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0. 5. 14:10
2006년 5월 5일 스포홀릭 기사


 2006 프로야구가 개막된 지 이제 한 달 정도 되었지만, 벌써부터 ‘위기의 남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선두주자로 마이크 서브넥(기아 타이거즈 3루수) 선수가 손꼽히고 있다. 언론에서 벌써 두 차례에 걸쳐서 그의 거취에 대한 조심스러운 기사를 내보냈다.
 1차는 초반 12타수 1안타로 부진을 보이자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서브넥 선수가 하위 타선으로 내려가며, 홈런 2개를 치며 살아나는 조짐이 보이자 소문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나 최근 다시 부진한 모습이 나타나자, 소문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실제로 최근 그의 타석에서의 모습은 이런 소문을 뒷받침하고 있다. 4월 25일 이후 5월 4일까지 결장한번 없이 중심 타선에 꼬박꼬박 들어섰음에도, 8경기 동안 타점이 없다가 9경기만에 희생플라이로 간신히 1타점을 기록했다. 그 기간동안 30타수 5안타에 장타는 2루타 1개가 고작이다. 볼넷은 1개 밖에 되지 않는데, 삼진은 딱 3개밖에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특히 5월 2일부터 4일까지 벌어진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세 경기 연속, 경기 중간에 다른 선수로 교체가 되었는데, 현재 팀 내에서 그의 위치가 어디인지 대변해 주는 장면이었다.

 타이거즈는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외국인 선수를 투수로 선발했다. 하지만 타 팀에 비해 심각한 거포 부족을 실감하고, 투수 선발 전통을 깨고 2002년 이후 무려 4년만에 야심차게 외국인 타자 서브넥 선수를 영입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결과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게 사실이다. 이로 인해 타이거즈 팀 관계자들과 팬들은 이번에도 역시라는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1998년 외국인 선수가 도입되고 난 뒤에 ‘타이론 우즈’나 ‘클리프 브룸바’와 같은 확실한 외국인 타자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지난 9년간 많은 한이 서려있는 타이거즈의 외국인 타자 영입 역사를 되짚어 보자.


 역대 타이거즈 외국인 선수 영입은?

 : 타이거즈는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1998년, 다른 구단에 비해 뒤늦게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올해까지 모두 22명의 외국인 선수가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투수가 9명이었고, 타자가 13명이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투수 영입은 완벽한 성공이었고, 타자 영입은 완전 실패였다. 그것은 재계약 비율을 봐도 알 수 있다. 투수들의 경우 무려 4명(리오스, 키퍼, 존슨, 그레이싱어)이나 재계약에 성공했었다. 특히, 리오스 선수의 경우 무려 4년간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타자는 지금까지 단 1명(타바레스, ‘00~’01)만 타이거즈 유니폼을 다시 입을 수 있었다. 이에 구단은 2002년 이후 4년간 타자 영입에 대한 관심을 접고, 투수 영입에 관심을 쏟았다가 올해 처음으로 타자를 선발했지만, 현재 상황도 그리 밝지 못한 게 현실이다.

 타이거즈 외국인 타자 선발이 실패했던 원인은?

   ▲ 초창기 - 기록과 자매 구단에만 의존한 원시적인 선발
 : 1998년과 1999년에는 외국인 선수 선발을 할 때, 모두 팀이 모여 선수를 보고 순위를 매겨 선발하는 트라이 아웃 제도를 시행했다. 하지만 그 제도는 폐지가 되고, 2000년부터 자유 계약 제도가 시행되면서 실패의 역사가 시작된다.

 다른 구단에 비해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외국인 선수를 관찰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해태 타이거즈는 다른 구단과 달리 현지에서 선수를 보고 선발하지 않고, 기록지에 의존한 주먹구구식 선수 선발을 하게 된다. 결국, 그해 무려 6명이라는 선수를 교체하는 계기가 되었다(참고로, 현재는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교체한도를 2명까지 정해놓고 있다). 그리고 이 6명이 모두 타자였다.

 또한 이렇게 기록에만 의존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자매 구단과의 관계도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는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와 협조 관계가 되어있었다. 선수 선발에 관한 노하우가 없었던 해태 타이거즈로서는 보스턴 레드삭스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말레브, 포조, 미첼, 타바레스와 같은 선수를 소개받게 된다. 모두 2000년의 일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면, 국내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칠 정도라면 이미 트리플 A 상위권 선수이거나 메이저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가 될 텐데, 이런 선수들을 보스턴이 내줄 리가 없다. 당연히 그들은 미국에서 선수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선수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차원에서 한국으로 보낸 것이다. 그리고 모두 실패의 기억만을 가지고 한국 땅을 떠났다.

   ▲ 목적과는 거리가 먼 선수 영입
 : 외국인 선수는 국내 프로야구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맥가이버’ 같은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코칭스태프와 팬들 모두 바라는 사항이다. 그래서 구단도 돈을 많이 주고 영입한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최소한 2,30개 이상의 홈런을 쳐주는 능력이 있어야 대접을 받는다. 홈런이 부족하면 3할 이상의 고타율에, ‘타점 기계’로서의 능력이라도 있어야 했다. 전자는 타이론 우즈(두산)나 펠릭스 호세(롯데)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클리프 브룸바(현대)나 제이 데이비스(한화)가 이런 조건의 선수였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구단이 먼저 매 시즌 종료 후 재계약 문제로 인해 노심초사 했던 선수들이다. 또한 모두 키도 크고 우람한, 다부진 체격을 가진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타이거즈 외국인 선수 영입 역사를 보면, 이상하게 거포 본능과는 거리가 먼 체형을 가진 선수들을 유난히도 많이 영입한 것을 볼 수 있다. 팀은 항상 해결해야 할 문제로 중심 타선을 보강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중심 타선에 배치가 될 거포를 영입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막상 영입한 선수는 누가 봐도 홈런 10개 치기에도 버거운 모습을 가진 선수들뿐이었다. 실제로 2000년 활동했던 6명을 통해 나온 홈런 수는 단 15개에 그쳤다.

 포조, 타바레스, 뉴선, 그리고 올해 영입한 서브넥 선수까지. 이들은 피부 색깔과 언어만 빼면 멀리서 봤을 때 국내 선수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선수들이었다. 이렇다 보니 그들을 영입하는데 돈을 낭비하지 말고,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는 유망주들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다.

   ▲ 버리지 못한 조급증
 : 어떤 종목을 막론하고 외국인 선수를 대할 때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진 외국인 선수라고 하지만 그들도 어차피 사람이다. 더군다나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하루아침에 적응을 하고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다고 하는 것은 무리에 가까운 요구다. 특히, 타자들의 경우 투수들과 달리 빠른 시간 성적을 보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능력이 드러나는 위치가 바로 타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었지만, 이를 지키지 못해 실패의 역사를 써왔다.
 더군다나 타이거즈는 우승을 많이 했던 명문 구단이라는 자부심이 강해서 성적에 대한 압박이 너무 심했다. 그래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바로 퇴출을 시키는 사례가 반복 된 것이 실패의 역사를 만들어 왔다.


 그렇다면 그동안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었던 외국인 타자들은 누가 있었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살펴보자.

 타이거즈 외국인 타자 누가 있었나?

● 숀 헤어(Shawn Hare, 내야수, 좌투좌타, 1998년)
→ 활동 : 미국 센트럴 미시건대 졸, 1991~1995 메이저(디트로이트-뉴욕M-텍사스)
→ 신상 : 1967년 3월 26일 生, 1998년 5월 6일 8만달러(계약금 2만달러, 연봉 6만달러)
→ 기록 : 1998년(해태) - 0.206 29경기 68타수 14안타 0홈런 3타점 4볼넷 25삼진 3병살

 1998년 국내 프로야구에도 외국인 선수제도가 도입이 된다. 첫해는 트라이 아웃(한자리에서 모든 선수를 상대로 상위 순번의 구단이 좋은 선수를 선발) 방식이었기 때문에 모든 구단이 선수를 지명한 후 계약을 했다.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는 ‘IMF’로 인한 모기업 사정으로 인해, 지명(1순위 : 숀 헤어, 2순위 : 채드 저비)만 하고 계약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즌이 시작되고, 팀은 꼴찌로 쳐지게 되어 외국인 선수에 대한 필요성이 느껴지자 뒤늦게 외국인 선수와 계약을 체결한다. 그 선수가 바로 타이거즈 최초의 외국인 ‘숀 헤어’ 선수다. 1998년 5월 6일 8만 달러(당시, 스콧 베이커와 함께 최저액)에 입단 계약 합의를 하고, 5일 후 팀에 합류한다.

 하지만 그는 광주 구장을 보며 ‘홈런 25개를 원하느냐, 3할 타율을 원하느냐’, ‘담장을 넘겨야 홈런이냐?, 장외로 넘겨야 홈런이냐?’는 한국 야구를 무시하는 도발적인 발언을 했지만, 정작 그가 한국 무대에서 기록한 홈런은 단 한 개도 없다(참고로, 메이저리그에서도 단 1개의 홈런도 기록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무릎 부상까지 겹치며 1, 2군을 전전한 끝에 고작 3타점만을 기록하고 한국 무대를 떠나야 했다.

● 트레이시 샌더스(1루수 겸 외야수, 우투좌타, 1999년)
→ 활동 : 미국 라임스톤대 졸, 마이너리그 출신
→ 신상 : 185cm/104kg, 1969년 07월 26일 生, 6만1500달러(계약금 1500달러, 연봉 6만달러)
→ 기록 : 1999년(해태) - 0.247 125경기 409타수 101안타 40홈런 94타점 105볼넷 133삼진 5병살

 타이거즈뿐만 아니라 역대 외국인 선수 가운데에서도 장타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선수가 바로 샌더스 선수다. 켄 크리피 주니어처럼 상체를 꼿꼿이 세운 자세에서 홈런포를 생산해 냈다. 그해 홈런 순위 4위에 오르고, 볼넷을 105개나 얻어낼 만큼 상대 투수에게는 무시무시한 타자였다. 하지만 그의 타격은 ‘모 아니면 도’의 올인 식 타격이었다. 홈런 아니면 삼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안타는 겨우 100개를 넘고, 무려 133개의 삼진을 당했다. 또한, 홈런에 비해 타점수가 적었고, 1999년은 극심한 ‘타고투저’ 양상이었다는 점이 그와의 재계약을 꺼리게 만들었다.

● 스토니 브릭스(외야수 RF, 우투우타, 1999년)
→ 활동 : 미국 델라웨어대 졸, 마이너리그 출신
→ 신상 : 188cm/98kg, 1971년 12월 26일 生, 6만4,000달러(계약금 1,500달러, 연봉 6만2,500달러)
→ 기록 : 1999년(해태) - 0.283 115경기 361타수 102안타 23홈런 74타점 13볼넷 85삼진 7병살

 외국인 선수 선발을 위한 경기에서 5할8푼3리의 맹타를 휘둘러 유니폼을 입게 된 스토니 브릭스 선수는 폭발적인 타격을 보여주었던 샌더스 선수로 인해 그 빛이 많이 바랬던 선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계약을 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도 아니었다. 이 선수는 평균 이상의 타격 실력을 보여주었고, 특히 빠른 발과 강한 어깨를 통한 수비가 뛰어난 선수였다. 당시 그의 우익수 수비는 심정수 선수와 비견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었다.

● 에디 피어슨(내야수, 우투양타, 2000년, 퇴출)
→ 활동 : 미국 비셰프대 졸, 마이너리그 출신, 현대 유니콘스(1999년)
→ 신상 : 188cm/110kg, 1974년 1월 31일 生, 10만달러 계약
→ 기록 : 2000년(해태) - 시즌 시작전 퇴출

 1992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1순위(1라운드 24번)로 뽑혔던 최상위 유망주 출신이다(참고로 바로 앞 순위가 제이슨 켄달-현 오클랜드-이었다). 그러나 그는 메이저리그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고,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는 평생 유망주에 머물러야 했다.
 결국, 미국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타지에서 이루기 위해 1999년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는다. 그리고 31홈런과 108타점을 기록했지만 찬스에 약하고, 수비 능력이 떨어져 현대 유니콘스와 재계약에 실패한다.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가 2000년 그와 계약한다.
 이 선수는 지금의 켈빈 피커링(SK)을 연상하면 될 정도의 체형을 지녔던 선수다. 120kg이 넘는 거구로 인해 일화가 많았던 선수였다. 아무튼 큰 체구에도 불구하고 유연한 스윙을 보여주었던 그였지만, 해태의 열악한 환경에 실망했는지 불성실한 태도로 훈련에 임하다 결국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퇴출을 당하고 말았다.

● 호세 말레브(Jose Malave, 외야수, 2000년, 퇴출)
→ 활동 : 베네주엘라 안토니오호세수크리고 졸, 1996~1997 메이저(보스턴)
→ 신상 : 1971년 5월 31일 生
→ 기록 : 2000년(해태) - 시즌 시작전 퇴출

 호세 말레브 선수 역시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퇴출을 당했다. 이 선수는 입국할 때부터 뉴스에 나오며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야구 외적인 주목이었다.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가 경찰에 적발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작 실력을 보여줘야 할 야구장에서는 시범 경기에서 0.250의 타율과 고작 1타점으로 김응룡 감독의 판단에 의해 시즌이 시작되기 전 한국을 떠나야 했다.

● 아르키메데스 포조(Arquimedez Pozo, 내야수, 우투우타, 2000년, 퇴출)
→ 활동 : 도미니카 프라그라노배인고 졸, 1995~1997 메이저(시애틀-보스턴)
→ 신상 : 178㎝/72㎏, 1973년 08월 24일 生
→ 기록 : 2000년(해태) - 0.213 39경기 122타수 26안타 1홈런 8타점 6볼넷 17삼진 4병살

 도미니카 태생으로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촉망받는 유망주였으나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1999년 일본 프로야구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활약하며 동양 야구를 경험했다.
 그의 영입은 타이거즈가 처음으로 거구의 선수를 마다하고, 왜소한 체구의 선수를 선발한 첫 시초였다. 역시나 그는 장타와는 거리가 먼 선수임이 드러났고, 김응룡 감독 스타일에 맞지 않는 선수라 일찌감치 고국으로 향하게 된다.

● 제이슨 배스(외야수, 좌투좌타, 2000년, 퇴출)
→ 활동 : 베네주엘라 출신, 미국 오데아고 졸
→ 신상 : 1974년 06월 22일 生
→ 기록 : 2000년(해태) - 0.271 15경기 59타수 16안타 3홈런 13타점 9볼넷 22삼진 3병살

 도미니카와 미국 출신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프로야구 무대에서 보기드문 베네주엘라 출신이었다. 무시무시한 이름만큼이나 체구도 거포형이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특히 김응룡 감독의 1,100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홈런 2개 포함 무려 7타점이나 올리며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지만, 불의의 부상으로 인해 몇 경기 뛰어보지도 못하고 한국을 떠나야 했다.

● 키스 미첼(Keith Mitchell, 외야수 RF, 우투우타, 2000년)
→ 활동 : 미국 링컨고 졸, 1991~1998 메이저(애틀랜타-시애틀-신시내티-보스턴)
→ 신상 : 178cm/82kg, 1969년 8월 6일 生, 6만5000달러(6개월) +옵션
→ 기록 : 2000년(해태) - 0.227 77경기 238타수 54안타 8홈런 38타점 38볼넷 51삼진 7병살

 제이슨 배스 선수의 부상으로 대신 합류한 흑인 선수. 5월 24일 계약을 체결하고, 6월 1일 데뷔전에서 결승 홈런을 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또한 메이저리그 출신답게 강한 어깨를 바탕으로 멋진 홈 송구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그는 논란의 중심에 선다. 당시 외국인 선수 고용 규칙에는 ‘지난 2년간 메이저리그 40인 명단에 포함된 선수는 계약할 수 없다’고 되어 있었는데 그 규정을 무시하고 입단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당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해태 타이거즈라는 팀 사정을 고려해서 부적격 선수임에도 정식 선수로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대단한 선수’라는 이력을 가졌음에도, 이후 평범한 플레이에 그치며, 재계약에 실패하게 된다.

● 헤이서스 타바레스(Jesus Tavarez, 외야수 CF, 우투양타, 2000~2001년)
→ 활동 : 도미니카 에밀리오 히메네스고 졸, 1994~1998 메이저(플로리다-보스턴-볼티모어)
→ 신상 : 183cm/77kg, 1971년 3월 26일 生, 7만 5천달러(계약 1만5,000달러 연봉 6만달러)
→ 기록 : 2000년(해태) - 0.334 74경기 305타수 102안타 3홈런 44타점 21볼넷 32삼진 2병살 31도루 (※ 2000년 도루 부문 2위, 규정 타석 미달로 타격은 순위권에 들지 못함)

 포조 선수 대신에 6월 중순 영입된 타바레스 선수. 아직도 이 선수를 기억하는 야구팬들이 많다. 특히 비슷한 이름으로 인해 미국 메이저리그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2년차 윌리 타베라스(Willy Taveras) 선수가 혹시 해태에서 뛰었던 그 선수가 아닌가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만큼 야구팬들에게 기억에 많이 남았던 선수였다. 왜냐하면 그가 2000년 보여준 활약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장타자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빠른 발과 갖다 맞히는 타격 실력으로 정수근 선수에 이어 도루 2위에 올랐고, 타율에서는 안타깝게도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해 장외 등수에 만족해야 했다. 특히 도루기록의 경우 정수근 선수가 127경기에서 47개를 성공한데 반해, 타바레스 선수는 74경기에서 31번을 훔쳐 더 많은 경기에 출장했더라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발군의 주루 플레이를 선보였다. 이런 대단한 활약으로 그는 다음해 타이거즈 외국인 타자중에서 지금까지도 유일한 재계약에 성공한다.

● 헤이서스 타바레스(Jesus Tavarez, 외야수 CF, 우투양타, 2000~2001년, 퇴출)
→ 기록 : 2001년(해태) - 0.237 46경기 177타수 42안타 1홈런 14타점 16볼넷 26삼진 2병살 10도루
→ 통산 기록(2년) : 0.299 120경기 482타수 144안타 4홈런 58타점 37볼넷 58삼진 4병살 41도루

 2000년 시즌 후반기의 대단한 활약으로 구단의 큰 기대를 받고 재계약에 성공한다. 이는 현재까지도 타자로서는 유일한 재계약 기록이다. 절반의 시즌만 뛰고도 빼어난 활약을 펼쳤기에 구단은 풀타임으로 뛰면서, 그를 통해 이종범 선수 이후 실종된 뛰는 야구를 되살려 주길 바랬다. 전문가들도 그를 도루와 타율 1위 후보로 올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치명적인 발바닥, 허리, 허벅지까지 갖가지 부상을 당하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한국 무대를 밟은 지 1년 만에 중도 퇴출되고 만다.
 한편, 그가 퇴출되기 한달 전 작성한 비밀 각서 내용(한 달 동안 성적 향상이 없을 경우 나머지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을 가져오기도 했다. 결국 구단은 한달이 되기 전 그를 성적 부진의 이유로 퇴출을 결정했고, 나머지 연봉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얄팍한 행동임이 드러났다.

●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Luis De Los Santos, 내야수, 우투우타, 2001년)
→ 활동 : 도미니카 뉴타운고 졸, 마이너리그 - 대만 - 일본(요미우리) - 대만
→ 신상 : 195cm/102kg, 1966년 12월 29일 生, 15만달러 계약
→ 기록 : 2001년(해태) - 0.310 130경기 484타수 150안타 26홈런 107타점 46볼넷 66삼진 17병살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야구팬들은 그의 응원가 ‘산토끼’를 불렀다. 지적으로 보이는 안경을 썼던 ‘야구장의 신사’ 루이스 산토스. 이미 마흔은 훨씬 지난 듯 보이는 아저씨 같은 얼굴이었지만, 지금까지 영입된 타이거즈 외국인 타자 중에서 그만한 성적을 올린 선수는 없었다. 다른 팀 외국인 타자들에 비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팀 내에서 영입한 외국인 선수로서 준수한 성적을 올린 경우는 그가 유일했다.
 대만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선수로 활약하고, 잠시 일본(요미우리 자이언츠) 야구에서도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선수 생활을 접을 시점에 한국 프로야구 무대를 밟게 된다. 3루 수비를 해줄 것으로 예상하며 영입했으나, 1루 수비도 버거운 몸 상태로 인해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4번 지명 타자로 출장 횟수를 늘려갔다.
 시즌 중반만 하더라도 4번 타자로서 제몫을 다했으나, 많은 나이로 인해 체력적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구단에서는 그를 퇴출시키고 투수를 영입하기로 맘을 먹는다. 이 소식을 들은 산토스 선수는 당시 김성한 감독 앞에서 다시 기회를 달라며, 굵은 눈물을 보였다고 한다. 이맘을 하늘도 안건지 당시 영입하기로 했던 투수가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며 입국을 거부하는 바람에, 구단에서도 어쩔 수 없이 산토스 선수를 계속 기용할 수 밖에 없게되었다. 산토스 선수는 기사회생 하며 다시 타석에 서게 된다. 다시 기회가 주어지긴 했지만, 역시 나이로 인한 체력적 한계로 인해, 성적은 나아질 수 없었다. 한편, 이 때 입국하기로 되어 있었던 선수는 2002년에 결국 영입하게 되는 다니엘 리오스(현 두산) 선수다.
 결국, 산토스 선수는 재계약에 실패하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선수 물색차 도미니카를 방문한 김성한 감독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대접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얻었던 애칭인 ‘신사’에 걸 맞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준 산토스 선수였다.

● 워렌 뉴선(Warren Newson, 외야수, 좌투좌타, 2002년, 퇴출)
→ 활동 : 미국 조지아대 졸, 1991~1998 메이저(시카고 화이트삭스-시애틀-텍사스)
→ 신상 : 170cm/92kg, 1964년 07월 03일 生, 17만 5천달러(계약 3만달러, 연봉 14만5천달러)
→ 기록 : 2002년(기아) - 0.209 35경기 115타수 24안타 7홈런 17타점 17볼넷 38삼진 3병살

 기아 타이거즈 팬들은 산토스 선수를 퇴출시키고, 과연 어떤 거물급 타자가 영입될 것인지 관심이 컸다. 구단에서는 전년도 멕시칸 리그 타격왕과 홈런왕을 차지한 선수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키가 작고 상체가 무척 뚱뚱한 선수를 보면서 팬들은 의구심을 가졌다. 그럼에도 오래된 메이저리그 경력을 가진 선수였기 때문에 타선에 활력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초반에 무참히 깨졌다. 홈런을 쳐주긴 했지만, 영양가 없는 타격이 이어졌고 결국 일찌감치 짐을 싸야했다.

● 루디 팸버튼(Rudy Pemberton, 외야수, 우투우타, 2002년)
→ 활동 : 도미니카 가스톤고 졸, 1995~1997 메이저(디트로이트-보스턴)
→ 신상 : 185cm/86kg, 1969년 12월 17일 生, 12만달러(계약 3만달러, 연봉 9만달러)
→ 기록 : 2002년(기아) - 0.255 75경기 271타수 69안타 11홈런 48타점 23볼넷 56삼진 6병살

 산양처럼 수염을 턱에 기른 모습으로 생생히 기억되는 팸버튼 선수는 웨렌 뉴선 선수를 일찌감치 퇴출시키고 영입한 선수다. 하지만 기대만큼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뉴선 선수보다는 좋은 성적을 보이긴 했지만, 외국인 선수에게 기대하는 기대치에는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를 마지막으로 2006년 서브넥 선수까지 타이거즈의 외국인 타자 영입은 중단된다.

● 마이크 서브넥(내야수, 우투우타, 2006년, ??)
→ 활동 : 미국 미시간대 졸, 마이너리그 출신(샌프란시스코 산하 트리플A)
→ 신상 : 178cm/80kg, 1976년 8월 21일 生, 20만달러 계약
→ 기록 : 2006년(기아) - 0.255 19경기 69타수 15안타 2홈런 4타점 3볼넷 8삼진(‘06. 5. 4 현재)

 메이저리그 경력은 없었지만, 기아 타이거즈가 삼고초려끝에 2002년 이후 4년만에 야심차게 영입한 선수다. 2005 시즌이 끝나고 일찌감치 이 선수를 눈여겨 봐둔 끝에 계약을 하려했으나, 당시 소속 구단에서 과도한 이적료를 요구하며 자칫 영입이 무산되는 듯 했지만, 타협을 통해서 원래 계획대로 4년만의 외국인 타자 영입 계획은 성공했다. 생각보다 키가 작고, 실제 미국에서도 홈런보다는 중장거리 타자라는 점이 알려졌지만, 많은 타이거즈 팬들은 그에게 그 이상의 큰 기대를 가졌다.
시즌 초반 현재까지 드러난 모습은 빠른 타이밍에 방망이가 나가며, 잡아당기는 유형의 타자라는 것이다. 물론 예상대로 홈런타자하고는 거리가 먼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그의 활약을 좀 더 지켜보자.

 타이거즈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는?

 : 단연 2001년 활약한 루이스 산토스 선수다. 그의 기록이 다른 팀 외국인 선수들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워낙 타이거즈에서 영입한 외국인 타자들이 부진했기에, 그의 경쟁자가 될 만한 기록을 보여준 선수가 없었다.

 유일한 경쟁자라고 한다면 1999년 샌더스 선수와 2000년 타바레스 정도라고 할 수 있다. 1999년 장성호, 양준혁 선수와 함께 96개의 홈런을 생산해 낼 정도로 강력한 좌타 라인을 형성했던 샌더스 선수는 영양가 없는 일방적인 타격이 문제였고, 타바레스 선수는 시즌 절반만 활약했기 때문에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산토스 선수의 2001년 활약을 살펴보면 타점 2위, 최다안타 6위, 홈런 7위, 장타율 12위, 타율 14위, 득점 18위를 기록했다. 외국인 선수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면 아쉬운 점이 많이 남는 성적이지만, 이것이 지난 9년간 타이거즈가 영입한 외국인 타자 최고의 성적이다.
 

Posted by 공짜