는 당시 조용필 콘서트 준비로 인해 대형 무대(위 오른쪽 사진)가 설치되고 있어서, 더더욱 올림픽 현장의 느낌이 오지 않았다.

 그랬다. 이것이 잠실주경기장의 현재 모습이다. 이미 스포츠 시설의 목적은 상실된지 오래됐고, 그 부수적인 활동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작은 지난 2002 월드컵 때 전국 곳곳에 최신 종합운동장이 생기며, 이 곳이 더 이상 과거의 영광을 누릴 수 없게 되면서 부터다. 대표적으로 90년대까지만 해도 국가대표 축구팀의 A매치를 전담했지만, 지금은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그 역할이 넘어간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고 육상 경기가 활발히 열리는 것도 아니다. 이로인해 지금은 가수들의 콘서트 무대나 대형 종교 행사가 열리는 장소가 되고 말았다.

 잠실주경기장은 지난 1984년 완공됐으니, 올해로 24년이 되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한창 전성기를 누려야할 젊은 나이다. 하지만 전성기가 끝난것은 10년이 훌쩍 넘었고, 이제는 활용조차도 미미해져 버렸다. 이러다가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럴일은 없겠지만 후세대에서 개발논리에 밀려 동대문 운동장처럼 철거가 이뤄지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적절한 활용 방안 마련을 통해 하루 빨리 예전의 본 모습을 찾아 올림픽의 영광을 가진 역사적인 시설로 오랬동안 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Again 1988






Posted by 공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